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트랜스퍼와이즈 창업한 힌리커스 "해외 송금·예금·대출…핀테크 기업이 더 싸게 잘하는데꼭 은행에 갈 필요있나"
“은행의 고유 영역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금, 대출, 송금 등 은행의 주요 업무는 대부분 정보기술(IT) 기업이 더 싸게 더 잘할 수 있거든요. 수백 개 지점을 거느린 은행이 정말 필요할까요?”

세계 최대 개인 간(P2P) 해외 송금업체인 트랜스퍼와이즈의 타벳 힌리커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최근 아시아리더십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은행들이 지금 핀테크(금융+기술) 회사만큼 효율적으로 바뀌면 경쟁력이 있겠지만 시간이 적잖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스토니아인으로 화상통화업체 스카이프 창업멤버(2003~2008년 근무)였던 힌리커스가 2011년 설립한 트랜스퍼와이즈는 핀테크업계의 대표 주자다. 미국의 렌딩클럽과 같은 회사가 P2P 대출로 은행을 대체한다면 트랜스퍼와이즈는 해외 송금 부문에서 은행을 대체하고 있다.

은행 안 거쳐 해외 송금비용 1/8로

이 회사의 사업모델은 한국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불법 딱지가 붙었던 ‘환치기’다. 스카이프에서 유로화로 월급을 받던 힌리커스는 영국 생활을 위해 파운드화가 필요했다. 마침 런던 회계법인에서 일하던 그의 에스토니아인 친구 크리스토 카만은 파운드화로 월급을 받지만 주택 대출을 상환하느라 유로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힌리커스는 카만에게 유로화를 보내고, 카만은 힌리커스에게 동일한 가치의 파운드화를 보내니 문제가 훨씬 쉬워졌다. 은행에 환전·송금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어졌고, 3~5일 걸리던 송금 시간도 크게 단축됐다. 이 방식을 전 세계로 확대한 게 트랜스퍼와이즈다.

힌리커스는 “은행은 지금까지 단지 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수수료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해외 송금을 하려면 은행은 환전·송금수수료를 받는 것 외에도 시중 환율보다 불리한 환율을 적용해 돈(매입·매도환율 간 차이)을 챙겼다. 트랜스퍼와이즈는 구글 검색에서 나오는 시중 환율을 그대로 적용한다. 수수료는 0.5~1.5%(최소 1유로)다.

사업 시작 후 5년 만에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100만명 이상이 매일 7억5000만달러 이상을 보내고 받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송금 비용을 약 8분의 1로 줄였다. 하루 100만달러가 절약된다. 전 세계 은행이 그만큼 수수료를 못 벌게 됐다는 뜻이다. 한국 금융감독당국도 지난해 6월 소액(1인당 연간 2만달러 이하)에 대해서는 외화 송금 규제를 풀어서 트랜스퍼와이즈는 지난 3월부터 국내 업체 페이게이트와 함께 일부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직 국내서 해외 송금을 할 수는 없고 외국에서 한국으로 돈을 부치는 것은 가능하다.

금융 규제 필요…감독당국과 IT업계 소통해야

핀테크 업체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금융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힌리커스는 그러나 “핀테크라는 표현조차 없던 2010년에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런던 금융감독당국을 찾았을 때 의외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영국 정부는 우리 같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했다”며 “런던이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인 핀테크 중심지로 성장한 비결”이라고 칭찬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금융 규제를 찬성하는 편이다. “금융분야는 규제로 가득하지만 이는 세상을 더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랜스퍼와이즈도 이 같은 목적에 동의하기 때문에 ‘사용자 신원을 확실히 확인한다’ ‘돈세탁을 방지한다’는 두 가지 규칙을 강력히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선 금융회사가 고객을 최소 한 번은 직접 만나야 실명 확인이 완료된다. 이런 규칙은 소규모 핀테크 업체에는 취약점이다. 힌리커스는 “대면 확인 규칙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선 파트너 회사의 도움을 받거나 일부 거래를 제한한다”며 “대부분의 국가는 온라인으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전자적 수단을 갖추고 있어 큰 문제는 없으며 영국 등에서는 거주지 확인 문서 등을 받아서 실명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모의 경제 확보에 주력

지난해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마크 앤드리슨 페이스북 이사,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등이 9100만달러를 투자했다. 아직 수익은 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970만파운드(약 168억원) 매출에 1140만파운드 순손실을 기록했다. 작년 초 200명이던 직원 수가 600명까지 불어나는 등 비용 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힌리커스는 “일단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수익은 좀 더 나중에 내도 괜찮다”고 했다.

규모를 중시하는 데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현 사업모델은 필연적으로 통화의 불일치가 발생한다. 해외에서 A국가로 돈을 부치려는 수요가 100원인데, A국가 회원들의 잔액엔 그 통화가 90원밖에 없다면 10원만큼 회사가 메워야 한다. 트랜스퍼와이즈는 이럴 때 해당 통화를 구입해 결제를 마무리한다. 힌리커스는 “규모의 경제가 확보될수록 이런 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투기적인 이유로 특정 통화를 미리 사들이는 일은 지금까지도 안 했고 앞으로도 안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월 금융감독원은 국내 업체 토마토솔루션이 트랜스퍼와이즈의 사업모델을 본떠 만든 유사 서비스 ‘트랜스퍼’가 불법이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에 대해 힌리커스는 “우리는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며 “아직 뚜렷한 후발주자가 없으며, 생긴다 해도 그동안 우리가 세계 각국에 구축한 네트워크를 한순간에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했다.

비트코인업계도 위협

트랜스퍼와이즈는 비트코인업계를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은 그동안 기존 은행 네트워크를 이용하지 않고 ‘싸게’ 해외 송금을 하는 데 주로 이용됐는데, 트랜스퍼와이즈는 사용되는 통화를 그보다 저렴한 수수료로 더 빠르게 보낼 수 있다고 힌리커스는 설명했다. 그는 “만약 당신이 비트코인과 트랜스퍼와이즈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굳이 실물 통화로 환전하는 수고를 거칠 필요가 없는) 트랜스퍼와이즈 서비스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힌리커스는 올초 “비트코인은 죽었다”고 선언해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공적’이 되기도 했다. 그는 “비트코인은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투기 심리에 의존해 성장했다”며 “국가 체제에서 벗어나 있고 규제도 받지 않는 통화라는 아이디어가 너무나 매력적이긴 하지만 현실의 결제 수단이 되지 못하는 이상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