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체리피킹 자본주의와 우물안 개구리
‘체리피킹(cherry picking)’은 체리를 고를 때 상태가 좋은 것만 택하고 안 좋은 체리는 건드리지 않는 데서 유래한 개념이다. 불리한 것은 무시하고 유리한 것만 챙기는 행태를 묘사하는 단어로 쓰인다. 예를 들어 법인이 파산하면 파산 재단은 여러 개의 계약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챙기면서 불리한 계약은 무시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체리피킹이라고 부른다.

최근 브렉시트와 관련해 많은 지적이 나왔다.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데에는 이민자 급증으로 인한 문제점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영국은 세계화의 상징인 유로·달러 시장의 본산지다. 역외금융센터를 운영하면서 여기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를 포함해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다. 물론 이용자에게도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전 세계 자금을 거의 다 취급하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은 개방과 세계화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를 자국에 유치해 이들의 영업을 토대로 개방의 이익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로서 브렉시트 결정을 주도한 뒤 새 내각에서 외무장관에 임명된 보리스 존슨은 브렉시트가 영국 금융시장에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에게 불리한 이민은 거부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유로·달러 시장은 계속 유지하되 EU의 규제에서 벗어나는 경우 유로·달러 시장이 더욱 발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불리한 것은 거부하고 유리한 것만 챙기겠다는 체리피킹의 전형적 모습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1944년 소위 브레턴우즈 체제의 구축을 통해 미국은 자국이 발행하는 달러를 전 세계가 사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이익을 누렸다. 미국에서 해외로 풀려나간 약 10조달러의 자금은 자국 화폐가 기축통화 지위를 확보한 덕택에 미국이 누린 이익을 상징하고 있다(단순화하자면 달러라는 종이를 주고 제품을 받은 셈이다). 물론 미국은 세계 경찰국가로서 많은 역할을 했고 자유무역의 리더로서 시장 개방과 무역 자유화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러던 미국이 이제는 소위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문을 닫아 거는 고립이 아니다. 불리한 부분을 바꾸고 대가를 청구하되 유리한 부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무역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문호를 열어놓고 자기 제품은 계속 팔면서 자기 제품이 잘 안 팔리면 남들로부터 수입하는 물건에 대해 비관세 장벽을 포함해 다양한 보복을 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선진국들은 이제 체면을 다 내던지고 오직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우선하면서 유리한 것은 취하고 불리한 것은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히 ‘체리피킹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만하다.

과거 글로벌 시장에서 자유무역으로의 환경적 변화가 일어날 때 이 혜택을 온몸으로 받은 것이 우리나라다.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기적적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런데 이런 DNA가 이제는 가동을 중지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환경이 180도 달라지면서 우리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데 대응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철지난 경제민주화 구호를 앞세우거나 법인세 인상을 거론하고 수도권 규제완화 등에 저항하는 모습 속에서 국내에만 코를 박은 채 글로벌 환경 변화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기업들이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이제 국가 전략과 방향을 새로 짜야 한다. 글로벌 위기 이후 도래한 ‘체리피킹 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틀과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문제에만 천착하지 말고 눈을 높이 들어 밖을 보며 휙휙 소리나게 급변하는 글로벌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대한민국 뉴 글로벌 전략’의 수립과 가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 민간위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