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회장 "예술 즐길 줄 알아야 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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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대부에서 사진예술 전도사로
"30년 전 명품 들여올 때처럼 사진 판매 '이거다' 느낌이 왔죠"
35세에 시작한 명품 수입
유럽 출장 때 접한 명품 브랜드 가능성…수입자유화 조치로 창업에 나서
1990년대부터 '문화경영' 구상
해외 파트너들과 찾은 갤러리…그림 감상하다보면 스트레스 사라져
새로운 도전 '옐로우코너'
2013년 파리 사진판매 갤러리의 충격
패션사업 접고 '생활 속 예술' 실천
"30년 전 명품 들여올 때처럼 사진 판매 '이거다' 느낌이 왔죠"
35세에 시작한 명품 수입
유럽 출장 때 접한 명품 브랜드 가능성…수입자유화 조치로 창업에 나서
1990년대부터 '문화경영' 구상
해외 파트너들과 찾은 갤러리…그림 감상하다보면 스트레스 사라져
새로운 도전 '옐로우코너'
2013년 파리 사진판매 갤러리의 충격
패션사업 접고 '생활 속 예술' 실천
2013년 10월 어느날,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회장(65·사진)은 프랑스 파리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우연히 옐로우코너(Yellow Korner)란 특이한 이름의 간판을 발견했다. 쇼윈도는 온통 사진으로 장식돼 있었다. 잠시 서서 사진들을 훑어본 그는 예정된 일을 보기 위해 퐁피두센터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권 회장은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 본 간판을 또 발견한 것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옐로우코너가 어떤 갤러리냐고 물었다. 옐로우코너는 사진 판매 전문 갤러리인데 파리에 여러 개 있을 뿐 아니라 세계에 체인이 50여개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순간, 권 회장의 머릿속에는 번개가 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1년여 뒤인 2014년 12월, 그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광장 한복판에 옐로우코너 한국 1호점을 열었다. 국내에서 아이그너, 겐조, 베르사체, 소니아리켈, 장프랑코페레 등 세계적 패션업체 20여개의 에이전트를 맡아 ‘명품업계 대부’로 통하던 권 회장은 30년 가까이 하던 패션사업을 접고 문화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18일 옐로우코너 코엑스점에서 그를 만났다.
옐로우코너 싼 가격의 비밀은 ‘에디션’
“마침 새로운 사업을 찾고 있을 때였어요. 우연히 옐로우코너 쇼윈도를 보다가 무엇에 이끌리듯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걸려 있는 작품의 수준이 꽤 높아 보였어요. 가격은 10만원대부터 300만원대까지 다양했습니다. 기존 작품 가격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었죠. 무엇보다도 사진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어요. 갤러리 직원에게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에 이런 좋은 작품을 팔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옐로우코너의 독특한 사업방식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제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옐로우코너의 비밀은 작품을 찍어 내는 수를 뜻하는 ‘에디션’에 있었다. 보통 유명 사진가는 한 작품 에디션을 5~20개로 제한하고 비싼 값을 받는다. 옐로우코너는 작품 에디션을 최대 200개로 늘렸다. 작품 크기는 줄였다. 예를 들면 대형으로 5장 출력해 1000만원씩에 파는 작품을 작게 200장 제작해 40분의 1 가격인 25만원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일부 고소득 계층만 살 수 있던 예술작품을 보통 사람들도 구입해서 선물하거나 거실에 걸어놓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옐로우코너의 ‘철학’이었다. 이런 비즈니스 목표와 방식은 세계 사진가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다.
권 회장은 재빠르게 사업성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한국에서 옐로우코너를 운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의 이름은 유럽 패션계에 꽤 알려져 있었다. 옐로우코너 본사도 흔쾌히 권 회장을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권 회장은 코엑스에 옐로우코너 1호점을 낸 지 몇 달 만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2호점을 열었다. 대형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도 운영했다. 올해 서울 삼청동에 3호점을 낼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변신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명품 옷이나 가방에 돈을 썼습니다. 문화 수준이 올라가면서 여행, 음악, 레저, 미술, 사진 등으로 소비가 다변화됐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커질 부분은 ‘예술에 대한 소비’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어요. 30년 전, 한국 최초로 유럽 명품 브랜드를 들여올 때의 그 ‘느낌’이 다시 왔습니다.”
30대 중반에 명품수입업 뛰어들어
권 회장은 1980년대 초 한 대형 건설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패션업 진출을 꾀하던 회사가 그에게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만한 해외 브랜드를 찾아보라는 임무를 줬다. 그는 1년에 30회 가까이 유럽, 미국 등지로 출장을 다녔다. 이때 해외 명품 시장에 대한 눈을 뜨게 됐다. 당시 서구에는 옷에 큰돈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인에게 옷은 그냥 ‘의복’일 뿐이었지만 유럽인에게 옷은 ‘패션’이었다. 일을 추진하면서 권 회장 자신도 월급을 모아 발렌티노, 지방시, 랑방 등을 사 입었다.
그런데 회사 사업은 불발에 그쳤고 허탈해 하던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정부가 1980년대 중반부터 수입 자유화 조치를 시행한 것이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향했다. 1986년 독일 명품패션 브랜드 아이그너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당시는 ‘보따리상’들이 밀수로 들여온 외국 유명 브랜드 옷이 조금씩 유통되던 때였다. 권 회장은 겐조, 소니아리켈, 베르사체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를 줄줄이 들여왔다. “그때 제가 서른다섯 살이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한국에서도 중산층이 돈을 모아 명품을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처음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가 들여온 브랜드들은 한국 유명 백화점과 면세점 진출에 성공했다. 창업 5년 만에 20억원을 넘어선 매출은 꾸준히 증가해 2000년 200억원, 2006년 500억원에 이르렀다. 권 회장은 프랑스 국가공로훈장(2006년)과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2013년)을 수훈했다. 2008년 무역의 날엔 대통령표창도 받았다. 그가 들여온 브랜드 제품들이 국내 패션사업 발전에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해외 유명 브랜드를 들여온 것은 단순히 돈벌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진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해외 브랜드와 경쟁하면서 한국 패션문화와 산업도 성장했다”고 말했다.
“창의성도 문화적 소양에서 나오죠”
비즈니스가 궤도에 오를 때쯤인 1990년대 초반, 권 회장 눈에 또 다른 무엇이 들어왔다. 예술이었다. 유럽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친해지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권 회장을 오페라극장이나 갤러리로 안내했다. 일을 마치고 그림을 감상하면 스트레스가 씻은 듯 날아가는 걸 느꼈다.
그때 권 회장은 문화경영을 구상했다. 그래서 회사의 모든 서류 맨 아래에 ‘하우스 오브 컬처 앤드 펀(The house of culture and fun)’이란 문구를 넣었다. “한국 기업들은 ‘성장’만을 위해서 뛸 때였습니다. 저는 예술을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일류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창의성, 시민의식 등도 문화적 소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권 회장은 옐로우코너 체인을 전국에 낼 계획이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달러 가까이 됩니다. 문화를 즐길 만한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예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사진을 통하면 그게 가능합니다. 머지않아 친구의 개업식 선물로 사진 작품을 들고 가는 모습이 흔한 시대가 올 거예요. 상상만 해도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 한국 예술사진 시장은
미술품 시장의 5%수준…연간 30억원 불과
한 달에만 사진전 50여개…마니아 많아 ‘잠재력’ 커
한국 예술사진 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작품 하나 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 국내 작가는 30명 정도다. 작품값이 5000만원이 넘는 작가는 배병우(왼쪽) 김아타(오른쪽) 등 극소수다. 3000만원 내외에 사진 가격이 형성된 작가도 두어 명뿐이다. 작품 가격이 500만원 수준인 젊은 직업사진가는 30~40명 정도다.
프로사진가들이 평균 2년에 한 번 전시회를 열어 작품 10개 정도를 판매한다고 할 때 1년 동안 한국에서 거래되는 예술사진은 30억원어치가 안 된다. 적극적으로 사진을 구매하는 컬렉터도 200명 정도다. 전문가들은 미술시장 전체 규모에 비하면 5%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매달 한국에서 열리는 사진전은 50개에 가깝다. 이 가운데 사진애호가 전시회가 80%를 웃돈다. 국내에서 판매된 전문가용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는 100만대가 넘는다. 예술작품 거래 규모는 작지만 사진 마니아가 많아 잠재력은 크다는 것이다. 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는 “한국 중산층의 예술품 소비는 같은 소득 수준의 유럽 국가에 비해 3분의 1도 안 된다”며 “사진은 에디션을 늘리고 가격을 내리면 두텁게 형성된 잠재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그곳에서 권 회장은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 본 간판을 또 발견한 것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옐로우코너가 어떤 갤러리냐고 물었다. 옐로우코너는 사진 판매 전문 갤러리인데 파리에 여러 개 있을 뿐 아니라 세계에 체인이 50여개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순간, 권 회장의 머릿속에는 번개가 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1년여 뒤인 2014년 12월, 그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광장 한복판에 옐로우코너 한국 1호점을 열었다. 국내에서 아이그너, 겐조, 베르사체, 소니아리켈, 장프랑코페레 등 세계적 패션업체 20여개의 에이전트를 맡아 ‘명품업계 대부’로 통하던 권 회장은 30년 가까이 하던 패션사업을 접고 문화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18일 옐로우코너 코엑스점에서 그를 만났다.
옐로우코너 싼 가격의 비밀은 ‘에디션’
“마침 새로운 사업을 찾고 있을 때였어요. 우연히 옐로우코너 쇼윈도를 보다가 무엇에 이끌리듯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걸려 있는 작품의 수준이 꽤 높아 보였어요. 가격은 10만원대부터 300만원대까지 다양했습니다. 기존 작품 가격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었죠. 무엇보다도 사진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어요. 갤러리 직원에게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에 이런 좋은 작품을 팔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옐로우코너의 독특한 사업방식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제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옐로우코너의 비밀은 작품을 찍어 내는 수를 뜻하는 ‘에디션’에 있었다. 보통 유명 사진가는 한 작품 에디션을 5~20개로 제한하고 비싼 값을 받는다. 옐로우코너는 작품 에디션을 최대 200개로 늘렸다. 작품 크기는 줄였다. 예를 들면 대형으로 5장 출력해 1000만원씩에 파는 작품을 작게 200장 제작해 40분의 1 가격인 25만원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일부 고소득 계층만 살 수 있던 예술작품을 보통 사람들도 구입해서 선물하거나 거실에 걸어놓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옐로우코너의 ‘철학’이었다. 이런 비즈니스 목표와 방식은 세계 사진가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다.
권 회장은 재빠르게 사업성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한국에서 옐로우코너를 운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의 이름은 유럽 패션계에 꽤 알려져 있었다. 옐로우코너 본사도 흔쾌히 권 회장을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권 회장은 코엑스에 옐로우코너 1호점을 낸 지 몇 달 만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2호점을 열었다. 대형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도 운영했다. 올해 서울 삼청동에 3호점을 낼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변신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명품 옷이나 가방에 돈을 썼습니다. 문화 수준이 올라가면서 여행, 음악, 레저, 미술, 사진 등으로 소비가 다변화됐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커질 부분은 ‘예술에 대한 소비’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어요. 30년 전, 한국 최초로 유럽 명품 브랜드를 들여올 때의 그 ‘느낌’이 다시 왔습니다.”
30대 중반에 명품수입업 뛰어들어
권 회장은 1980년대 초 한 대형 건설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패션업 진출을 꾀하던 회사가 그에게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만한 해외 브랜드를 찾아보라는 임무를 줬다. 그는 1년에 30회 가까이 유럽, 미국 등지로 출장을 다녔다. 이때 해외 명품 시장에 대한 눈을 뜨게 됐다. 당시 서구에는 옷에 큰돈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인에게 옷은 그냥 ‘의복’일 뿐이었지만 유럽인에게 옷은 ‘패션’이었다. 일을 추진하면서 권 회장 자신도 월급을 모아 발렌티노, 지방시, 랑방 등을 사 입었다.
그런데 회사 사업은 불발에 그쳤고 허탈해 하던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정부가 1980년대 중반부터 수입 자유화 조치를 시행한 것이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향했다. 1986년 독일 명품패션 브랜드 아이그너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당시는 ‘보따리상’들이 밀수로 들여온 외국 유명 브랜드 옷이 조금씩 유통되던 때였다. 권 회장은 겐조, 소니아리켈, 베르사체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를 줄줄이 들여왔다. “그때 제가 서른다섯 살이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한국에서도 중산층이 돈을 모아 명품을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처음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가 들여온 브랜드들은 한국 유명 백화점과 면세점 진출에 성공했다. 창업 5년 만에 20억원을 넘어선 매출은 꾸준히 증가해 2000년 200억원, 2006년 500억원에 이르렀다. 권 회장은 프랑스 국가공로훈장(2006년)과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2013년)을 수훈했다. 2008년 무역의 날엔 대통령표창도 받았다. 그가 들여온 브랜드 제품들이 국내 패션사업 발전에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해외 유명 브랜드를 들여온 것은 단순히 돈벌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진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해외 브랜드와 경쟁하면서 한국 패션문화와 산업도 성장했다”고 말했다.
“창의성도 문화적 소양에서 나오죠”
비즈니스가 궤도에 오를 때쯤인 1990년대 초반, 권 회장 눈에 또 다른 무엇이 들어왔다. 예술이었다. 유럽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친해지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권 회장을 오페라극장이나 갤러리로 안내했다. 일을 마치고 그림을 감상하면 스트레스가 씻은 듯 날아가는 걸 느꼈다.
그때 권 회장은 문화경영을 구상했다. 그래서 회사의 모든 서류 맨 아래에 ‘하우스 오브 컬처 앤드 펀(The house of culture and fun)’이란 문구를 넣었다. “한국 기업들은 ‘성장’만을 위해서 뛸 때였습니다. 저는 예술을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일류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창의성, 시민의식 등도 문화적 소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권 회장은 옐로우코너 체인을 전국에 낼 계획이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달러 가까이 됩니다. 문화를 즐길 만한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예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사진을 통하면 그게 가능합니다. 머지않아 친구의 개업식 선물로 사진 작품을 들고 가는 모습이 흔한 시대가 올 거예요. 상상만 해도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 한국 예술사진 시장은
미술품 시장의 5%수준…연간 30억원 불과
한 달에만 사진전 50여개…마니아 많아 ‘잠재력’ 커
한국 예술사진 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작품 하나 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 국내 작가는 30명 정도다. 작품값이 5000만원이 넘는 작가는 배병우(왼쪽) 김아타(오른쪽) 등 극소수다. 3000만원 내외에 사진 가격이 형성된 작가도 두어 명뿐이다. 작품 가격이 500만원 수준인 젊은 직업사진가는 30~40명 정도다.
프로사진가들이 평균 2년에 한 번 전시회를 열어 작품 10개 정도를 판매한다고 할 때 1년 동안 한국에서 거래되는 예술사진은 30억원어치가 안 된다. 적극적으로 사진을 구매하는 컬렉터도 200명 정도다. 전문가들은 미술시장 전체 규모에 비하면 5%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매달 한국에서 열리는 사진전은 50개에 가깝다. 이 가운데 사진애호가 전시회가 80%를 웃돈다. 국내에서 판매된 전문가용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는 100만대가 넘는다. 예술작품 거래 규모는 작지만 사진 마니아가 많아 잠재력은 크다는 것이다. 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는 “한국 중산층의 예술품 소비는 같은 소득 수준의 유럽 국가에 비해 3분의 1도 안 된다”며 “사진은 에디션을 늘리고 가격을 내리면 두텁게 형성된 잠재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