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화폐 역사에서 중요한 해다. 한국은행에서 5만원권 지폐가 첫 발행돼 오늘날 현금의 주력이 됐다. 같은 해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는 최초의 디지털 통화 ‘비트코인’을 내놓았다. 화폐 발행을 독점해온 중앙은행에 저항군이 나타난 것이다. 한은은 무관심 또는 우려의 눈으로 관망할 뿐이었다.

그러던 한은이 디지털 통화에 손을 내밀고 있다. 한은은 비트코인 거래 업체인 ‘코빗’ 관계자를 다음달 12일 열리는 ‘2016 전자금융 세미나’ 연사로 초청했다. 디지털 통화가 영역을 확장하며 현금의 지위에 도전하는 만큼 중앙은행도 공존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초청한 한국은행…디지털 통화와 공존?
◆적과의 동침?

이날 열릴 전자금융 세미나에서 김진화 코빗 이사 등은 디지털 통화의 미래와 적용 기술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은의 대외 행사에 비트코인 업체가 공식 초청된 것은 처음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과 벤처업계에서 디지털 통화는 이미 화두”라며 “화폐 제조와 발행을 담당하는 한은도 무관심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디지털 통화는 디지털 신호로 컴퓨터에 저장돼 있어 가상화폐라고도 불린다. ‘원’ ‘달러’ 등 법으로 정해진 현금의 계산 단위와 별도로 움직인다. 예컨대 디지털 통화의 90%(시가총액 기준)를 차지하는 비트코인은 ‘BTC’라는 단위로 거래된다. 전자결제 시스템이므로 지갑에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환전도 필요 없다.

이런 장점 덕분에 디지털 통화는 대안적인 화폐 질서로 주목받기도 했다. 2013년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투자 수단으로도 각광받았다. 국내 관심이 높아지자 당시 한은도 비트코인 연구에 착수했다.

◆‘블록체인’에 주목하는 한은

결론은 부정적이었다. 당시 한은 보고서는 “비트코인이 가까운 미래에 기존 통화를 대체할 지급 결제수단이 되긴 어렵다”며 급격한 가격 변동, 보안 문제 등을 지적했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은 투자 과열 속에 한때 급락하기도 했다.

논란 속에서도 전 세계 디지털 통화는 670여개로 급증했다. 리플, 이더리움 등 디지털 통화 방식으로 송금이나 계약 처리를 하는 비즈니스도 생겨났다. 한은은 올초 지급결제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을 통해 결제 기술의 안전성이 확인된 만큼 이를 기존 금융서비스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고 재조명했다.

금융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기술이다. 비트코인으로 거래하면 각 당사자들의 전자 장부에 거래 기록이 남는다. 다음 거래 때마다 여기에 다른 기록들이 끝없이 추가된다. 장부가 참가자마다 분산돼 있다 보니 보안성이 뛰어나고 관리비용도 적다는 평가다.

핀테크(금융+기술) 열풍 속에 KB금융지주는 지난해 비트코인 거래 업체인 코인플러그에 투자했고, NH농협은행은 코빗과 손잡았다. 정부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 해외에 송금할 수 있게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통한 송금 등이 벌써 유망 서비스로 떠올랐다.

◆현금 없는 사회 앞당길까

전자결제는 중앙은행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는 편리한 전자결제가 현금거래를 대체하고 있다. 한은 또한 동전 제조비용 등이 문제 되자 ‘동전 없는 사회’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디지털 통화가 현금을 아예 대체하긴 여전히 어려울 것이란 게 한은의 진단이다. 지난해 비트코인의 하루 평균 거래 건수는 12만5000건으로, 국내 하루 평균 신용·체크카드 승인 건수 3700만건에 못 미친다. 디지털 통화가 익명성을 기반으로 범죄와 지하경제에 악용된다는 지적도 많다. 통화당국으로선 새로운 화폐질서를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가 미래의 고민거리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