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회를 밝히는 이해진 의장. / 네이버 제공
15일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회를 밝히는 이해진 의장. / 네이버 제공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네요. 그동안 담담했는데 막상 라인이 뉴욕증시에 상장되니 감정이 이상했습니다.” 2년여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사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15일 네이버 자회사 라인의 미국·일본 동시 상장에 맞춰 강원도 춘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에서 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그는 담담하게 그간의 소회를 밝히면서도 네이버와 라인을 일구면서 고비마다 느낀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이 의장은 지난 2014년 “모바일에서 네이버는 아무것도 아니다. 없어질 수도 있다”는 발언을 통해 위기감을 내비친 바 있다. 그 후 2년, 그는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해외 상장이란 결과물을 들고 돌아왔다. 비결은 ‘절박함’이었다.

“라인의 상장 비결은 절박함입니다. 모든 직원들이 정말 절박하게 일했어요. 소프트웨어의 해외 상장 사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작기 때문에 해외 상장에 성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라인 상장은 한 마디로 ‘생존을 위한 시도’였습니다.”

은둔형 경영자(CEO)로 평가받는 이 의장은 “어젯밤 한숨도 못잤다”면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뉴욕 상장을 주도한 신중호 라인 최고글로벌책임자(CGO)에게 “울지 말라”는 내용의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는 에피소드도 전했다.

라인 상장에 맞춰 마련한 자리였지만 축배를 미뤘다. 그는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네이버의 경쟁상대는 늘 강자였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미국에서 새로운 서비스들이 나올 때마다 어떻게 경쟁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페이스북(SNS) 유튜브(동영상) 인스타그램(사진) 등이 각 분야를 잠식하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 들어선 중국 기업들도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는 만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로 밀어붙이는 해외 업체들과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매번 자신을 절박하게 만들었다고 이 의장은 귀띔했다.

“사람들은 네이버가 초기부터 국내 인터넷 사업을 장악한 줄 알고 있어요. 아니에요. 처음엔 야후였습니다. 너무나 강력한 브랜드였죠. 라이코스도 그랬고요. 국내 브랜드 중에선 다음이나 네이트도 있었습니다. 네이버는 이런 경쟁체제에서 성장해온 업체입니다.”

글로벌 경쟁을 벌여 살아남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은둔형’으로 오인 받게끔 만들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 의장은 “그동안 공식석상에 자주 안 나온 건 세간에서 말하듯 은둔한 게 아니다. 일본 사업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고 (라인이) 성공한 뒤 나오려고 했다”면서 “한 주 전부터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괴로워하는 스타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비스나 전략을 짜는 게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팅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기존에 사업을 하던) 일본이 아닌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포켓몬 고(GO)’ 열풍과 관련해선 “우리는 뭐하고 있었나 반성한다. 워낙 해외와 규모 차이가 나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토로한 그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 라인 상장으로 자금에 여유가 생긴 만큼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해 승부하겠다”면서 각오를 다졌다.

김봉구·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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