[기고] 성과연봉제, 미래 세대 위한 작은 디딤돌
삼국지에 봉추선생 방통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작은 뇌양현의 현령으로 부임한 방통은 유비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백일 동안 술만 마시며 즐길 뿐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 소식을 접한 유비가 크게 노해 장비를 보내 추궁하도록 했는데 장비가 도착하자 방통은 백일 동안 쌓아두었던 업무를 반나절이 되지 않아 한치의 착오도 없이 깨끗하게 처결했다. 그제서야 방통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유비는 방통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부군사로 삼았고 이후 방통은 서촉 정벌에 큰 공을 세워 유비가 천하를 도모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조직이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 성과주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과주의는 공정한 대우를 통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조직의 생산성도 강화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아무리 조직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훌륭한 구성원이 있다 하더라도 조직이 합당한 보상이나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 구성원은 열정만으로 열심히 일을 할 리 만무하다.

한국이 단기간에 극빈국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세계경제규모 11위라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사회적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흘린 땀에 상응하는 성과보상 대신 기득권을 지키면서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부정적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금융업은 생산성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금융업의 임금 대비 생산성이 1.7로 제조업(1.6)을 앞서지만, 한국은 금융업 생산성이 1.0으로 제조업(1.4)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융업권에서는 최근 저금리 기조 등에 따른 생산성 악화로 자의든 타의든 구조조정이 화두가 되고 있다. 본인의 업무를 충실히 다하지 않고 조직 내에서 무임승차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행동이다. 저성과자가 하지 않은 일은 다른 성실한 누군가가 대신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원래 주어진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부담에 직무만족도가 떨어지고 조직을 위한 생산적창조적 업무를 할 마음의 여유는 없게 된다. 이렇게 조직 내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구성원 간 갈등이 확산되면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4월29일 노사합의를 통해 금융공공기관 중 최초로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예금보험공사는 2010년부터 간부직원에 대한 성과연봉제(차등폭 30%)를 시행해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성과연봉제를 4급직원까지 추가로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추진과정에서 구성원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예기치 못한 직급 간, 남녀직원 간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의 해법은 회사의 발전과 노사상생을 위한 조금씩의 양보였다. 남은 과제는 성과연봉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조직 내 수용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정한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성과가 미흡한 조직원이 다시 열심히 달릴 반전의 기회를 가지게끔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당장 모든 조직이 성과주의 확산에 동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태백’, ‘오포세대’라는 냉소적인 단어로 풍자되는 엄중한 경제현실 앞에서 금융권에 대한 국민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지금은 기득권 유지 같은 낡은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펼치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오늘의 노력이 미래세대를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곽범국 < 예금보험공사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