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와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트럭 테러’로 휘청거리는 유럽을 터키의 군사쿠데타가 강타했다. 터키에는 시리아 등의 유럽행 난민 300만명가량이 머물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한 서방의 군사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이번 쿠데타는 6시간 만에 진압됐지만 터키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유럽은 전략적 요충지 가운데 하나인 터키마저 불확실성이 커지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터키 군부세력 일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10시29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대교를 시작으로 통제지역을 넓혀갔다. 오후 11시25분에는 TV방송으로 “전국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발생시간에 남부 휴양도시 마르마리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군과 경찰을 이용해 쿠데타를 막아냈다. 그의 지지자인 상당수 시민도 쿠데타에 저항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CNN으로 중계된 영상 통화에서 쿠데타에 맞서달라고 국민에게 요청했으며 16일 오전 4시 “쿠데타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쿠데타 저항 과정에서 시민 등 최소 265명이 숨지고 14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터키 정부는 이날 장성 52명을 포함한 군인 2839명과 판·검사 2745명을 쿠데타 연루 혐의로 체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세력을 뿌리 뽑기위해 그들의 소굴을 샅샅히 뒤질 것이며 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터키 정국이 요동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시장은 쿠데타 시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달러 대비 리라화 환율은 전장 대비 4.22% 폭등해 달러당 3.0157리라를 기록했다. 올해 1월 26일(3.0213리라) 이후 최고치다. 리라화 환율은 15일 밤 발생한 쿠데타 소식에 한때 5.42%나 치솟기도 했다. 달러 대비 리라화 환율이 급등했다는 것은 리라화 가치가 급락했다는 의미다. 이날 리라화 가치 하락 폭은 2008년 이후 가장 컸다.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유럽 정상들은 일제히 에르도안 대통령 정부를 지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의장 등 EU 지도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터키 민주정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결같은 유럽 지도자들의 반응은 ‘더 이상 불확실성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깔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유럽은 바람 잘 날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하나의 유럽’을 추구해온 EU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브렉시트 협상이 잘못되면 EU는 역내에서 두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영국과 교류가 크게 제한될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알맹이만 빼먹기(체크피킹)는 곤란하며 서둘러 협상장에 나서라”고 압박하는 반면, 테리사 메이 신임 영국 총리는 “시간을 갖고 생각하자”고 버티는 등 벌써부터 기싸움이 팽팽하다.

테러 공포에 시달려온 유럽은 지난주 프랑스 니스에서 이슬람국가(IS) 소행으로 추정되는 ‘트럭 테러’가 발생했다. 사망자 84명, 부상자 202명이 나오면서 안보 무기력증에 빠졌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프랑스는 테러와 함께 살아야 할 것”이라는 발언까지 내놓을 정도다.

유럽 사회는 터키 쿠데타가 테러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터키에는 유럽으로 떠나려는 300만명의 시리아 등 난민이 살고 있다. 터키 정국 불안으로 이들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지면 유럽은 또 다른 난민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시리아와 이라크에 근거지가 있는 IS를 공습할 핵심 기지를 터키에 두고 있다.

유럽은 18일 EU외교장관회의, 다음 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국 정상회의, 9월 EU 정상 비공식회의(영국 제외), 10월 EU 정상회의 등을 잇따라 열고 캄캄한 앞 길의 돌파구를 찾아낼 계획이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