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비정규직 지원 반대한 노조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집행부가 하청업체 근로자 지원을 위해 추진하던 ‘나눔과 연대 기금’이 정규직 노조원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정규직 노조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돕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결국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 지키기’가 여전하다는 결론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노동계의 한탄이다.

김성락 기아차 노조위원장은 지난 2일 끝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성과급 일부를 출연해 비정규직을 지원하는 기금 50억원을 조성하자’는 안건을 올렸다. 김 위원장은 “기금을 통해 원·하청 불평등을 줄일 수 있고 근로자들이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환원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3만여명의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1인당 10만원 정도씩 걷고, 나머지는 회사에 출연을 요청한다는 계획이었다.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는 지난해 성과급으로 1인당 평균 1000만원 이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안건은 정규직으로 구성된 대다수 대의원 반대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대의원들은 “왜 우리 돈으로 그들(비정규직)을 지원해야 하느냐”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현 집행부를 향해 ‘회사 눈치만 보는 어용노조’라는 비판까지 제기했다.

법적으로 대의원들의 논리가 맞을 수 있다. 사내하청이나 협력사 근로자들의 근무 조건은 각 회사와 소속 근로자가 정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원청인 대기업 정규직과 하청업체 직원의 근무 조건 격차에 대한 정규직 노조의 책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지난해 기아차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9700만원, 사내하청 근로자는 5000만원이었다. 협력사로 가면 차이는 더 커진다. 1차 협력사 정규직은 평균 4700만원을 받지만 하청업체는 3000만원으로 내려간다. 2차 협력사는 정규직이 2800만원, 사내하청이 2200만원이다. 노조원 중심의 정규직 연봉을 올리려다 보니 협력사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하철 구의역에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인 은성PSD 직원이 무리한 작업 끝에 사망한 사건 이후 정규직 노조의 ‘갑질’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정규직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은 어려워 보인다.

강현우 산업부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