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부터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았다가 14일 이내에 계약을 철회하고 대출금을 갚으면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대출계약 철회권’이 시행된다. 그동안 대출을 받은 뒤 취소하고 싶어도 중도상환수수료(대출원금의 0.8~1.4%) 부담 탓에 대출계약을 해지하지 못하던 금융소비자들은 부담을 덜 전망이다. 하지만 은행 등 금융권에선 거액을 대출받아 ‘사채놀이’로 수익을 올린 뒤 대출을 취소하는 도덕적 해이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무르고 싶은 대출, 14일 이내면 불이익 없이 철회
금융위 “금융 소비자 권리 보호”

금융위원회는 ‘대출계약 철회권’ 제도를 오는 4분기에 시행할 계획이라고 14일 발표했다. 대출계약 철회권은 금융소비자가 대출을 받았다가 14일 안에 계약을 철회하면 중도상환수수료 납부 등의 부담을 지지 않고 기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다. 지금은 대출을 받은 뒤 2주 안에 취소하면 담보대출은 원금의 1.4%, 신용대출은 원금의 0.8%를 중도상환수수료로 물어야 한다. 1억원의 담보대출을 받았다가 취소하면 14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출을 받고 나서 다른 금융회사에서 더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도 수수료 부담 때문에 대출계약을 취소할 수 없는 등 소비자 불편이 많았다”고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새 제도는 은행을 비롯해 보험사, 카드사, 저축은행, 신협 등 2금융권에서도 동시에 시행될 예정이다. 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은 개인으로 제한한다. “개인은 사전 정보 부족으로 충분한 검토 없이 대출받을 가능성이 법인보다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란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액 상한선도 있다. 신용대출은 4000만원 이하, 담보대출은 2억원 이하 금액에 대해서만 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계약을 철회하려면 대출받은 뒤 14일 안에 해당 금융회사에 서면, 전화, 인터넷 등으로 철회 의사를 밝히고 원리금을 갚으면 된다. 다만 담보대출은 근저당권 설정 수수료와 세금 등을 차주(借主)가 부담해야 한다. 근저당권 설정 수수료는 담보대출을 2억원 받을 경우 150만원가량이다. 금융위는 대출계약이 철회되면 금융회사나 신용정보원, 신용조회회사(CB) 등에 등록된 대출 정보도 삭제해주기로 했다.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급전 놀음’ 으로 악용 가능성

정부는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출계약 철회권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은행 등 금융권에선 이 제도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채놀이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A씨가 은행에서 연 4% 금리로 3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은 뒤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연 15% 금리로 빌려주는 식으로 이자 차익을 챙긴 뒤 대출계약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일종의 무위험 차익거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대출금이 급전대출 형태의 ‘이자 놀음’ 재원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일정 기간에 반복적으로 대출계약을 철회하는 경우 철회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선 은행 등 금융회사의 손실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대출계약 철회권 도입으로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데 따른 손실을 대출 금리에 전가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대출만 해도 서류 작성과 심사 등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철회권을 도입하면 은행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