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마스크맨?
경찰이 여성을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남성 주민과 택배기사, 음식배달원 등에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스크와 헬멧을 쓰지 말도록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얼굴을 가린 남성과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을 배려한 조치라고 하지만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일부 경찰서가 관내 아파트단지를 출입하는 남성 주민과 배달원 등에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스크와 헬멧 착용을 자제해줄 것을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인근 음식점주 등을 통해 당부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달 30일 열린 ‘전국경찰지휘부 회의’에서 지방경찰청이나 일선 경찰청에 이런 내용의 여성범죄 예방 대책을 강구할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자체 설문 등을 통해 여성들이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낯선 남성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파악해 이 같은 조치를 마련했다. 한 경찰서장은 “주민의 의견을 들어보면 여성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며 “남성 주민이나 택배기사, 음식배달원 등에게 엘리베이터 안에선 잠시 마스크와 헬멧을 벗어주도록 권장하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조치에 대해 택배기사와 배달원 등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직업 특성상 미세먼지나 추위 등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필요한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모씨(30·서울 서초구)는 “여성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스크를 벗으라는 것은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지나친 조치라는 말들이 나온다. 또 다른 경찰서장은 “미세먼지나 독감 탓에 마스크를 써야 하는 남성도 있을 텐데 경찰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