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과 직급에서도 여자 은행원은 차별을 받았다. ‘여행원’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은행원 중에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직급이었다. 즉, 일반 은행원(남성)보다 한 단계 아래 있는 직급이었다. 따라서 ‘여행원’이 ‘여’자를 떼고 일반 은행원이 돼 승진하려면 전환고시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여행원 사이에서는 ‘전환고시’를 ‘성전환고시’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전환고시는 여행원이 일반 행원이 되는 기회라기보다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시험이었다. 제한된 응시 기회에 사법고시 수준의 어려운 과목들을 넣고, 한 과목이라도 기준을 넘지 못하면 탈락이었다. 그래서 처음 생긴 이래 몇 년간 합격자가 한 명도 나오지 못했으니 차별을 제도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업장에서 남녀차별 문제는 내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였다. 결국 7~8년간의 긴 싸움 끝에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됐고, 1992년에는 앞서 말한 여행원 제도도 폐지됐으며 이후 악명 높던 전환고시도 폐지됐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미국에서 여성 최초로 대통령 후보로 지명돼 마지막 남은 ‘유리천장’을 깰 기회를 얻었다. 이를 상징하듯 클린턴 후보는 역대 남성 대통령의 얼굴 사진이 슬라이드 식으로 연이어 공개된 뒤 마치 유리천장이 깨지듯 스크린이 깨지는 듯한 상황에서 등장했다. 그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유리천장을 거둬내면 저 높은 하늘이 남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 유리천장을 깨 1억6000만 미국 여성의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영주 < 더불어민주당 의원 joojoo2012@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