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Issue & Focus] 식지 않는 김정은의 '스위스 시계 사랑'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행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에서 고가의 시계류와 최신 의료장비·약품 반입을 계속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유별난 ‘스위스 시계 사랑’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의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당 39호실이 산하 위장 무역회사를 통해 초고가 스위스제 ‘오메가’(사진)는 물론 ‘티쇼’ 같은 중저가 시계 구매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김정은 일가와 특권층 전용 병원인 봉화진료소용으로 추정되는 고가의 최신 의료장비와 약품 반입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북한의 스위스제 시계 수입은 2011년 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급증했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FHS)에 따르면 2010년 393개, 5만1568스위스프랑(약 5만1990달러)이던 북한의 스위스 시계 수입 규모는 이듬해 2011년 1513개, 11만2000스위스프랑(약 11만2930달러)으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김정은이 본격 집권한 2012년 북한의 스위스 시계 수입액은 20만225스위스프랑(약 20만1880달러, 1539개)으로 다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그러나 북한의 스위스제 시계 수입은 2013년(561개, 10만6418스위스프랑) 절반 가까이 감소한 뒤 이듬해인 2014년에는 전혀 없었다. 지난해에는 509개, 7만9000스위스프랑(약 7만9650달러)으로 2010년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는 87개, 1만1049스위스프랑(약 1만1140달러)으로 전년 동기보다 80% 이상 줄었다.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측근을 포함해 특권층의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스위스제 고급시계를 선물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일가가 해외에 은닉한 비자금 규모는 10억~40억달러(약 1조1825억~4조7300억원)로 추정되는데 스위스에만 수억달러가 예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일부가 고가의 선물 구매 등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노동당 제7차 당 대회에 참가한 대표자들에게도 평면TV 등 고가품을 선물로 지급했는데 대부분 외국산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지난달 18일 고급 시계와 수상 레저 장비를 비롯한 사치품목 25개를 대북 수출금지 품목으로 지정했다. 스위스가 UN의 대북제재결의안을 적극 이행하기로 하면서 김정은의 스위스 시계 사랑이 멈출지 주목된다. 북한의 최대 무역국이자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중국도 강력한 대북제재에 동참함에 따라 중국을 통한 우회 수입도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