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국내 기관이 헤지펀드 투자 망설이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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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흐름 안정적인 자산 선호
시가평가 부담
'메이도프 사건' 트라우마
시가평가 부담
'메이도프 사건' 트라우마
“대체투자 수익률이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부동산 및 인프라 쪽에 여전히 좋은 기회가 많은데 굳이 헤지펀드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신현장 경찰공제회 금융투자본부장)
국민연금이 최근 1조원 규모의 헤지펀드 투자를 맡길 재간접펀드(펀드오브펀드) 운용사로 그로브너와 블랙록을 선정하며 헤지펀드 투자의 첫발을 뗐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 기관투자가는 여전히 헤지펀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저조한 수익률이다. 전 세계 헤지펀드의 수익률을 보여주는 헤지펀드리서치(HFR) 종합지수는 올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1.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S&P500지수가 5.76%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관투자가들도 이런 이유로 헤지펀드에서 돈을 빼는 추세다. 여기에 더해 한국 기관들이 헤지펀드를 기피하는 데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① 현금흐름 안정적인 채권형 자산 선호
한국 기관투자가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중시한다. 저금리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채권 비중을 줄이고 대체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사모부채펀드(PDF)나 인프라처럼 안정적으로 현금이 나오는 채권형 자산을 선호한다. 투자금의 성격상 현금 흐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서다.
장동헌 지방행정공제회 사업부이사장(CIO)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투자한 즉시 현금흐름이 나오는 브라운필드 인프라 자산에 관심이 많다”며 “헤지펀드의 경우 수익률은 기대에 못 미치고 변동성은 커 투자를 확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행정공제회는 400억원을 펀드오브펀드 형태로 역외 헤지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대체투자 자산 3조8491억원 대비 1.04%에 불과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지난 4월 600억원을 두 개의 펀드오브헤지펀드에 나눠 출자할 계획이었지만 막판에 백지화했다. 작년 3월 세 개 펀드오브펀드 운용사에 300억원씩 총 900억원을 투자했지만 수익률이 기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정두영 과학기술인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CIO)은 “투자자산 다변화가 헤지펀드 투자의 목표라고 하지만 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건 자원 낭비”라고 평가했다.
② 시가평가에 따른 부담
헤지펀드의 성과는 매달 시가로 평가돼 성과 평가를 받는다는 점도 기관투자가에는 부담이다. 손실이 생길 때마다 그 이유를 상부나 감사 조직에 보고해야 하지만 ‘현 시장상황에서 특정 헤지펀드가 왜 돈을 잃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웬만한 전문 지식 없이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공제회 해외 대체투자 관계자는 “국민연금 KIC와 같이 투자 규모가 큰 곳을 제외하면 한국 기관들이 헤지펀드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인력을 고용하는 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운용역이 자신보다 더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사나 감사 조직에 헤지펀드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전했다.
이에 비해 사모펀드(PEF)는 시가평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투자하기 편하다고 기관투자가들은 입을 모은다. 분기에 한 번 회계법인을 써 포트폴리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기는 하지만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가정이나 할인율 산정이 주관적이어서 헤지펀드만큼 엄격한 시가평가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③ 메이도프 트라우마
2008년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 당시 손실을 맛본 경험이 한국 기관에 여전히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대한생명 등 한국 기관투자가는 미국 펀드오브헤지펀드 운용사인 페어필드 센추리를 통해 약 1억달러를 메이도프 펀드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국내 헤지펀드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관은 해외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PEF에 투자하는 것은 편안하게 생각했지만 헤지펀드의 경우 초기에 실패를 경험하다 보니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기관들은 2002년께부터 헤지펀드 투자를 시작해 메이도프 사건 직전에는 투자액이 약 70억달러까지 늘어났지만 사건 직후 30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한 뒤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지펀드업계 관계자는 “헤지펀드가 투자자에게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시장 상황에 개의치 않고 절대수익을 추구해 고객이 분산 투자의 효과를 최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며 “개별 투자 상품으로 볼 게 아니라 전략적 자산배분의 일환으로 헤지펀드 투자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창재 / 김대훈 기자 yoocool@hankyung.com
국민연금이 최근 1조원 규모의 헤지펀드 투자를 맡길 재간접펀드(펀드오브펀드) 운용사로 그로브너와 블랙록을 선정하며 헤지펀드 투자의 첫발을 뗐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 기관투자가는 여전히 헤지펀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저조한 수익률이다. 전 세계 헤지펀드의 수익률을 보여주는 헤지펀드리서치(HFR) 종합지수는 올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1.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S&P500지수가 5.76%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관투자가들도 이런 이유로 헤지펀드에서 돈을 빼는 추세다. 여기에 더해 한국 기관들이 헤지펀드를 기피하는 데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① 현금흐름 안정적인 채권형 자산 선호
한국 기관투자가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중시한다. 저금리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채권 비중을 줄이고 대체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사모부채펀드(PDF)나 인프라처럼 안정적으로 현금이 나오는 채권형 자산을 선호한다. 투자금의 성격상 현금 흐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서다.
장동헌 지방행정공제회 사업부이사장(CIO)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투자한 즉시 현금흐름이 나오는 브라운필드 인프라 자산에 관심이 많다”며 “헤지펀드의 경우 수익률은 기대에 못 미치고 변동성은 커 투자를 확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행정공제회는 400억원을 펀드오브펀드 형태로 역외 헤지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대체투자 자산 3조8491억원 대비 1.04%에 불과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지난 4월 600억원을 두 개의 펀드오브헤지펀드에 나눠 출자할 계획이었지만 막판에 백지화했다. 작년 3월 세 개 펀드오브펀드 운용사에 300억원씩 총 900억원을 투자했지만 수익률이 기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정두영 과학기술인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CIO)은 “투자자산 다변화가 헤지펀드 투자의 목표라고 하지만 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건 자원 낭비”라고 평가했다.
② 시가평가에 따른 부담
헤지펀드의 성과는 매달 시가로 평가돼 성과 평가를 받는다는 점도 기관투자가에는 부담이다. 손실이 생길 때마다 그 이유를 상부나 감사 조직에 보고해야 하지만 ‘현 시장상황에서 특정 헤지펀드가 왜 돈을 잃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웬만한 전문 지식 없이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공제회 해외 대체투자 관계자는 “국민연금 KIC와 같이 투자 규모가 큰 곳을 제외하면 한국 기관들이 헤지펀드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인력을 고용하는 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운용역이 자신보다 더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사나 감사 조직에 헤지펀드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전했다.
이에 비해 사모펀드(PEF)는 시가평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투자하기 편하다고 기관투자가들은 입을 모은다. 분기에 한 번 회계법인을 써 포트폴리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기는 하지만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가정이나 할인율 산정이 주관적이어서 헤지펀드만큼 엄격한 시가평가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③ 메이도프 트라우마
2008년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 당시 손실을 맛본 경험이 한국 기관에 여전히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대한생명 등 한국 기관투자가는 미국 펀드오브헤지펀드 운용사인 페어필드 센추리를 통해 약 1억달러를 메이도프 펀드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국내 헤지펀드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관은 해외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PEF에 투자하는 것은 편안하게 생각했지만 헤지펀드의 경우 초기에 실패를 경험하다 보니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기관들은 2002년께부터 헤지펀드 투자를 시작해 메이도프 사건 직전에는 투자액이 약 70억달러까지 늘어났지만 사건 직후 30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한 뒤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지펀드업계 관계자는 “헤지펀드가 투자자에게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시장 상황에 개의치 않고 절대수익을 추구해 고객이 분산 투자의 효과를 최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며 “개별 투자 상품으로 볼 게 아니라 전략적 자산배분의 일환으로 헤지펀드 투자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창재 / 김대훈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