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산운용이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공모 펀드가 설정액 1조원을 넘어서면 자동으로 판매를 중단(소프트 클로징)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펀드 덩치가 지나치게 커지면 운용상 제약이 늘어 수익률이 하락하는 상황을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다. 고객 자산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수수료 수입을 올리는 운용업계에서 기회이익 상실을 감수하고 소프트 클로징 지침을 세운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삼성운용, 중소형주펀드 1조 넘으면 판매중단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은 최근 내부 회의를 통해 1조원 이상의 자금을 모은 중소형주펀드는 의무적으로 잠정 판매 중단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다만 시가총액 1~100위 기업(시가총액 958조7820억원)에 주로 투자하는 대형주펀드에는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 같은 방침은 올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펀드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자기가 팔 때마다 수급이 깨져서 종목 가격이 추가 급락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며 “기존 고객의 수익률 관리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삼성자산운용은 삼성중소형FOCUS펀드(설정액 8587억원) 등이 조만간 소프트 클로징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펀드는 국내 주식형펀드의 환매 행렬 속에서도 1년 전(4684억원) 대비 3903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삼성자산운용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펀드 규모가 커진 뒤 수익률이 하락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설정액 1조원을 기점으로 수익률이 하락한다는 ‘1조원의 저주’를 언급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돈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종목을 추가로 사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시장 상황이 바뀌거나 환매가 이어지는 경우다. 시장 모멘텀이 바뀌면 새로운 종목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특정 종목 비중이 너무 높으면 거꾸로 팔 때마다 보유 종목의 가격이 추가 급락하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사례로 설정액 1조2587억원인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펀드는 1조원을 돌파한 2010년 30.35%의 높은 수익을 올렸지만 이듬해에는 -16.25%로 뚝 떨어졌다. 메리츠코리아펀드도 1조원을 돌파한 지난해 21.96%의 수익률을 올렸지만 올해는 -11.13%로 고전하고 있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중소형주를 담는 펀드는 설정액이 1조원을 넘어서면 수급 측면에서 운용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펀드매니저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 펀드당 적정 운용 규모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펀드의 수익률 하락 현상에 따라 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중소형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 6000억~7000억원 수준에서 소프트 클로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영자산운용은 신영밸류고배당펀드 자산의 3% 내외(1000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두고 환매 수요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시가총액 100위권 밖 기업에 투자하는 중소형주펀드에 대해서는 전체 시가총액의 5% 이내에서 자사 펀드의 규모를 관리하고 있다.

대형주펀드는 국내 주식시장 규모(시가총액 1199조원)를 감안하면 1조원대 펀드도 큰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투자 종목을 분산하고 장기간 투자하면 덩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특정 매니저가 오랜 기간 책임지고 운용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수익률은 다시 반등한다”고 설명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