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 전시된 캉용펑의 ‘봄날의 달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 전시된 캉용펑의 ‘봄날의 달밤’.
웨민준, 왕광이, 장샤오강, 쩡판즈는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으로 불린다. 국내 미술시장에 처음 소개된 2000년 무렵만 해도 이들의 그림값은 100호(가로 1.6m세로 1.3m) 크기가 1000만~3000만원 수준이었다. 2013년 쩡판즈의 ‘최후의 만찬’은 250억원에 낙찰돼 중국 현대미술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15년도 안돼서 작품값이 최대 800배 이상 치솟은 셈이다. 최근 중국 현대미술 인기 작가의 작품은 값이 너무 많이 올라 투자자들의 관심이 미래 유망작가로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장샤오강 등 중국 인기 작가의 전시를 주로 연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가 중국 화단에서 미래의 ‘블루칩’ 작가로 손꼽히는 캉용펑(康勇峰·36)에 주목했다. 아트사이드는 그를 서울로 초대해 2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전시 주제는 ‘열정’.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로 이데올로기나 상업주의에 저항한 ‘차이나 아방가르드’ 세대와 달리 톡톡 튀는 개성과 새로운 시도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고민을 유쾌하게 풀어낸 회화 20여점을 걸었다.

2002년부터 중국을 기반으로 미국, 프랑스, 스위스에서 활동해온 캉용펑은 부딪쳐 찌그러진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준 반 고흐와 렘브란트 같은 예술가, 매화 등을 소재로 작업해왔다. 최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그의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됐다.

서울에 처음 온 캉용펑은 “그림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잉태하는 예술”이라며 “파괴와 생산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에도 ‘원초적인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고 했다. 전시 작품은 언뜻 지두화(指頭畵)처럼 보이지만 큰 붓과 나이프, 빗자루로 그린 특유의 질감과 손맛이 살아 있다. 그의 10m짜리 대작 ‘봄날의 달밤’은 고목을 비롯해 부서진 자동차와 오토바이, 죽은 돼지, 정면을 응시하는 사자 등을 소재로 생명력을 다룬 대표작이다. 당나라 시인 장약허(張若虛)의 시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차용했다. 중국 사회에 급속히 유입된 자본주의 문화를 봄빛 에너지로 형상화한 게 이채롭다.

작가는 “생산과 소비, 진화,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현대사회의 명암을 화면 위에 올려놨다”며 “중국 사회의 잠재력을 거울 조각이나 노끈으로 묘사해 운동감과 생명력을 살려냈다”고 설명했다.

반 고흐 등 예술가를 소재로 한 작품, 매화를 역동적으로 그린 작품, 아름다움과 고통을 동시에 담아낸 자동차 그림에서도 몽환적이지만 힘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톈진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캉용펑은 “회화가 지닌 기법을 활용해 자본주의에 물든 중국인의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살려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02)725-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