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선장의 권한
지구 표면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바다는 푸르고 아름답지만 또 한편으론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아마 바다처럼 천의 얼굴을 갖고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도 드물 것이다. 비행기에서는 비행기를 모는 기장이 최고책임자를 겸하는 반면 배에는 배를 모는 항해사 외에 별도로 선장이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워낙 예측불허 상황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그때마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사람이, 독재자가 필요하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는 고립무원의 섬과도 같다. 일사불란한 위계질서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선장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요즘은 대부분 국가가 법으로 선장의 권한과 의무를 정하고 있지만 법치가 확립되기 전에도 비슷한 전통이 있었다.

영미권에서는 선장의 역할을 함축한 말로 “Captain goes down with the ship”이라는 표현이 오래전부터 내려온다. 말 그대로 선장은 배와 함께 침몰한다는 뜻이다. 배가 가라앉을 경우 모든 승객과 선원을 하선시킨 뒤 맨 마지막에 배를 떠나야 한다는 엄중한 책무를 표현한 말이다. 선장이 직면하는 수많은 상황들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하고 도덕교과서의 딜레마 퀴즈로도 자주 등장한다. 타이타닉의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가 책무를 실천한 역사적 인물이라면 세월호 선장 같은 어둠의 인물도 있다.

선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선원법 해사안전법 등에 따르면 선장은 지휘명령권, 징계권, 강제조치권, 원조 청구권, 사법경찰권, 선내 사망자 수장권 등을 갖고 있다. 인명 또는 배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를 저지하는 경제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다만 민간 선박의 선장은 무기 소지가 금지되는 만큼 총을 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

엊그제 인도양에서 조업 중이던 원양어선에서 두 명의 술취한 베트남 선원이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하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의 선원들은 배 안에 격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선상 반란이다. 최근 들어 외항 선원은 외국인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한국인 3명, 베트남인 7명, 인도네시아인 8명이 탑승했다.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고된 항해에 따른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 폭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배에서는 절대자라고 할 수 있는 선장이 피살됐다는 건 충격적이다. 원양어선 운영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