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가적 경쟁의 혜택
최근 국내외 여론조사를 보면 청년층 절반 이상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본주의가 가진 자는 더 부자가 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만들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미신(迷信)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3% 이내의 만성적 저성장, 12%를 웃도는 청년실업도 자본주의의 고질적 양극화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재분배, 과세, 규제를 통해 시장의 분배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인식의 바탕에는 상속, 자본, 노동, 능력 등 자원만이 개인소득을 결정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자원을 갖지 못한 자는 소득분배에서 항상 뒤로 밀려나고 가진 자들만이 앞서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분배시각을 뜯어보면 분배와 관련된 기업가 정신의 역할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치명적 오류다.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라는 반(反)자본주의 정서를 강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창조와 혁신을 본질로 하는 기업가적 경쟁은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일면적이다. 기업가 정신은 불평등의 개선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컴퓨터를 공급해 떼돈을 버는 백만장자가 있다고 하자. 새로운 기술 개발로 기존 것보다 값싸고 우수한 제품을 생산해 파는 혁신자들이 등장한다.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산업을 개발한 혁신기업도 등장한다. 대체상품을 개발하거나 생산비용을 낮추는 기술 개발을 통해 싼값으로 공급하는 혁신경쟁으로 경제는 성장하면서 원래 컴퓨터 생산업자의 삶을 쉽지 않게 만든다. 그의 기업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적 경쟁은 경쟁자들이 기존의 부자를 추격·추월하는 과정이라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에서 기존의 부자가 누리던 이윤의 일부 또는 전부가 경쟁자들에게로 이전돼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고 부자가 중산층이나 하류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유산도 없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돈도 없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했어도 거부가 된 인물이 주변에 아주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업가 정신이 부의 양극화를 견제하려면 추격·추월과정을 가로막는 정부 개입과 규제가 없어야 한다. 경제적 자유의 토양에서만 기업가 정신이 살아난다. 정부 개입이 많을수록 사업수익성이 생산적 활동보다 정부 지원에 좌우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와 관료의 커넥션이 사업 성공을 좌우하는 ‘정실주의’가 판을 친다. 이것은 정치, 관료, 이익집단, 기업이 서로 유착된 먹이사슬이다. 정·관·법피아, 전관·동창·동향예우라는 말도 정실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주목할 것은 정실주의는 먹이사슬 내 부의 나눠먹기만 초래하고 부의 성장을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정실로 엮인 인맥에 포함된 사람들만이 부자가 된다. 이들의 부는 정실에서 배제된 사람들(대부분 하류층)의 희생물이다.

불평등 심화는 물론이요 저성장의 만성적 불황도 자유자본주의 탓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을 훼손한 큰 정부에서 비롯된 정실주의 탓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해운, 조선의 부실기업을 불러온 것도 국책은행, 정부, 이익집단, 기업 사이의 정실주의 탓이 아닐 수 없다.

기업가 정신을 왜곡해 불황을 불러오면서 분배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은 또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낮은 금리, 양적 완화의 통화 팽창이다. 새로이 증가된 돈을 나중에 받는 사람은 희생되고 맨 먼저 받는 계층은 이익을 취한다. 통화 팽창의 시차적 인플레이션 효과 때문이다. 이익을 보는 계층은 은행 간부, 정치권, 관료, 기업 운영진 등 상류층이다. 불황을 불러오면서 ‘그들만을’ 부자로 만드는 것이 잘못된 통화제도의 탓이다. 국책은행을 통해 기업 손실을 사회화하는 중앙은행의 한국적 양적 완화도 한통속이다. 지금이야말로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성장을 촉진하는, 기업가 정신의 활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자유의 정책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