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역외탈세에 또다시 칼을 빼 들었다. 지난 1월 대기업 오너 등이 포함된 30여건에 대한 동시다발적으로 세무조사한 지 5개월 만이다.

국세청은 15일 역외소득 은닉 혐의 36건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한승희 국세청 조사국장은 “해외 탈세제보와 정보교환 등을 통해 축적한 정보를 정밀 분석해 탈루 혐의가 큰 법인과 개인을 선정했다”며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대기업 일부 계열사와 사회 유력 인사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에 등장한 200여명의 한국인 중 3~4명이 포함됐다. 파나마 페이퍼스는 지난 4월 유출된 파나마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의 사상 최대 규모 조세회피 관련 자료를 말한다.
역외탈세 다시 칼 빼든 국세청…36명 세무조사 착수
◆차명계좌부터 환치기까지

국세청이 이날 공개한 역외소득 탈루 수법은 다양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설립한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에 투자 명목으로 거액을 송금하고 손실처리하거나, 자신이 설립한 현지법인에 투자한 자금을 빼돌려 유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해외 현지법인 주식을 조세회피처 서류상 회사에 싼값에 판 뒤 이를 다시 제3자에게 비싼 값에 매각해 양도차익을 얻고 조세회피처에 은닉·탈루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해외 현지법인을 세워 중개수수료와 용역대가 등 가공비용을 지급하고 이를 빼돌린 기업인도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세청은 1월부터 역외탈세 혐의 30여건을 조사해 지난달 말까지 25건을 마무리짓고 2717억원을 추징했다. 이 중 고의로 세금을 포탈한 6명은 조세범처벌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중대형 해운사 오너 A씨는 조세회피처에 임직원 명의로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선박을 취득하고 이를 운용해 벌어들인 수익을 홍콩 차명계좌로 받은 뒤 이른바 ‘환치기’를 통해 한국으로 가져와 사적으로 사용하다 덜미가 잡혔다. A씨는 소득세 등 5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제조업체 오너 B씨는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해외 현지법인의 배당금을 빼돌리다가 적발돼 수백억원의 세금 추징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또 다른 제조업체 사장 C씨는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아들의 해외 회사 주식을 비싼 값에 매입하고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아들의 양도소득세를 탈루하려다 수백억원의 세금을 내게 됐다.

◆“역외소득 더 이상 숨길 곳 없다”

국세청은 해외소득이나 재산을 숨긴 역외탈세자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내년부터 한미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TCA)이나 다자간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MCAA) 등이 잇따라 발효돼 미국 스위스 등 세계 101개국으로부터 해외 금융정보를 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역외탈세자들은 해외 재산을 숨길 곳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최근 국내 창업투자회사의 한 오너 관련 해외 이자소득자료를 외국 국세청으로부터 넘겨받아 해당 오너가 외국 벤처회사 지분을 팔아 거액의 양도차익을 얻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고 수백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파격적인 포상금을 통해 해외탈세 행위를 알고 있는 기업의 회계 담당 임직원이나 일반 국민의 활발한 제보도 유도할 방침이다.

탈루·포탈세액 산정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면 최대 30억원, 미신고 해외 금융계좌 적발에 중요한 자료를 제보하면 최대 20억원 등 최대 50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한승희 조사국장은 “역외소득 탈루는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도록 모든 역량을 모아 엄정하게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