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와 만난 금융의 미래 ③] 'IT강국' 한국… 금융IT는 후진국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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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 발전지수는 세계 1등, 그러나 금융시장 성숙도는 우간다보다 아래인 87등.
'IT강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현주소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세계 정보통신기술 발전지수(IDC) 167개국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명실상부 IT강국임을 입증한 것이죠. 그러나 정작 데이터, IT 등이 기반이 되는 금융시장의 성적은 초라합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140개국을 상대로 금융시장 성숙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87위를 기록했습니다. 81위인 우간다보다도 못하다는 평가입니다.
금융산업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핀테크, 로보어드바이저, 블록체인이 출현했고, 앞으로는 웨어러블, 가상현실(VR) 등 신기술이 금융산업에 적극 도입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금융IT는 미국 영국은 물론 중국보다도 뒤쳐져있습니다.
IT강국인 우리나라가 왜 금융IT에 있어서만큼은 후진국인 걸까요? 해답을 찾기 위해 금융 선진국인 영국과 우리나라를 두발로 직접 뛰며 알아봤습니다.
◆ 지하철 LTE는 '빵빵'…금융테크는 '답답'
영국의 지하철 안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인터넷이 잘 안 잡히기 때문입니다. 간간히 'Free Wi-Fi(무료 와이파이)'라는 표지가 있긴 하지만 역을 지나면 금방 끊겨버립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조차 인터넷이 끊기는 영국의 금융IT 산업은 우리나라보다 4~5년 정도 앞서 있습니다. 단순히 핀테크, 로보어드바이저뿐 아니라 VR과 같은 신기술이 금융에 이미 도입됐습니다.
영국에서는 집을 사기 위해 굳이 직접 그 장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VR 기술을 이용해서 사고 싶은 집 곳곳을 살펴볼 수가 있기 때문이죠. 비주얼라이즈(visualise), 버츄얼 워크스루(Virtual Walkthrough) 등은 VR기기, 스마트폰, 인터넷 등을 이용한 부동산 투어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IT 개발은 아직도 은행권의 핀테크 서비스 개발이 주를 이룹니다.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 등은 생체인식 기술을 도입해 손바닥, 홍채 등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키오스크와 ATM기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은행은 위비뱅크, 위비톡 등의 모바일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증권사들은 올해 초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붐을 타고 로보어드바이저 개발에 열심입니다.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키움증권, 미래에셋대우, 유안타증권 등 6개 증권사는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의 개인인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로보어드바이저의 경우 진정한 의미의 로보어드바이저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랩상품 판매에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사가 아닌 스타트업의 금융IT 개발은 더 더딘 편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1월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금융제도 개편 정책 등을 내놓으면서 스타트업 사이에 금융테크 바람이 불었지만 1년도 채 안돼서 시들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소영 한국핀테크포럼 의장은 "작년에 비해 새로운 금융기술 스타트업들의 출현이 감소하고 있다"며 "해외 기업들의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줄어드는 추세"라고 진단했습니다.
◆ "금융산업을 혁신과 경쟁으로 바라봐야"
그렇다면 IT 기술이 발달해 있는 우리나라가 왜 금융IT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는 걸까요?
1편과 2편에서 이미 살펴봤듯 영국은 은행, 증권사, 금융기업이 아닌 IT기업까지 금융IT 개발에 적극적입니다.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의 '바클레이즈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영국 정부의 테크시티 조성, 레벨39 등등 금융기술 스타트업들을 육성·지원하는 시스템이 많습니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스타트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기업들 위주로 금융테크가 발달하고 있다면, 영국은 정부주도로 커가고 있는 셈이죠.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규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현재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비즈니스 부분은 자유롭게 풀어주겠다는 입장입니다. 금융기술 스타트업들에 대한 지원,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계획안인 '프로젝트 이노베이트(Project Innovate)'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FCA 산하에는 '이노베이션 허브(Innovation Hub)도 설치·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융기술과 관련해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깔아 놓은 모래 상자를 의미합니다. 샌드박스처럼 새로운 금융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일정 범위 안에서 규제로부터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입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싱가포르, 호주 등에서도 규제 샌드박스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전문가들과 업계 종사자들은 정부의 규제를 가장 큰 장벽으로 꼽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일단 어떤 규제가 있는지 조차도 쉽게 알 수 없고, 규제가 풀릴 때까지 그저 오랜 시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입니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규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포괄적인 금지 규정도 많고, 법률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규제하는 사례도 많다"고 했습니다.
박 의장은 "우리나라는 금융 규제를 효율적으로 수정하거나 완화하는 체계 자체가 없다"며 "지난 1년간 스타트업들이 금융 규제에 부딪히면서 좌절했고,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겠다는 해외 업체들도 줄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영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을 왜 우리나라 정부는 못하고 있는 걸까요? 이러한 격차는 정부가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영국은 혁신을 중요한 가치로 봅니다. 이 때문에 혁신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을 때 일정 부분 성장할 때까지 규제를 하지 않는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죠.
혁신과 안전을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여야 하는 관계)' 관계로 보고 혁신이 이뤄질 때까지 규제를 풀어줍니다.
안전과 신뢰를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에서는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이러한 틀이 관성으로 남아 금융사들도 과감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유신 핀테크지원센터장은 "금융당국에서 규제를 사후처리로 바꿔도 금융사 스스로가 자율적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기가 힘들어 쭈뼛거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름 옷에 억지로 팔을 붙여 겨울 옷을 만들 수 없듯이 금융IT 발전을 위해서는 이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죠.
박 의장은 "문제가 되는 규제를 협의를 통해 바꾸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특정 구간이나 금액 안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존(ZONE)을 만들어 스타트업 기업들을 성장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반기부터 영국의 샌드박스를 본 따 로보어드바이저 샌드박스를 사전 테스트할 예정입니다. 또 올해 금융IT 정책을 사전규제보다는 사후점검 및 원칙중심으로 감독정책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러한 변화로 우리나라 금융산업에도 '혁신'과 '경쟁'이 일어나고, IT강국뿐 아니라 금융IT 강국으로도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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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서울=김근희/장세희 한경닷컴 기자 tkfcka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