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이레니아’.
연극 ‘사이레니아’.
“극장이 많이 좁고 어둡습니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면 퇴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대학로 TOM 연습실 A. 연극 ‘사이레니아’를 공연하기에 앞서 한 공연 관계자가 나와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1987년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수요일, 영국 남서쪽 콘월 해역에 있는 블랙록 등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8년 동안 블랙록 등대의 등대지기로 살아가는 아이작 다이어, 폭풍우에 휩쓸려온 묘령의 여인 모보렌 두 사람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공연장은 68㎡ 남짓한 규모의 ‘밀실’이다. 폭풍우에 고립된 등대의 밀폐된 느낌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무대가 곧 객석이다. 낡은 책상과 소파, 벽난로 등 소품 틈에 객석 의자 30석이 놓였다. 폭풍우 소리와 함께 아이작 다이어 역의 배우 이형훈이 비를 흠뻑 맞은 채로 들어온다. 그가 외투를 벗어 털자 객석으로 물이 튀었다. 그와 함께 블랙록 등대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극에 빠져들었다.

올여름 비좁은 사건 현장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 두 편이 무대에 오른다. 오는 8월15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사이레니아’와 다음달 5일부터 9월1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카포네 트릴로지’다. 두 작품 모두 밀폐된 무대 안에 객석을 배치하는 형식을 주로 선보인 영국 연출가 제로스 컴튼의 작품이다.

밀실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도의 몰입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사이레니아’ 제작진은 블랙록 등대의 밀실 느낌을 재현할 만한 극장을 찾다가 극장 연습실을 무대화했다. 조금이라도 발을 뻗으면 배우들이 걸려 넘어질 정도로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 배우의 눈물 자국까지 볼 수 있다.

모보렌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 전경수는 “관객들이 바로 앞에, 혹은 옆에 있으니 숨소리도 들리고, 눈빛마저 다 보인다”며 “그만큼 다른 공연보다 긴장되지만,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폭풍우와 천둥소리, 암전 효과, 라디오 소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르는 ‘카포네 트릴로지’는 시카고 렉싱턴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1923년과 1934년, 1943년에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세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낸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23㎡ 남짓한 호텔 방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무대에는 침대와 옷장, 전화기만 있다. 무대 양쪽에 배치된 객석에 앉으면 호텔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사건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단 50㎝. 닉 니티 역의 이석준은 “배우가 던진 전화기에 관객이 맞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깝다”며 “그래서 더 역동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