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칙칙폭폭!…남프랑스 지중해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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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브·엑상프로방스·나르본·카르카손…영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창밖 풍경들
피카소미술관 품은 앙티브…예술혼이 꿈틀
'신의 물방울'로 적신 나르본…중세시대 분위기에 취하다
C표지판 따라 걸으면 폴세잔 만나는 엑상프로방스
생 소뵈르 대성당엔 5~18세기 건축양식 총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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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브 - 세계적인 휴양지가 부럽지 않은 곳
프랑스 지중해 기차여행의 출발지는 앙티브(Antibes)다.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910㎞ 떨어진 해안 마을 앙티브는 세계적인 휴양지 니스(Nice)와 국제영화제로 유명한 칸(Cannes) 사이에 있다. 도시의 인지도는 니스나 칸보다 낮지만 매력은 뒤떨어지지 않는다. 숙박할 호텔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앙티브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멋졌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잔잔하게 파도치는 지중해, 백사장에 누워 여유롭게 햇볕을 즐기고 있는 현지인들, 포트 보방(Port Vauban)을 촘촘하게 메운 요트, 그 뒤로 보이는 카레 요새(Fort Carre)의 모습은 앙티브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미지다.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인들이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세운 도시이자 기원전 2세기 로마에 합병된 앙티브에선 역사적인 건축물, 멋진 해변, 활기찬 시장,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앙티브가 휴양도시로 변모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다. 유럽 각국의 부유층은 앙티브의 풍경에 반해 고급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그 여유롭고 풍요로운 분위기는 지금까지 방문객의 마음을 느긋하게 하는 마력을 품고 있다.
앙티브의 지역 명소 중 한 곳은 피카소 미술관이다. 지금의 피카소 미술관은 원래 그리말디 가문의 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 앙티브로 피난 온 피카소에게 앙티브 시는 그리말디 성에서 작업해 줄 것을 제안했다. 피카소는 오래된 성채에서 뜨거운 예술혼을 불살랐다.
1946년, 성의 2층을 6개월간 작업실로 사용하며 다양한 작품을 그려낸 피카소는 그해 말 44점의 소묘와 23점의 회화를 기증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미술관이 탄생했다. 이곳에선 그의 대표작 ‘삶의 기쁨(Vivre de Joi)’을 비롯해 회화, 소묘, 도자기, 에칭 등 245점의 다양한 작품과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성게를 먹는 사람’은 그의 독특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최근 X레이 분석을 통해 이 작품 밑에 있는 다른 그림이 발견됐다.
다른 그림 위에 덧칠해 작품을 완성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현지 가이드는 “원래 작품을 본 피카소가 자신이 훨씬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재 미술가의 괴팍함마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주점은 로마시대부터 있던 건물에 압생트 바를 차린 것이다. 예술가의 혼을 사로잡은 압생트를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마셔보고 싶다면 방문해볼 만하다. 앙티브 관광청 antibesjuanlespins.com
엑상프로방스 - 세잔이 사랑한 물의 도시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프로방스(Provence)는 사실 프랑스의 특정 행정구역이 아니다.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해안지역과 근처의 내륙지역 일대를 아우르는 용어로 한국의 ‘남도지방’에 해당한다.


세잔의 장례식이 치러진 생 소뵈르(Saint-Sauveur) 대성당은 미라보 거리에서 약 700m 떨어져 있다. 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지은 건물로 각 시대의 건축양식을 담은 축소판이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2세기에 지어졌고 6세기의 세례당, 12세기의 수도원, 14세기에 지은 종탑 등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프로방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와이너리다. 샤토 라 코스테(chateau-la-coste.com/en)는 엑상프로방스의 멋진 자연과 함께 와인, 미술품이 하모니를 이루는 독특한 곳이다. 와이너리 그 이상을 표방하는 곳으로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어 짬을 내 다녀올 만하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아트센터를 비롯해 다양한 현대 미술품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아트센터 안에 있는 안도 다다오 레스토랑에선 프로방스, 지중해의 재료로 만든 요리를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는 와인과 함께 맛볼 수 있다. 엑상프로방스 관광청 aixenprovencetourism.com
나르본 - 와인에 취하고 전원에 젖어든다

인구 5만명의 나르본은 기원전 118년에 세워진 작은 도시다. 로마가 이탈리아 외부에 최초로 세운 식민지로, 약 26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역사답게 도시 곳곳에는 중세시대 분위기도 한껏 살아 있다.
과거 나르본은 로마에서 스페인 북부까지 연결되는 가도가 통과하는 길목이었다. 나르본 시청사 앞 광장에는 움푹 파인 장소가 있다. 로마제국이 최초로 건설한 가도인 비아 도미티아(Via Domitia)의 일부다. 돌이 깔린 울퉁불퉁한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차가 지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라퐁텐의 말이 되새겨지는 순간이다.
유서 깊은 도시의 역사보다 더 무르익은 것은 나르본의 와인이다. 나르본은 랑그독 루시옹(Languedoc-Roussillon) 지방에 속해 있다. 랑그독 루시옹은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페르피낭에 이르는 와인 재배 지역으로 프랑스 전체 와인의 3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의 와인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우량 와인을 뜻하는 AOC 등급을 받는 비율이 전체의 14%에 이른다.

나르본 시내에는 오드 강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32㎞ 길이의 로빈 운하가 흐른다. 산책하는 시민들, 편히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에서 작은 마을이 간직한 여유가 느껴진다. 운하 옆에는 실내시장인 레 마르셰(Les marches de Narbonne)가 있는데 안에 들어가니 제과점, 정육점, 생선가게, 청과물, 바, 와인바 등 70여개 상점이 자리잡고 있다. 내부의 와인상점(lestapasdelaclape.com)에서는 타파스 요리와 20여 업체에서 사온 100종류 이상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훌륭한 음식에 곁들이는 와인은 여행의 피로마저 씻어 내리기에 충분했다. 나르본 관광청 narbonne-tourisme.com
카르카손 - 중세시대의 웅장한 요새
2000년에 발매돼 전 세계에서 600만개 이상 팔린 보드게임 카르카손(Carcassonne)은 프랑스의 도시 이름이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국경을 넘기 전에 있는 카르카손은 나르본에서 동쪽으로 약 60㎞ 떨어져 있고 기차를 타면 30분 만에 닿는다. 이곳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카르카손 성이다. 카르카손은 작은 도시지만 성의 유명세 덕분에 연간 35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프랑스 도시 중 파리와 몽생미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기원전 122년, 로마 군대가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켈트족을 몰아낸 뒤 성벽을 쌓은 것이 카르카손 성의 기원이다. 성벽에는 52개의 탑이 있으며 길이 1650m의 외벽, 1250m의 내벽으로 구성된 이중구조로 지어졌다. 안쪽 성벽은 서고트의 왕 외리크 1세가 485년 축조했고, 바깥쪽 성벽은 1285년 필리프 3세가 지었다. 오랜 기간 짓다 보니 성에는 로마시대부터 이어지는 다양한 건축양식이 녹아 있다. 멀리서 바라본 카르카손 성은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천상의 요새와 같은 모습이다. 성벽 안의 번화가를 의미하는 시테 지역으로 들어가면 좁은 길을 따라 과거 중세시대 사람들이 쓰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레스토랑, 식당, 바, 카페, 기념품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마치 중세와 현재가 뒤섞인 듯한 모습이다.성에서 들러볼 만한 곳은 생 나제르(Saint Nazaire) 성당이다. 1069년 공사를 시작해 1130년에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 옆에는 드 라 시테 호텔(hoteldelacite.com)이 있다. 고성을 개조한 호텔로 1920년부터 3대째 운영 중이다. 총 60개의 객실이 있고 최신식 호텔과 달리 고전적인 분위기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카르카손 관광청 tourism-carcassonne.co.uk
엑상프로방스(프랑스)=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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