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감동 방송광고 2016] '네 곁을 지켜주는 내가 있어'…CF송 자체가 주인공
방송 CF가 성공하는 과정에서 CF송 역할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 CF송의 기능을 찬찬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먼저 CF의 영상 콘셉트에 맞춰 지향점을 더 명료하고 힘있게 이끌어내는 경우다. 대부분 CF송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다른 하나는 CF송이 그 자체로 주인공이 돼 갖가지 이미지를 하나로 모으고 총합적 메시지를 폭발하는 경우다. 전자와 같은 CF송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예나 지금이나 쉽게 볼 수 있는 패턴이 아니다. NH농협은행의 ‘네 곁을 지켜주는 내가 있어’ 편은 드물게 만나는 사례다.

‘네 곁을 지켜주는 내가 있어’ 편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화면이 열리면 직장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는 직원, 면접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취업준비생, 훈련 도중 땀범벅이 돼 숨을 고르는 메이저리거 류현진 선수의 모습이 차례로 흘러간다. 다들 각자 위치에서 고난을 겪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들이다. 바로 그 뒤로 정반대의 긍정적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야근 도중 선배가 타준 커피잔을 받아드는 젊은 직원, 자전거에 시장바구니를 올려놓고 아이를 뒤에 태운 채 달리는 젊은 주부, 생일상 앞에서 자손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노부부,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는 류현진 선수를 보여준다. 그 위로 내레이션이 울린다. “100% 당신 편에서, NH농협은행.” 마지막 자막은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NH농협은행.”

사실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이미지들도 수년간 등장했던 ‘힘겨운 현실 속 희망’ 관련 내용들이다. 메시지도 단조롭다. 그런데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네 곁을 지켜주는 내가 있어’ 편의 주인공은 이 같은 이미지도, 메시지도, 심지어 류현진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CF 전체를 아우르는 가수 이선희의 CF송 ‘힘내라 대한민국 응원가’다.

‘힘내라 대한민국 응원가’는 1988년 방영된 국산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 주제곡을 편집해 개사한 CF송이다. 이 익숙한 CF송 위로 다음과 같은 가사가 흐른다. “어려울 때 네 곁을 지켜주는 내가 있어. 다시 일어나. 힘내라! 힘내라! 힘내라 코리아!” 30대 중반 이상이면 알고 있는 멜로디, ‘달려라 하니’의 본래 가사와도 맞물리는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가사다.

당시 ‘달려라 하니’ 주제곡도 이선희가 불렀으니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달려라 하니’와 ‘힘내라 대한민국 응원가’ 사이 연결성이다. 이선희는 그 자체로 1980년대 3저 호황과 고도성장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달려라 하니’는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며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던 그해 등장한 노래다. 꿈과 희망의 그 시절을 30년 가까이 지난 뒤 같은 인물이 같은 음률로 되돌려 들려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 위로 흘러가는 영상은 일상에서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고난과 갈등, 그리고 어깨 수술 이후 재활에 힘쓰고 있는 류현진의 상징적 이미지다. 이제 메시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나 1980년대 고도성장을 꽃피워냈던 그때 그 시절처럼, 이번에도 경제 불황을 딛고 일어나 다시 한 번 성장의 열매를 키워내자는 의미가 완성된다. CF송이 지닌 갖가지 상징적 장치가 다소 평이해 보이던 이미지들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제3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CF송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콘셉트가 드문 까닭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복잡하고 위험성이 큰 작업이기 때문이다. CF송이 언뜻 단순해 보이면서도 심오하게 작동해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어놔야 한다는 대전제를 필요로 한다. ‘네 곁을 지켜주는 내가 있어’ 편은 이런 콘셉트를 정말 오랜만에 시도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한 성공작이다. 2016 상반기 최고의 고객 감동 방송광고로 전혀 손색이 없다.

이문원 < 미디어워치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