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좋아요'에 취한 긍정사회…미를 잃고 몰개성에 빠지다
주름 없이 매끈한 피부, 깔끔하게 제모된 다리, 잡티 하나 없이 뽀얀 얼굴을 담은 ‘셀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주로 매끄럽다. 매끈하게 ‘잘빠진’ 자동차,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 등이 그렇다. 심지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소통마저 매끄럽게 다듬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 기분 좋은 것들, 긍정적인 이야기만 주고받고, ‘좋아요’로 소통한다. 그 안에 어떤 아픔이나 상처도 없는 ‘좋아요의 미학’이다.

매끄러움은 늘 우리에게 거역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나를 뒤흔들고 성찰하게 하는 부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긍정사회’의 한 단면이다.

《피로사회》 《투명사회》를 쓴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이런 ‘매끄러움의 미학’에 반기를 든다.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구되는 아름다움은 모든 부정성과 낯섦을 제거하고 긍정성에만 매몰된 매끄러움의 미학이다. 긍정성의 미학에 지배되는 이는 좀비나 마찬가지다.

과거의 아름다움은 지금과 의미가 달랐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아름다움은 육체적이면서 정신적인 가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육체의 매끈함, 섹시함이라는 성적 매력 그 자체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도덕적 아름다움이나 개성 있는 아름다움은 뒤로 밀려났다.

섹시함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아름다움을 재단하자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상적인 소비자는 개성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섹시함을 소비하는 사회는 소비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개성이 없을수록 좋은 공간은 또 있다. 저자는 “사람이 개성이 없고 형상이 없을수록, 매끄럽고 뱀장어처럼 미끄러울수록 더 많은 친구를 갖게 된다”며 “페이스북은 ‘개성 없음의 시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구원’은 무엇일까. 단순한 만족감을 넘어 윤리적이고 인식적인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는 부정성의 영역이라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숭고한 아름다움 속에는 나를 뒤흔들고 파헤치고, 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너는 네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강조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