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순례의 길 티베트 카일라스…'전설의 수미산'을 만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부 티베트 성산 카일라스
불교·힌두교의 최고 성산…주변 산이 연꽃잎처럼 감싸
카일라스 인근 유일한 마을 타르첸
티베트·네팔·인도 등서 순례자 몰려
100km 이상 걸어서 찾아오기도
성산 한 바퀴 도는 데 55km 코스
티베트 순례자는 하루 만에 끝내
'삼보일배' 오체투지 행하는 이들도
5650m 높이 돌마라 고갯길 넘으면
물줄기 따라 끝없는 내리막길 이어져
모든 고통 사라진 평화가 찾아든다
불교·힌두교의 최고 성산…주변 산이 연꽃잎처럼 감싸
카일라스 인근 유일한 마을 타르첸
티베트·네팔·인도 등서 순례자 몰려
100km 이상 걸어서 찾아오기도
성산 한 바퀴 도는 데 55km 코스
티베트 순례자는 하루 만에 끝내
'삼보일배' 오체투지 행하는 이들도
5650m 높이 돌마라 고갯길 넘으면
물줄기 따라 끝없는 내리막길 이어져
모든 고통 사라진 평화가 찾아든다
‘수미산(須彌山)’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이다. 하지만 수미산의 모델로 여겨지는 산은 티베트 고원의 서남쪽에 존재한다. 산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렸는데 서구에서는 ‘카일라스(Kailas)’, 인도 힌두교는 수메루(Sumeru), 현지에선 ‘눈의 보석’이라는 뜻의 ‘강림포체봉(岡仁波薺峰)’이라고 부른다. 해발 6714m로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지만 이 정도 높이의 산은 히말라야에 흔하다. 그런데도 카일라스산은 꼭 한 번 가고 싶은 곳이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카일라스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역경을 이기고 떠나는 순례길 티베트자치구 수도인 라싸에서 1600㎞ 떨어진 카일라스산으로 가려면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우선 중국 정부 허가가 필요하고, 교통 문제도 만만치 않다. 라싸에서 카일라스산까지 2000㎞ 정도의 험로를 달려야 한다. 요즘은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외국인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식량 문제도 있다. 가는 길 초반에는 가끔 마을이 나온다. 비록 입에 맞지 않더라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사람 구경하기 힘든 험악한 오지로 들어선다. 여행 도중 밥을 굶는 일도 흔하다. 비상식량을 준비해도 한계가 있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배가 고프더라도 참는 것이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고산병이다.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데 해발 4500m 정도를 오르내린다. 고산병에 걸리면 심한 두통과 구토 증세를 일으키고 심하면 죽는다. 치료 방법은 고도가 낮은 곳으로 하루빨리 내려가는 것뿐. 그러나 카일라스산 순례길에선 방법이 없다. 더 아래로 내려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온갖 역경을 헤치고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렸다. 기어올랐다는 표현이 맞겠다. 야생화가 그림처럼 깔린 대초원을 지나 수천 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만년설 고갯마루를 넘기도 했다. 험준한 산맥을 끼고 돌면서 용용한 흐름으로 이어가는 강들을 건너고, 드넓은 자갈길을 만나기도 했다. 그림 같은 호수 옆을 지나가다 광활한 사막 속으로 빨려드는 일을 반복했다. 라싸를 떠난 지 2주 만에 카일라스 산자락에 도착했다. 차량이나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져 예전보다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고 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산자락의 유일한 마을 타르첸에는 수많은 순례자가 진을 치고 있다. 티베트인은 물론 네팔이나 인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많은 순례자가 끊이지 않고 몰려드는 것은 카일라스산이 티베트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스교의 성산(聖山)이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는 ‘시바’와 그의 부인이 이 산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현지에서 ‘성산(聖山)’, 또는 ‘신산(神山)’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이다.
108번 돌면 열반을 한다는 믿음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주변 산 틈새로 카일라스산 정상부가 살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거무튀튀한 모습이 거대한 투구를 연상케 한다. 거대한 투구 위에 쌓여 새하얗게 빛나는 만년설은 그야말로 눈의 보석과 같다. 남쪽 사면에 나 있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보는 이를 유혹한다. 주변의 나지막한 산들이 삥 둘러서 연꽃잎처럼 산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금까지 본 많은 산에서 느끼지 못한 고상한 멋이 풍겨온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순례자의 행렬이 이어졌다. 순례자 사이에 끼어 첫 번째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광활하게 펼쳐진 황무지 너머 멀리 ‘구르라 만하타(Gurla Mandhata·7728m)’가 웅대한 자태를 뽐낸다. 그 밑에 ‘마나사로바’ 호수가 검푸른 색으로 가물거리고 있었다.
카일라스산 주위를 도는 것을 ‘코라’ 또는 ‘파리카라마’라고 한다. 보통 시계 방향으로 시작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도는 이들도 있다. 순례자 대부분은 멀리에서부터 걸어온 사람이다. 네팔이나 인도에서 온 순례자는 이곳에서 100㎞ 정도 떨어진 국경도시 ‘부랑’에서 걸어온다. 더 먼 거리를 걸어온 자들도 있을 것이다. 성산을 한 바퀴 도는 데 보통 2~3일이 걸린다. 하지만 티베트 순례자들은 대부분 이른 새벽에 시작해 하루 동안에 끝낸다. 55㎞의 코라 전 일정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행하는 사람도 있다. 순례자들은 코라를 108번 마치면 열반한다고 믿는다. 한 손에 법륜, 또 한 손에는 염주를 돌려가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순례자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과는 거리가 먼 풍경처럼 느껴진다.
이상하지만 카일라스산이 피라미드라는 설이 있다. 2000년 7월 러시아 고대유적 발굴조사단이 티베트 서부지역을 탐사하던 중 카일라스산과 그 주변에서 피라미드 군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특히 카일라스산 정상에 해당하는 180m 높이의 삼각형 봉우리가 계단식 피라미드라는 기사였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왜 카일라스산이 여러 종교의 성산이 됐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구상 최초 문명이 이곳에서 꽃피웠다는 설이 있다. 이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이 일어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서쪽으로 옮겨간 이들은 ‘수메르(Sumer) 문명’을 탄생시켰다. 수메르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다. 북쪽으로 이동한 일부는 알타이, 바이칼, 만주를 거쳐 한반도까지 갔다. 가설에 따르면 우리 역시 카일라스산에서 온 것이다. 황당무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카일라스산 순례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세(來世)를 기다리는 사람들
점점 발걸음이 무겁고 숨이 가빠진다. 변변치 못한 끼니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해발 5000m 이상 지역을 걷다 보니 온몸이 파김치가 됐다. 쓰러지듯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앞을 바라보니 카일라스산 정상이 보인다. 하늘의 솜털 같은 흰 구름도 사랑스럽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가는 물줄기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이곳 카일라스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줄기는 아시아 주요 4대강의 근원이 된다. ‘인더스’와 ‘갠지스’, 네팔로 흘러들어가는 ‘카르나리’, 티베트 고원을 가로지르는 ‘브라마푸트라’ 등은 모두 카일라스산에서 발원한 것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물줄기는 마나사로바 호수로 흘러들지만 결국 인더스강의 최상류가 되는 셈이다.
순례길을 걷다가 가파른 언덕길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죽은 사람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는 힌두교도였다. 이곳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성산에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또는 가족의 부축을 받아가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카일라스산으로 마지막 순례를 온다. 그러다가 북동쪽에 있는 5650m 높이의 ‘돌마라’ 고갯길을 넘기 전 나오는 ‘죽음의 보금자리’라는 곳에서 카일라스산을 바라보며 다음 생으로 향한다. 여기 쓰러진 힌두교도도 그렇게 내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떠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죽음의 보금자리’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찌된 것인지 몰라도 유골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옷가지, 신발, 머리카락 등이 들꽃 사이에서 스쳐가는 바람에 가볍게 떨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죽은 자들의 상의를 주변 바위에 입혀 카일라스산을 향하도록 세워놨다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정말 사람이 서 있는 것 같다. 카일라스산이 죽어서도 성산이요, 신산이라는 굳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만년설을 배경으로 한 ‘돌마라’ 고개 위의 수많은 탈초(경전을 옮겨 적은 기도 깃발)를 뒤로 하니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여태 지나온 곳과 너무 다른 풍경이다. 계곡 사이의 초원지대를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가자 지금까지 힘들었던 모든 것이 잊히고 평화로워졌다. 마치 복받은 내세를 보는 듯하다. 딱 한 번 카일라스산 순례를 마쳤을 뿐인데 평화가 찾아왔다. 108번을 돌고 나면 정말 열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티베트=글·사진 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
▶여행 정보
티베트로 가려면 중국 비자가 필요하다. 네팔에서 출발해 들어가는 방법과 라싸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특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돌발사고에 대비해 단독으로 여행하는 것은 피하고 팀을 이뤄 행동하는 게 좋다. 고도가 높아 고산병에 걸릴 수 있다. 예방을 위해 여행 내내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좋다. 고산병에 걸렸을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적응하길 기다려야 한다.
여름철이라 해도 일교차가 심하고 눈이 내리는 경우도 있으니 방한복과 침낭을 꼭 준비해야 한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휴대폰을 가져갈 경우 여분의 배터리를 준비해야 한다.
역경을 이기고 떠나는 순례길 티베트자치구 수도인 라싸에서 1600㎞ 떨어진 카일라스산으로 가려면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우선 중국 정부 허가가 필요하고, 교통 문제도 만만치 않다. 라싸에서 카일라스산까지 2000㎞ 정도의 험로를 달려야 한다. 요즘은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외국인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식량 문제도 있다. 가는 길 초반에는 가끔 마을이 나온다. 비록 입에 맞지 않더라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사람 구경하기 힘든 험악한 오지로 들어선다. 여행 도중 밥을 굶는 일도 흔하다. 비상식량을 준비해도 한계가 있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배가 고프더라도 참는 것이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고산병이다.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데 해발 4500m 정도를 오르내린다. 고산병에 걸리면 심한 두통과 구토 증세를 일으키고 심하면 죽는다. 치료 방법은 고도가 낮은 곳으로 하루빨리 내려가는 것뿐. 그러나 카일라스산 순례길에선 방법이 없다. 더 아래로 내려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온갖 역경을 헤치고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렸다. 기어올랐다는 표현이 맞겠다. 야생화가 그림처럼 깔린 대초원을 지나 수천 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만년설 고갯마루를 넘기도 했다. 험준한 산맥을 끼고 돌면서 용용한 흐름으로 이어가는 강들을 건너고, 드넓은 자갈길을 만나기도 했다. 그림 같은 호수 옆을 지나가다 광활한 사막 속으로 빨려드는 일을 반복했다. 라싸를 떠난 지 2주 만에 카일라스 산자락에 도착했다. 차량이나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져 예전보다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고 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산자락의 유일한 마을 타르첸에는 수많은 순례자가 진을 치고 있다. 티베트인은 물론 네팔이나 인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많은 순례자가 끊이지 않고 몰려드는 것은 카일라스산이 티베트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스교의 성산(聖山)이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는 ‘시바’와 그의 부인이 이 산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현지에서 ‘성산(聖山)’, 또는 ‘신산(神山)’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이다.
108번 돌면 열반을 한다는 믿음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주변 산 틈새로 카일라스산 정상부가 살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거무튀튀한 모습이 거대한 투구를 연상케 한다. 거대한 투구 위에 쌓여 새하얗게 빛나는 만년설은 그야말로 눈의 보석과 같다. 남쪽 사면에 나 있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보는 이를 유혹한다. 주변의 나지막한 산들이 삥 둘러서 연꽃잎처럼 산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금까지 본 많은 산에서 느끼지 못한 고상한 멋이 풍겨온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순례자의 행렬이 이어졌다. 순례자 사이에 끼어 첫 번째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광활하게 펼쳐진 황무지 너머 멀리 ‘구르라 만하타(Gurla Mandhata·7728m)’가 웅대한 자태를 뽐낸다. 그 밑에 ‘마나사로바’ 호수가 검푸른 색으로 가물거리고 있었다.
카일라스산 주위를 도는 것을 ‘코라’ 또는 ‘파리카라마’라고 한다. 보통 시계 방향으로 시작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도는 이들도 있다. 순례자 대부분은 멀리에서부터 걸어온 사람이다. 네팔이나 인도에서 온 순례자는 이곳에서 100㎞ 정도 떨어진 국경도시 ‘부랑’에서 걸어온다. 더 먼 거리를 걸어온 자들도 있을 것이다. 성산을 한 바퀴 도는 데 보통 2~3일이 걸린다. 하지만 티베트 순례자들은 대부분 이른 새벽에 시작해 하루 동안에 끝낸다. 55㎞의 코라 전 일정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행하는 사람도 있다. 순례자들은 코라를 108번 마치면 열반한다고 믿는다. 한 손에 법륜, 또 한 손에는 염주를 돌려가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순례자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과는 거리가 먼 풍경처럼 느껴진다.
이상하지만 카일라스산이 피라미드라는 설이 있다. 2000년 7월 러시아 고대유적 발굴조사단이 티베트 서부지역을 탐사하던 중 카일라스산과 그 주변에서 피라미드 군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특히 카일라스산 정상에 해당하는 180m 높이의 삼각형 봉우리가 계단식 피라미드라는 기사였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왜 카일라스산이 여러 종교의 성산이 됐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구상 최초 문명이 이곳에서 꽃피웠다는 설이 있다. 이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이 일어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서쪽으로 옮겨간 이들은 ‘수메르(Sumer) 문명’을 탄생시켰다. 수메르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다. 북쪽으로 이동한 일부는 알타이, 바이칼, 만주를 거쳐 한반도까지 갔다. 가설에 따르면 우리 역시 카일라스산에서 온 것이다. 황당무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카일라스산 순례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세(來世)를 기다리는 사람들
점점 발걸음이 무겁고 숨이 가빠진다. 변변치 못한 끼니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해발 5000m 이상 지역을 걷다 보니 온몸이 파김치가 됐다. 쓰러지듯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앞을 바라보니 카일라스산 정상이 보인다. 하늘의 솜털 같은 흰 구름도 사랑스럽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가는 물줄기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이곳 카일라스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줄기는 아시아 주요 4대강의 근원이 된다. ‘인더스’와 ‘갠지스’, 네팔로 흘러들어가는 ‘카르나리’, 티베트 고원을 가로지르는 ‘브라마푸트라’ 등은 모두 카일라스산에서 발원한 것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물줄기는 마나사로바 호수로 흘러들지만 결국 인더스강의 최상류가 되는 셈이다.
순례길을 걷다가 가파른 언덕길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죽은 사람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는 힌두교도였다. 이곳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성산에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또는 가족의 부축을 받아가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카일라스산으로 마지막 순례를 온다. 그러다가 북동쪽에 있는 5650m 높이의 ‘돌마라’ 고갯길을 넘기 전 나오는 ‘죽음의 보금자리’라는 곳에서 카일라스산을 바라보며 다음 생으로 향한다. 여기 쓰러진 힌두교도도 그렇게 내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떠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죽음의 보금자리’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찌된 것인지 몰라도 유골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옷가지, 신발, 머리카락 등이 들꽃 사이에서 스쳐가는 바람에 가볍게 떨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죽은 자들의 상의를 주변 바위에 입혀 카일라스산을 향하도록 세워놨다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정말 사람이 서 있는 것 같다. 카일라스산이 죽어서도 성산이요, 신산이라는 굳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만년설을 배경으로 한 ‘돌마라’ 고개 위의 수많은 탈초(경전을 옮겨 적은 기도 깃발)를 뒤로 하니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여태 지나온 곳과 너무 다른 풍경이다. 계곡 사이의 초원지대를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가자 지금까지 힘들었던 모든 것이 잊히고 평화로워졌다. 마치 복받은 내세를 보는 듯하다. 딱 한 번 카일라스산 순례를 마쳤을 뿐인데 평화가 찾아왔다. 108번을 돌고 나면 정말 열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티베트=글·사진 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
▶여행 정보
티베트로 가려면 중국 비자가 필요하다. 네팔에서 출발해 들어가는 방법과 라싸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특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돌발사고에 대비해 단독으로 여행하는 것은 피하고 팀을 이뤄 행동하는 게 좋다. 고도가 높아 고산병에 걸릴 수 있다. 예방을 위해 여행 내내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좋다. 고산병에 걸렸을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적응하길 기다려야 한다.
여름철이라 해도 일교차가 심하고 눈이 내리는 경우도 있으니 방한복과 침낭을 꼭 준비해야 한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휴대폰을 가져갈 경우 여분의 배터리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