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하드웨어 기업에서 벗어나 콘텐츠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세계 2위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를 인수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성장 한계에 직면한 애플이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이폰 엔진' 식은 애플…'미디어 공룡' 타임워너에 러브콜
○미디어 콘텐츠로 성장 정체 극복

27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말 뉴욕 타임워너 본사에서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타임워너와 협의하던 자리에서 아예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인수 제안은 애플에서 아이튠즈스토어와 애플뮤직, 아이클라우드 등 서비스사업을 담당하는 에디 큐 수석부사장을 통해 이뤄졌다. 타임워너에서는 올라프 올라프손 경영전략부문 대표가 참석했다. 하지만 구체적 협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인수 시도는 초기 단계에서 끝났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나 제프 뷰크스 타임워너 CEO가 관여하지도 않았다.

FT는 그러나 타임워너 인수를 고려 중이라는 것 자체가 애플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지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타임워너는 CNN과 HBO, 카툰네트워크(CN) 등 뉴스와 영화, 애니메이션 케이블 채널과 함께 할리우드 최대 영화, TV쇼 제작회사 워너브러더스를 거느린 ‘미디어 공룡’이다. 2014년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21세기폭스가 인수에 나섰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당시 제시한 인수가액은 730억달러(약 86조원)였지만 타임워너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며 일축했다. 타임워너의 현재 시가총액은 600억달러 수준으로, 애플이 보유한 2160억달러의 현금으로 상당한 프리미엄을 지급하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쿡 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 후 인수합병(M&A)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그는 “지난 1년간 15개 기업을 인수했지만 의미있는 기업이 없었다”며 “지금까지 사들인 기업보다 더 큰 기업을 인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8억명의 아이폰 사용자 활용전략

애플은 지난 3월 끝난 최근 분기 실적에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하면서 13년간 이어진 성장신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이폰 판매는 1년 전보다 1000만대 감소했다. 외신은 스마트폰산업이 성숙 단계로 진입하면서 애플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내놔야 할 상황에 놓였다고 전했다.

FT는 애플이 타임워너 인수를 통해 세계에 깔린 10억대의 아이폰을 활용해 수익을 올리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중복사용자를 감안해 약 8억명의 아이폰 사용자에게 기존 음악서비스 외에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수익원으로 묶어두겠다는 전략이다.

애플의 콘텐츠 판매 등 서비스부문은 지난 분기 전체 매출의 12%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보다 3%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 6월 시작한 애플뮤직은 1년 만에 1300만명의 유료 이용자를 확보했다.

애플이 타임워너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지지부진한 동영상 유료서비스 콘텐츠를 단번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9.99달러의 사용료를 받는 애플뮤직 서비스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쿡 CEO도 최근 “전통적인 하드웨어 판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관련 비즈니스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애플이 동영상 스트리밍 1위 기업인 넷플릭스 인수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했다. 영화와 드라마산업 주도권이 제작사에서 스트리밍회사로 넘어가고, 넷플릭스가 자체 콘텐츠 제작에 나서는 등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가총액은 440억달러 수준으로 애플로서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액수다.

○차량공유 등 전방위 신사업 시도

애플은 스마트폰을 대신할 신성장사업으로 미디어 외에 차량공유, 무인자동차, 가상현실(VR) 등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다. 애플은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중국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업체 디디추싱에 1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 애플페이 등 모바일 결제서비스 시장을 확대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애플이 개발하고 있는 자율주행차량과의 시너지를 노린 투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AR)사업도 애플의 관심사다. 애플은 최근 몇 년 동안 독일 메타이오, 미국 플라이바이미디어 등 AR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인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VR업체 라이트로 출신 연구원으로 이뤄진 수백명 규모의 연구개발팀을 운영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