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범 화이브라더스 대표>
<지승범 화이브라더스 대표>
지난 4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깜짝 놀란 소식이 있었다. 중국 최대 엔터 기업인 화이브라더스그룹이 국내 엔터 회사 '심엔터테인먼트'(심엔터)를 인수한다는 소식이었다.

화이브라더스그룹은 영화 제작과 배급을 주력으로 드라마와 게임, 광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엔터 기업이다. 중국 내 영화 시장 점유율은 30%에 달한다.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이 회사 2대 주주이기도 하다.

심엔터는 배우 유해진, 주원, 강지환 등이 소속된 회사로 최근 드라마 '운빨로맨스'(황정음·류준열 주연)를 제작해 주목받았다.

연기파 배우들을 갖춘 회사이긴 하지만 그 흔한(?) 한류 스타 한명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런 심엔터가 중국 최대 엔터 기업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를 이 회사 신임 수장에 오른 지승범 대표(39, 사진)에게 들어봤다.

◆ 中 화이, 심엔터 신인 발굴 능력 점수

지 대표는 중국 화이브라더스그룹이 심엔터를 인수하도록 설득한 당사자다.

그가 글로벌 컨설팅기업 대표로 있던 지난해 여름 화이브라더스그룹 창업주인 왕중쥔(王中軍) 회장을 만나 한국 엔터 업계 진출 전략을 설명했다.

당시 관심은 보였지만 투자를 망설이던 왕 회장은 올해 초 경쟁사인 화책미디어그룹 등이 한국 엔터 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투자를 결정했다. 화책미디어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제작사인 NEW 2대 주주다.

"화이브라더스그룹도 한국의 여러 엔터 회사들을 후보군에 놓고 고민했죠. 그중 심엔터를 낙점한 가장 큰 이유는 이 회사가 10년 넘게 꾸준히 관련업계에서 입지를 쌓아왔고 뛰어난 신인 발굴 능력을 갖췄다는 데 있었죠."

김수현, 송중기 같은 한류 스타는 없어도 유해진, 주원 등 연기파 배우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신인을 발굴해 키워내는 시스템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이 회사 소속인 신인 배우 임지연, 박혜수 등은 최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주목받고 있다.

심엔터가 드라마 제작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점도 화이브라더스그룹 눈길을 끌었다. 심엔터는 지난해 드라마 '가면'(주지훈·수애 주연)과 웹드라마 '프린스의 왕자'를 만들었고 올해는 '운빨로맨스'를 제작했다. 하반기에는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사극판'(주원 주연)을 준비 중이다.

"화이브라더스그룹은 이미 모든 걸 다 갖춘 회사를 인수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자신만의 제작 시스템과 배우 육성 노하우를 가진 심엔터가 화이브라더스그룹과 만나 낼 수 있는 시너지에 주목한거죠."

화이브라더스그룹은 심엔터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 회사를 그룹 내 정식 일원으로 편입했다.

일부 작품에 투자하거나 주요 주주에 머무는 다른 중국 기업과 달리 지난 4월 심엔터 최대주주(지분율 26.7%)에 올랐다. 왕 회장 사촌 동생인 왕중레이(王中磊) 화이브라더스그룹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도 했다.

◆ 영화 분야 시너지 기대…VFX M&A

화이브라더스그룹은 심엔터를 인수한 뒤 사명도 화이브라더스로 변경했다. 이어 새롭게 출발한 회사를 이끌 적임자로 지 대표를 지목했다.
<사진 왼쪽부터: 유해진, 주원, 강지환. 출처: 화이브라더스>
<사진 왼쪽부터: 유해진, 주원, 강지환. 출처: 화이브라더스>
지 대표는 사실 연예하고 거리가 멀다. 아는 연예인도 많지 않고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도 아니다.

그가 화이브라더스 대표를 맡는다고 했을 때 업계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매니저나 제작자 출신 대표가 많은 연예계에서 지 대표 이력은 독특하다.

회계법인 KPMG FAS(재무자문서비스) 소속 애널리스트로 출발해 KTB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을 거쳐 컨설팅기업 이퀄리브리엄파트너스 대표를 지낸 투자업계 전문가다. 인수·합병(M&A)이 지 대표 전문 분야다.

화이브라더스그룹이 화이브라더스 인수를 통해 국내 엔터 회사 M&A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대표를 맡은 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는 건 M&A입니다. 국내 다양한 엔터 회사들을 들여다보고 있죠. 매물로 나온 회사는 물론이고 매각 의사가 없는 숨은 회사까지 모두 보고 있습니다. M&A는 최대주주의 강한 의지이죠."

지 대표는 영화 관련 회사들에 M&A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이브라더스그룹의 주력 분야가 영화인만큼 이 분야에서 낼 수 있는 시너지가 가장 클 것이란 판단에서다. 특히 비주얼이펙트(VFX, 시각적인 특수효과) 전문회사를 눈여겨 보고 있다. 가능한 올해 안에 관련 M&A를 성사시킬 계획이다.

"한국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많지만 중국 등 해외에서는 VFX를 필요로 하는 블록버스터가 많죠. VFX 전문회사로 코스닥에 상장한 덱스터도 매출의 80%가 중국에서 나옵니다. 중국 화이브라더스그룹에서 만드는 영화에 화이브라더스가 VFX 쪽에서 참여하면 효과를 낼 수 있죠."

콘텐츠펀드 조성도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콘텐츠와 시스템이 이미 잘 갖춰진 회사를 M&A 하는 것만큼 가능성 있는 벤처 회사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엔터뿐 아니라 웹툰, 다중채널네트워크(MCN) 등 콘텐츠와 관련한 전반적인 회사들을 투자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일종의 벤처 인큐베이팅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반 법인 회사는 따로 사모펀드를 조성할 수 없어서 하반기 중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펀드는 500억원 규모를 목표로 하고 있죠."

지 대표는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고 다양한 콘텐츠 회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화이브라더스를 종합 엔터 회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화이브라더스그룹 일원으로 중국 내 네트워크와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게 된 만큼 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라는 판단이다.

"드라마나 예능 분야에서 화이브라더스그룹과 한중 공동 제작에 나설 수도 있고, M&A 하려는 회사를 통해서도 협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화이브라더스그룹을 최대한 귀찮게 해서 협력을 이끌어 낼 겁니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