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연출 거장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전 두 편이 무대에 오른다. 오는 26~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헨리크 입센의 ‘민중의 적’과 다음달 4~2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란 작가의 신념이 담긴 ‘민중의 적’은 독일 스타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48)의 손을 거쳐 ‘베를린 힙스터’들의 이야기로 변신한다.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한 편인 ‘갈매기’는 루마니아 연출가 펠릭스 알렉사(49)의 상징적이고 감각적인 무대로 재탄생한다. 현대극을 주도하는 유럽 무대의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두 연출가의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관객과 배우들의 열띤 토론

헨리크 입센의 ‘민중의 적’
헨리크 입센의 ‘민중의 적’
오스터마이어는 독일 실험연극의 산실로 불리는 ‘샤우뷔네 베를린’ 소속 배우들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 이들의 서울 공연은 2005년 입센의 ‘인형의 집-노라’, 2010년 셰익스피어의 ‘햄릿’ 이후 세 번째다. 지난 공연들은 고전의 엄숙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여 국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민중의 적’은 마을 온천수가 근처 공장 폐수로 오염된 사실을 폭로하려는 토마스 스토크만 박사와 그를 막으려는 대다수 사람의 갈등을 그린다. 시의원이자 그의 형인 피터 스토크만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판단해 폭로를 막는다. 대중도 관광도시로서 받게 될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진실을 은폐한다. ‘소수’가 된 스토크만 박사는 ‘민중의 적’으로 낙인찍힌다.

오스터마이어는 시대적 배경을 19세기 노르웨이 마을에서 21세기 베를린으로 옮겨왔다. 스토크만 박사는 록밴드 활동을 하는 30대 중반의 ‘베를린 힙스터’로 등장한다. 배우들은 공연 내내 데이비드 보위의 ‘체인지’ 등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무대에는 거대한 칠판뿐이다. 극이 절정에 이르는 스토크만 박사의 군중 연설 장면에선 관객을 토론자로 끌어들인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연에선 화가 난 관객들이 배우와 30분간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오스터마이어는 “연극적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노(No)’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일상에 만연한 정치적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4만~8만원.

○국립극단과 손잡고 무대에 올려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펠릭스 알렉사는 국립극단과 손잡고 ‘갈매기’를 무대에 올린다. 2014년 ‘리차드 2세’ 이후 2년 만이다. ‘상징적 연출의 대가’로 꼽히는 알렉사는 전작에 이어 물과 종이를 활용한 섬세한 미장센(연출가가 무대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열하는 행위)을 선보일 예정이다.

‘갈매기’는 체호프의 희곡 중 가장 체호프다운 작품으로 꼽힌다.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쓴웃음을 선사한다.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주장하는 열혈 작가 지망생(뜨레쁠례프)과 그런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유명 여배우(아르까지나), 서로 다른 대상을 향해 사랑을 느끼는 성공한 소설가(뜨리고린)와 배우 지망생(니나)이 등장한다. 알렉사는 “이들이 경험하는 꿈과 현실의 차이,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과 소통의 부재를 꾸밈없는 민낯으로 그릴 것”이라며 “‘이들의 모습과 관계를 통해 민감한 인간 존재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극은 아르까지나가 연인인 유명 작가 뜨리고린과 함께 아들 뜨레쁠례프가 연출한 연극을 관람하는 데서 시작한다. 알렉사는 명동예술극장 전체를 뜨레쁠례프의 극 중 극이 공연되는 극장으로 꾸며 관객이 배우들과 함께 그 연극을 보고 있는 것처럼 연출할 계획이다. 2012년 입센의 ‘헤다 가블러’로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던 관록의 배우 이혜영이 4년 만에 아르까지나 역으로 무대에 선다. 오영수 이승철 이창직 이정미 이명행 박완규 등이 호흡을 맞춘다. 2만~5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