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불황 부른 일본 구조조정 '4대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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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보고서
(1) 거품 커져도 위기의식 실종
(2) 시너지 고려 없이 기업 통합
(3) '과거의 영광'에 취한 기업
(4) 정권마다 바뀐 성장전략
(1) 거품 커져도 위기의식 실종
(2) 시너지 고려 없이 기업 통합
(3) '과거의 영광'에 취한 기업
(4) 정권마다 바뀐 성장전략
해운 조선 화학 등 국내 주요 산업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에 실패해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31일 ‘일본 기업 구조조정 20년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불황에 빠졌지만 초기에 신속한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해 20년 장기불황을 초래했다”며 “‘골든타임’을 놓치고 구조조정에 10년 이상을 허비하는 바람에 신성장 분야 개발에도 주력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1) 안일했던 위기의식
보고서는 일본 장기불황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안일했던 위기의식’을 꼽았다. 일본 장기불황의 계기가 된 주식 및 부동산시장의 버블 붕괴는 각각 1990년, 1991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 기업인들과 관료들은 당시 성장률(1991년 3.4%)만 믿고 심각성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 버블 붕괴는 부동산, 건설, 금융의 문제이고 제조업은 건실하다는 인식이 당시에 팽배했다.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진 1992년에도 일본 기업은 이를 통상적 경기순환으로 간주했다. 소비가 둔화되면서 과잉설비, 과잉인력, 과잉채무 등 ‘3대 과잉문제’가 대두됐지만 일본 기업은 원가 절감이나 경비 삭감 등 통상적 불황 대책에만 치중했다. 선제적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서 장기간 신규 채용은 미뤄졌고, 이는 청년층의 경제활동 기회를 제한해 일본 경제 자체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근본 원인이 됐다.
(2) 무분별한 통합의 후유증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술적인 부문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도 장기불황을 촉발한 원인이다. 메모리반도체산업이 대표적이다. 1999년 히타치와 NEC의 관련 부문을 통합해 NEC히타치메모리(엘피다메모리)라는 회사를 새로 설립했지만 두 회사의 기술 규격이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실패한 엘피다메모리는 결국 2012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됐다. 이 연구위원은 “재무적 측면만 보고 경쟁사 간 통합을 진행했다가 실패한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와 미쓰시비중공업 역시 공동출자를 통해 대형 컨테이너 선박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술과 노하우 부족으로 납기가 지연되면서 지난해엔 수주금액의 두 배가 넘는 손실을 내기도 했다.
(3) 혁신에 실패한 기업
‘과거의 영광’에 취해 시장 트렌드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 기술 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문제였다. 샤프는 LCD(액정표시장치) 등 기존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쳤다. 2007년 약 3조원을 투자해 60인치 대형 TV용 LCD 제조공장을 신설했지만 이는 결국 샤프의 몰락을 불렀다. 60인치 TV 수요가 예상보다 없었던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닥쳐 세계적인 불황에 직면했던 탓이다. ‘워크맨 신화’에 도취됐던 소니 역시 워크맨을 카세트형에서 미니디스크(MD)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등 ‘혁신형 제품’ 대신 ‘개량형 제품’ 개발에만 치중하다 MP3에 시장을 빼앗겼다.
사업 철수나 매각 등에 대한 신속한 결정도 이뤄지지 못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 가치가 소멸될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돼야 겨우 사업 매각 등을 논의할 수 있는 경직된 의사결정 분위기도 구조조정을 가로막은 요인”이라고 말했다.
(4) 일관성 없는 성장전략
장기불황에 돌입한 뒤 상당 기간 일본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지 못한 것도 패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일본 정부는 불황 조짐이 나타나고 15년이 지난 2006년에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신경제성장전략이 계기였다. 이 위원은 “역대 정권의 성장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용도 바뀌는 바람에 구조조정이 혼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보고서는 일본 장기불황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안일했던 위기의식’을 꼽았다. 일본 장기불황의 계기가 된 주식 및 부동산시장의 버블 붕괴는 각각 1990년, 1991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 기업인들과 관료들은 당시 성장률(1991년 3.4%)만 믿고 심각성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 버블 붕괴는 부동산, 건설, 금융의 문제이고 제조업은 건실하다는 인식이 당시에 팽배했다.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진 1992년에도 일본 기업은 이를 통상적 경기순환으로 간주했다. 소비가 둔화되면서 과잉설비, 과잉인력, 과잉채무 등 ‘3대 과잉문제’가 대두됐지만 일본 기업은 원가 절감이나 경비 삭감 등 통상적 불황 대책에만 치중했다. 선제적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서 장기간 신규 채용은 미뤄졌고, 이는 청년층의 경제활동 기회를 제한해 일본 경제 자체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근본 원인이 됐다.
(2) 무분별한 통합의 후유증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술적인 부문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도 장기불황을 촉발한 원인이다. 메모리반도체산업이 대표적이다. 1999년 히타치와 NEC의 관련 부문을 통합해 NEC히타치메모리(엘피다메모리)라는 회사를 새로 설립했지만 두 회사의 기술 규격이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실패한 엘피다메모리는 결국 2012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됐다. 이 연구위원은 “재무적 측면만 보고 경쟁사 간 통합을 진행했다가 실패한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와 미쓰시비중공업 역시 공동출자를 통해 대형 컨테이너 선박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술과 노하우 부족으로 납기가 지연되면서 지난해엔 수주금액의 두 배가 넘는 손실을 내기도 했다.
(3) 혁신에 실패한 기업
‘과거의 영광’에 취해 시장 트렌드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 기술 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문제였다. 샤프는 LCD(액정표시장치) 등 기존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쳤다. 2007년 약 3조원을 투자해 60인치 대형 TV용 LCD 제조공장을 신설했지만 이는 결국 샤프의 몰락을 불렀다. 60인치 TV 수요가 예상보다 없었던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닥쳐 세계적인 불황에 직면했던 탓이다. ‘워크맨 신화’에 도취됐던 소니 역시 워크맨을 카세트형에서 미니디스크(MD)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등 ‘혁신형 제품’ 대신 ‘개량형 제품’ 개발에만 치중하다 MP3에 시장을 빼앗겼다.
사업 철수나 매각 등에 대한 신속한 결정도 이뤄지지 못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 가치가 소멸될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돼야 겨우 사업 매각 등을 논의할 수 있는 경직된 의사결정 분위기도 구조조정을 가로막은 요인”이라고 말했다.
(4) 일관성 없는 성장전략
장기불황에 돌입한 뒤 상당 기간 일본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지 못한 것도 패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일본 정부는 불황 조짐이 나타나고 15년이 지난 2006년에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신경제성장전략이 계기였다. 이 위원은 “역대 정권의 성장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용도 바뀌는 바람에 구조조정이 혼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