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회의 역량이 의심스럽다
최근 행정부(이하 정부)와 국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몇 가지 있었다. 정부는 국회를 통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필요한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한다고 한국은행을 끌어들이더니, 국회에서 통과된 상시청문회법은 국정을 마비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거부권 행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싶은데 구조조정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거나 청문회에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정부의 인식은 일부 한국인에게 익숙한 관념이기도 하다. 한국이 ‘경제 기적’을 이룰 당시 한국의 정치체제가 ‘관료적 권위주의’로 불린 데서 알 수 있듯이 국회는 사실상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했다.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와 한국의 고도성장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생각처럼 분명하지 않다. 이 주제는 세계적 연구의 대상이지만, 뚜렷한 결론은 없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는 지속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민주화 요구가 폭발해 권위주의 정치가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민주화’가 당시 한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한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에 민주화 이외의 출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화가 경제성장을 지속시킨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보아 민주정치와 경제성장 간의 관계는 분명치 않지만,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고도성장이 이뤄진 국가들은 민주화로 성장률이 떨어진 경우가 많다. 그런 가운데 한국은 두드러진 예외로서 민주화 이후 성장률이 올라간 유일한 경우라는 연구도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가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과거의 관행이 지속된 것이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국회는 여전히 행정부에 종속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30년 가까이 흐르면서 국회 권한은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추세는 돌이킬 수 없고 돌이켜서도 안 된다. 그것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민주화 초기에 경제가 연착륙하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장기적 해법은 될 수 없다. 그것은 결국 ‘법치’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경제 주체들이 자기 노력의 산물에 대해 재산권을 보장받고 장기적 예측을 할 수 있게 법치를 확립하는 것이 기본이다. 법치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법치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지난 300년의 세계사가 보여주듯이 3권 분립에 의거한 견제와 균형이 필수적이다. 국회가 정부에 종속돼서는 제대로 된 3권 분립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국회 권한이 강화되는 것은 3권 분립을 통해 법치로 가는 것이고 그것이 장기적 경제발전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국회 쪽에 문제는 없는가. 권한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 역량은 어떤가. 민주화 당시 형편없던 역량이 괄목할 만큼 신장됐다. 그러나 정부와의 역량 격차는 얼마나 좁혀졌는가. 예컨대 국회에 연구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 둘 있지만, 정부 소속 국책연구원과 비교할 때 어떤가. 의원 각자에게 제공하는 보좌관들의 역량이 행정부 공무원 수준에 미치는지도 물론 의문이다. 국회도서관은 같은 대통령제 아래의 미국 국회 도서관 같은 역할에 근접이라도 하고 있는가.

정부가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국회를 우회해서 조달하려고 하는 것은 꼼수다. 상시청문회법은 구체적 사안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거부권 행사가 조건반사처럼 나오는 것을 보면 정부가 국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그런 한편 국회가 그 늘어난 권한에 걸맞게 역량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다. 새 국회는 좀 더 그런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해 본다.

이제민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