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군부 쿠데타' 진압] 56년 동안 6번 쿠데타…'정교분리' 놓고 군부-이슬람주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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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난 쿠데타
국민 99%가 무슬림이지만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 보장
'국가의 수호신' 자처한 군부, '정교일치' 정부에 경계
에르도안 14년 장기집권에도 '경제 살린 대통령' 지지 많아
국민 99%가 무슬림이지만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 보장
'국가의 수호신' 자처한 군부, '정교일치' 정부에 경계
에르도안 14년 장기집권에도 '경제 살린 대통령' 지지 많아
터키에서는 1960년 첫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모두 여섯 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이어졌다. 10년에 한 번꼴이다. 이 가운데 네 번은 성공해 정부가 전복됐고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등장했다.
터키에서 쿠데타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터키 헌법과 관련한 두 가지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하나는 무슬림이 전체 국민의 99%에 달하는 국가이지만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28년 헌법에서는 이슬람을 국교로 한다는 조문이 삭제됐고 ‘종교와 종파 등으로 차별받지 않으며 법 앞에 평등하다(제10조)’고 명시됐다. 이른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세속주의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헌법 제13조2항이다. 종교는 종교일 뿐이라고 여기는 군부는 국가의 수장이 이슬람 교리를 정치에 과도하게 대입시킨다는 판단이 들 때마다 행동에 나섰다.
1960년 이슬람 물결이 정계에 광범위하게 퍼졌을 때, 1971년 극심한 좌우 분열의 원인이 이슬람 세력의 발호 때문이라고 평가했을 때, 1980년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간 충돌이 전국으로 확산했을 때 군부는 세속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쿠데타로 지도자를 바꿨다. 1997년에는 총을 들지 않고 이슬람 성향의 집권여당인 복지당을 헌법재판소 판결로 폐당하면서 ‘무혈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2010년엔 터키 군부가 2002년 친(親) 이슬람 정부 출범을 막고자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대형 망치 작전’이 알려지면서 터키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터키 일간지 타라프가 2010년 1월에 보도해 알려진 쿠데타 계획에는 군부가 이슬람 사원을 폭파하고 그리스 공군이 터키 전투기를 격추한 것처럼 위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터키 검찰은 이 보도를 계기로 수사에 착수해 군부 인사들을 대거 검거했다. 로이터통신은 “과거 50년간 군부의 쿠데타와 쿠데타 기도는 모두 여섯 차례 있었다”며 이 가운데 네 차례는 당시 정부를 뒤엎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13조2항은 2010년 국민투표로 폐기됐다. 하지만 상당수 군인은 여전히 자신들이 헌법의 수호자로서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터키인 가운데 일부도 군부의 정치 개입을 옹호한다.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도 마찬가지 논리를 내세웠다. 군부는 민영 NTV 방송국과 도안 통신사를 통해 “민주적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헌법질서를 재건하겠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세력은 이슬람주의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강압적인 철권통치를 펼쳐 국가를 어려움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결국 쿠데타는 실패했다. 터키 국민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거리로 나가 쿠데타 세력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에르도안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여성의 권리를 부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일부 신문은 정부의 탄압 탓에 비판적인 기사는 기자들이 쓰지 않고 외부 필자의 이름을 빌려 쓰는 형편이다.
‘술탄(이슬람 최고통치자)’이라고까지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경제 성적표’가 괜찮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가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른 총리로 취임하기 2년 전인 2001년 경제성장률은 -5.7%였다. 그런 성장률이 취임 첫해 5.2%로 급반등했고, 이듬해에는 9.3%로 껑충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다시 -4.8%로 떨어졌지만 2010년 9.1%를 기록한 이후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군인과 판사 등 반대 진영 6000여명을 체포하는 등 잔존 세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쿠데타 배후로 한때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였다가 정적으로 돌아선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하고 미국에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귈렌은 “이번 쿠데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쿠데타 자작극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쿠데타 후폭풍으로 또 다른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터키에 민주적 법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데타를 계기로 터키 내 세속주의 세력이 크게 약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과 비슷한 쿠데타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알파고 시나시 터키 지한통신 기자는 “쿠데타에 참여한 세력이 70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쿠데타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부의 세력이 여전히 강하고 정부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아 사태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터키에서 쿠데타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터키 헌법과 관련한 두 가지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하나는 무슬림이 전체 국민의 99%에 달하는 국가이지만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28년 헌법에서는 이슬람을 국교로 한다는 조문이 삭제됐고 ‘종교와 종파 등으로 차별받지 않으며 법 앞에 평등하다(제10조)’고 명시됐다. 이른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세속주의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헌법 제13조2항이다. 종교는 종교일 뿐이라고 여기는 군부는 국가의 수장이 이슬람 교리를 정치에 과도하게 대입시킨다는 판단이 들 때마다 행동에 나섰다.
1960년 이슬람 물결이 정계에 광범위하게 퍼졌을 때, 1971년 극심한 좌우 분열의 원인이 이슬람 세력의 발호 때문이라고 평가했을 때, 1980년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간 충돌이 전국으로 확산했을 때 군부는 세속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쿠데타로 지도자를 바꿨다. 1997년에는 총을 들지 않고 이슬람 성향의 집권여당인 복지당을 헌법재판소 판결로 폐당하면서 ‘무혈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2010년엔 터키 군부가 2002년 친(親) 이슬람 정부 출범을 막고자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대형 망치 작전’이 알려지면서 터키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터키 일간지 타라프가 2010년 1월에 보도해 알려진 쿠데타 계획에는 군부가 이슬람 사원을 폭파하고 그리스 공군이 터키 전투기를 격추한 것처럼 위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터키 검찰은 이 보도를 계기로 수사에 착수해 군부 인사들을 대거 검거했다. 로이터통신은 “과거 50년간 군부의 쿠데타와 쿠데타 기도는 모두 여섯 차례 있었다”며 이 가운데 네 차례는 당시 정부를 뒤엎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13조2항은 2010년 국민투표로 폐기됐다. 하지만 상당수 군인은 여전히 자신들이 헌법의 수호자로서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터키인 가운데 일부도 군부의 정치 개입을 옹호한다.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도 마찬가지 논리를 내세웠다. 군부는 민영 NTV 방송국과 도안 통신사를 통해 “민주적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헌법질서를 재건하겠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세력은 이슬람주의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강압적인 철권통치를 펼쳐 국가를 어려움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결국 쿠데타는 실패했다. 터키 국민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거리로 나가 쿠데타 세력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에르도안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여성의 권리를 부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일부 신문은 정부의 탄압 탓에 비판적인 기사는 기자들이 쓰지 않고 외부 필자의 이름을 빌려 쓰는 형편이다.
‘술탄(이슬람 최고통치자)’이라고까지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경제 성적표’가 괜찮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가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른 총리로 취임하기 2년 전인 2001년 경제성장률은 -5.7%였다. 그런 성장률이 취임 첫해 5.2%로 급반등했고, 이듬해에는 9.3%로 껑충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다시 -4.8%로 떨어졌지만 2010년 9.1%를 기록한 이후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군인과 판사 등 반대 진영 6000여명을 체포하는 등 잔존 세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쿠데타 배후로 한때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였다가 정적으로 돌아선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하고 미국에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귈렌은 “이번 쿠데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쿠데타 자작극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쿠데타 후폭풍으로 또 다른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터키에 민주적 법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데타를 계기로 터키 내 세속주의 세력이 크게 약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과 비슷한 쿠데타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알파고 시나시 터키 지한통신 기자는 “쿠데타에 참여한 세력이 70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쿠데타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부의 세력이 여전히 강하고 정부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아 사태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