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내달 2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1996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국내 초연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한국 뮤지컬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대기업(삼성영상사업단)이 공연시장에서 처음 제작한 대형 뮤지컬인 데다 외국 작품을 로열티를 주고 들여와 우리말로 공연한 첫 정식 라이선스 공연이었다는 점에서다. 국내 무대에서 ‘공연은 진화한다’는 명제를 입증한 작품이란 점에서도 높이 평가돼 왔다. CJ E&M이 2009년 이후 거의 같은 제작·출연진으로 네 차례 제작한 공연은 매번 개선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2014년 공연은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농익은 기량이 어우러지며 절정의 무대를 보여줬다.

이 작품이 약 2년 만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다시 올랐다. 국내 초연 20주년 기념 공연이다. 이번에도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42번가 팬’들의 많은 관심이 쏠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연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CJ E&M은 20주년을 맞아 ‘참신한 42번가’를 보여준다며 2001년 개정판을 들여왔다. 제작팀과 출연진도 싹 바꿨다. 그동안 쌓아올린 노하우를 포기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시도자체는 평가할 만하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개정판이라지만 이야기 전개와 극적 구성은 똑같다. 1930년대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시골 처녀 페기 소여가 코러스로 출발해 스타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쇼뮤지컬이다. 극 중 ‘프리티 레이디’란 신작을 연습하고 공연할 때 등장하는 화려한 탭댄스 쇼와, 이 쇼의 선두에 선 주인공 소여와 빌리 로러의 춤솜씨가 작품의 ‘품질’을 결정한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춤이다. 탭댄스 군무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다. 소여와 로러를 맡은 배우들이 결정적이다. 코러스를 이끌어야 할 춤들이 어설프고 때때로 박자도 놓친다. 극중 소여는 부상으로 빠진 스타 도로시를 대신해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노래도 잘하지만 무엇보다 춤솜씨가 빼어나서다. 무대가 객석의 공감을 얻어내려면 실제로 소여를 맡은 배우가 코러스를 압도할 정도로 춤을 잘 춰야 한다. 이번 공연에선 이런 ‘극적 리얼리티’가 너무나 떨어진다. 소여는 ‘디바’가 아니라 ‘춤꾼’이 맡아야 할 배역이다.

2막 첫 분장실 신과 중간 피아노 쇼, 후반 계단 쇼 등 개정판에서 달라진 몇몇 쇼 장면의 구성과 안무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쇼뮤지컬의 화려함이 덜해졌다. 공연의 백미라 할 만한 커튼콜 공연도 초라해졌다. 퍼포먼스의 역량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여전히 ‘MR’(녹음된 음악) 을 쓰는 점도 아쉽다. 뮤지컬 ‘명성황후’ 는 지난해 탄생 20주년 공연에서 모처럼 MR 대신 오케스트라를 기용해 생동감 넘치는 음악을 들려줬다. 2008년 ‘42번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팀은 서울 투어 공연에서 라이브 악단의 생생한 음악을 선사해 호평을 받았다. 이번 20주년 공연도 기존의 제작 노하우를 살리되 라이브 연주와 호흡을 맞추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으면 어땠을까.

게다가 이번 공연의 MR 음질이나 음향 설계도 2년 전만 못했다. 아무리 MR이라지만 막이 오르기 전 서곡이 흐를 때 객석 조명을 그대로 켜놓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작품의 주요 멜로디를 들으며 무대에 빠져들 준비를 하는 시간에 관객들의 잡담 등 객석의 소란스러움을 계속 접해야 하는 것은 불쾌한 경험이다. 공연은 다음달 28일까지, 6만~1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