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항산 대협곡과 바취안샤 케이블카
타이항산 대협곡과 바취안샤 케이블카
일정이 ‘산’으로 가득했기 때문일까. 산보다는 바다를,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인 것을 선호해왔기에 조금은 낯섦에서 오는 설렘을 안고 중국으로 떠났다. 귀에 너무도 익숙한 ‘타이산(泰山)’과 생소한 ‘타이항산(太行山)’. 그 모습이 궁금했다. 지난공항에 내려 산둥성 타이안으로 향한 지 두 시간여. 내내 평온한 밀밭 사이를 달린 끝에 중국의 혼이 담겨 있다는 ‘타이산’을 먼저 만났다.

오악독존과 소원 성취, 타이산

타이산에 오르는 사람들
타이산에 오르는 사람들
중국 5악 중 ‘동악(東嶽)’인 타이산은 경관이 화려하거나 그 이름처럼 장엄하지는 않지만, 오악독존(五嶽獨尊·오악 중의 제일)으로 불릴 만큼 으뜸으로 친다. 중국인들이 ‘정신이 깃든 산’으로 여기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타이산에 오르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해서 중국 고대 제왕들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평안을 빌었을 만큼 소원을 이뤄주는 ‘기 센 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무리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지만, 오르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가파른 계단 수십개를 올라 유명한 도교사원인 비샤츠(碧霞祠)에 도착하니 우리를 위한 특별한 기도 의식이 열렸다. 염불을 하는 한참 동안 차분하게 소원을 빌었다. 의식이 끝난 뒤 제단 앞에 서서 향을 피우고 인사를 두 번, 작은 목소리로 소원을 다시 한 번 되뇌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확천금 같은 몽상보다는 일상의 평온과 안녕을 바라는 소박한 마음, 그 마음을 염원해주는 의식을 도사들과 함께하니 이른바 ‘기도발’이 더욱 잘 들을 듯했다.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함께 소원 성취를 비는 진심은 같지 않을까.

어느덧 날이 어둑해지고 뮤지컬 ‘봉선대전(封禪大典)’이 펼쳐지는 야외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오전의 산행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첫 장면을 본 순간 피곤함이 사라졌다. 타이산을 무대로 진시황, 한무제, 측천무후 등 중국 역대 황제들이 올린 봉선제를 재현하는 공연이 좌중을 압도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타이산과 관련한 역사를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공연은 특유의 화려한 연출력과 세밀한 무대 구성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동양의 그랜드캐니언, 타이항산

타이산 등은 준비운동에 불과하다며 타이항산에 오르려면 본격적인 태세를 갖춰야 한단다. 얼마나 힘이 들까 지레 겁이 났다. 산둥성에서 다섯 시간 정도를 차로 달려 타이항산 대협곡이 있는 산시성에 도착했다.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타이항산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달랐다. 약 2억2500만㎡로 이뤄진 타이항산 대협곡은 ‘대륙의 규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타이항산 대협곡은 바취안샤(八泉峽), 훙더우샤(紅豆峽), 헤이룽탄(黑龍潭), 칭룽샤(靑龍峽), 쯔퇀산(紫團山) 등 크게 다섯 지역 관광지로 나뉘지만 그중에서도 바취안샤는 아직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보물 같은 곳이다. 지난 4월에야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하는 등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 입구에 들어서니 굽이굽이 몰아친 절벽이 절로 탄성을 내뱉게 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어찌 보면 무시무시하지만 인간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형상이었다. 에메랄드빛 물결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20분여쯤 달렸을까. 절경에 눈길을 뺏겨 순식간에 도착한 듯했다. 배에서 내려 한쪽 옆에 쉴 새 없이 흐르는 협곡을 두고 걷다 보니 정신이 맑아졌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그대로 다가왔다.

트레킹 코스를 따라 한 시간쯤 걸어 케이블카에 도착했다. 총 길이가 3㎞에 달하는 바취안샤의 케이블카는 ‘ㄱ’자로 꺾이며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었다. 발아래 웅장한 협곡이 가득하고 운무가 둘러싼 케이블카 속에 있으니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 몽롱해졌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경에 넋을 잃었다. 진귀한 경관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이 짜릿함에 산을 오르는 게 아닐까.

이제는 현실로 돌아갈 시간. 절벽 아래가 그대로 보이는 아찔한 유리 바닥에 서니 다리가 절로 후들거렸다. 210m를 순식간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톈쿵즈청(天空之城)을 타고 땅에 발을 디디니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했다.

타이항산의 지존, 왕망링

중국의 문학가 리예는 ‘왕망링(王莽嶺)에 오르지 않으면 타이항산을 안다 할 수 없다. 천하에 기이한 봉우리가 이곳에 다 있으니 굳이 오악에 오를 이유가 무엇이냐’며 왕망링을 극찬했다고 한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지만 피곤함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저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은 왕밍링의 절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했다. 이번 일정의 ‘화룡점정’이었다.

타이산과 타이항산, 이 황홀한 광경을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눈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를 했으리라. 산과 교감하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 보낸 그 시간 동안 ‘힐링’이라는 큰 선물을 얻었다.

타이산·타이항산=이금아 기자 shinebijou@hankyung.com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산둥성 지난공항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중국과의 시차는 한 시간. 타이산과 타이항산은 높고 험해 지상과의 온도 차가 매우 크다. 두껍고 따뜻한 옷과 편한 신발을 준비해야 한다. 비가 자주 내리고 오후 들어 안개가 낄 수 있으니 오전에 움직이는 게 좋다. 타이산·타이항산대협곡 한국사무소 (02)6091-7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