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더 나은 삶을 그려보며
대표적 압축성장 국가인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며 선진국 경제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 물질적 풍요로 인해 참살이(well-being)가 나아졌느냐고 반문한다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개인 영역 삶의 질을 객관화할 목적으로 개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 이코노미스트 EIU의 삶의 질 지수(QLI: quality of life index)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면 더욱 자신이 없어진다.

작년에 발표된 OECD의 ‘2015 더 나은 삶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36개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11개 세부 항목 중에서도 ‘일과 삶의 균형’은 33위로 겨우 꼴찌를 면한 수준이다.

문득 ‘에디슨은 전기를 발명하고 대한민국은 야근을 개발했다’는 오래전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야근이 일상화될수록 성과가 봄눈처럼 녹아내리며 몸과 마음이 가정에서 멀어져가는 ‘야근의 구축효과’를 경험했을 것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평균(1770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OECD 국가 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이다. 이 정도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중독 증세를 우려할 만하다. 일 중심의 가치체계 아래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지친 몸으로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 일과 생활의 양립을 꿈꾸는 것은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일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노동, 자본 등 생산 요소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생산성 하락으로 결국 한계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 안되면 될 때까지 하라는 ‘피로사회’가 생산성 하락의 주범이라는 의미다. 밤낮없이 일해도 우리 경제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필자 역시 주말만큼은 직원들을 온전히 가정으로 돌려주고자 노력하지만 주말에도 쉬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불빛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미국인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를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3F(fun, friends, family)라고 답할 것이다. 마음을 의탁할 만한 지인이나 변변한 취미 하나 없이 항상 일에 쫓겨 자녀와 함께할 시간마저 갖지 못하는 우리 직장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용환 < NH농협금융지주 회장 yong1148@nonghyu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