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엄옥경 씨가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서양화가 엄옥경 씨가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활짝 핀 모란이 보는 이의 가슴을 사무치게 파고든다. 꽃과 나무가 명징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니 ‘행복이 노랗게 물드는구나’라는 추임새가 절로 터진다. 노란 꽃 속에 향기로운 기운을 품고 뻗어나가는 품이 그야말로 ‘행복지중(幸福之中)’이다. 서양화가 엄옥경 씨(52)의 신작 ‘모란이 자란다, 꿈은 잊지 말란다’이다.

전통 민화를 차용한 팝아트 형식으로 작업한 엄씨가 1~1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홍익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엄씨는 전통 민화를 기본적인 모티브로 하되 민화와 관련 없는 소재들을 혼재시켜 자기만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는 먹 대신 서양의 재료인 아크릴을 활용해 다양한 이미지를 사의(寫意)적으로 그린다. 그의 현대적인 민화풍의 작품은 고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행복에서 만난 풍경’. 일상의 풍경을 화려한 색감으로 살려 현대인의 행복을 집중 조명한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행복을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캔버스 위에 수천 번 붓의 떨림으로 퍼져나가는 작품들이다.

엄씨는 모란, 연꽃을 현대인의 행복과 오버랩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빨강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색감으로 풍경을 스케치한 다음, 꽃을 빠른 템포로 잡아낸다. 현대인의 삶과 꽃이 하나가 된 풍경들은 그대로 화폭 속에 이야기로 들어앉는다. 중첩된 굵은 선묘와 감각적이면서 원색적인 바탕 미학도 매력적인 요소다.

작가는 “민화의 화조도에서 부귀와 평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모란과 연꽃을 재해석한 색상과 형태로 그렸다”며 “현대인이 추구하는 삶의 행복과 의미를 일깨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모란과 꽃이 등장한다. 아크릴을 이용해 꽃의 색깔을 다양하게 드러내고 서양화에서 빌려온 원근법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국화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렬한 붓 터치의 흔적이 만들어낸 꽃의 형태에서 현대미술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화풍은 최근 변화하고 있다. 화면이 좀 밝아진 데다 다양한 색면에 자동차, 사람, 소파, 나무, 하늘 등을 집어넣어 변화를 시도했다. 옛 한국화에 결핍된 행복의 향기를 더 많이 살려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엄씨는 “그림 속에 생명력을 다져내고 싶어 다양한 형태의 사물을 살짝 덧칠했더니 꽃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며 “화면이 더 풍성해지고 현대적 미감도 살아났다”고 했다. 꽃과 다양한 물상의 조화를 통해 행복에 대한 작가의 염원을 보여준다. 엄씨는 “사람이나 자동차, 집 등 함축된 형태는 행복한 삶의 표현이자 화면에서 핵심 포인트 역할을 하는 나의 기호”라며 “경제불황과 구조조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그림으로 위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