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외자 이탈·환율 예측 잇단 실수…투자자만 멍든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충격이 진정됐다. 당사국인 영국의 대표 주가지수 FTSE100은 브렉시트 투표 이전 수준보다 더 높아졌다. 한때 환투기에 몰린 파운드화 가치도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선 주가를 비롯한 대부분 가격변수가 브렉시트 충격에서 벗어났다.

가장 우려한 ‘마진콜(증거금 부족현상)’에 따른 ‘디레버리지(투자자산 회수)’ 현상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달리 브렉시트는 정치 문제에서 비롯됐다. ‘위기극복 전도사’라 불리는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 총재(직전에는 캐나다중앙은행 총재)가 주도한 유동성 확보 최우선 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외자 이탈·환율 예측 잇단 실수…투자자만 멍든다
월가를 비롯해 세계 증시에선 브렉시트 우려보다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예정돼 있던 미국 추가 금리인상, 중국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국 지수 편입 등 ‘빅 이벤트’가 큰 무리 없이 지나갔다. 브렉시트 여파도 아직 ‘찻잔 속 미풍’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브렉시트가 올 하반기 우려되는 양대 악재를 완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미국 추가 금리인상폭은 연내에 한 단계(0.25%포인트)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 국민에게 ‘이변’의 심각성을 일깨운 브렉시트 투표 이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국내 증시에서 영국계 자금도 큰 변화가 없다. 36조원에 달하는 영국계 자금 이탈로 코스피지수가 1800선 밑으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의 MSCI 신흥국 편입점검 때도 외자 이탈이 10조원이 넘고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외자이탈과 환율 예측에 대한 잇따른 대실수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캐리 트레이드는 증권 브로커가 차입한 자금으로 유가증권 투자를 늘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투자한 유가증권 수익률이 차입금리보다 높으면 ‘포지티브 캐리’, 반대의 상황을 ‘네거티브 캐리’라 부른다. 차입한 통화에 따라 ‘엔캐리 트레이드’와 ‘달러캐리 트레이드’로 구별된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 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 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투자대상국 수익률이 환율을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으면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차입해 투자대상국 유가증권에 투자한다.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캐리 트레이드는 반드시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금액 비율) 투자와 결부된다는 점이다. 어떤 국가에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될 때마다 레버리지 투자로 자금 유입이 증폭돼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자산 거품이 쉽게 발생하고 경기를 어렵게 한다. ‘경기 순응성(procyclicality)’이다.

반대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이탈하면 디레버리지 현상까지 겹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신용경색이 일어나고 투자대상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채무 불이행),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올 하반기 이후 국내 증시에 자금원천별 외국인 자금의 유출입 여건을 예상해보면 상반기보다 개선(유입)될 소지가 많다. 달러계 자금은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폭이 낮아지면 최소한 이탈 여건은 줄어든다. 과열된 미국 국채시장에서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순간 폭락)’ 현상이 나타나면 의외로 많은 달러계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도입한 일본 엔화와 유럽의 유로(영국계 포함) 자금은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될 여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브렉시트 투표 이후 최대 피해국인 일본이 대규모 양적 완화에 나서면 ‘와타나베 부인(엔캐리 자금 주도 세력)’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계 자금이 당분간 들어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세계경기 둔화, 파리 기후 신협약 등에 따른 화석연료 규제 등으로 원유 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유가가 50달러 이상 상승하면 셰일가스 등 대체에너지 공급도 예상된다. 인수합병(M&A)을 겨냥한 중국계 자금 유입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우리다. 올 하반기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여건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투자 매력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어렵다. 브렉시트 투표 직후 투매 자제 등 우리 투자자와 국민이 성숙한 자세를 보여준 만큼 이제부터는 정치인과 정책당국자가 대승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