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막을 수 있나" 12년차 타투이스트를 만나다

빠르게 진동하는 기계 끝 바늘이 셀 수 없이 피부를 찌른다. 바늘 끝에 맺힌 잉크가 피부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張(베풀 장)’ 자 하나를 등에 새기는데 30여분 공들인다. 40평이 넘는 작업실엔 ‘위이잉’ 기계 소리만 들린다. 아플 법도 한데 시술받는 손님도 미동조차 없다. 거실 옆 철조망 넘어 본 작업실은 엄정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업이 끝나자 주변 정리가 이어진다. 타투 기계에서 사용한 시술용 바늘을 빼서 버린 뒤, 묻은 잉크와 핏방울 등을 깨끗이 닦아낸다. 다음 손님을 위해 새 헝겊을 반듯하게 쌓고, 새 잉크 통을 가지런히 재정리한다. 침대 정리까지 끝난 뒤에야 거실로 나온 한 남자.
[트렌디라이프] '타투 규제국가' 한국…인재 또 떠나고 있다
타투이스트(문신예술가·tattooist) 심성원(41)씨 손놀림엔 머뭇거림이 없다. 마주 앉은 소파 앞 탁자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널려있다. 호랑이, 해골, 용, 도깨비 등 하나같이 필력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예상과 달랐다. 그는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에요. 그림도, 타투도 독학했어요, 미술학원 따로 다니지도 못했고요. 다만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고, 학교에서 잘 그린다고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죠.”
[트렌디라이프] '타투 규제국가' 한국…인재 또 떠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그가 타투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해서 28살까지 중장기, 고물상, 목재소 등을 다녔어요. 진로를 찾기 전까지 많이 헤매던 시기였죠. 방황 중 문득 18살 때 본 미국 다큐멘터리 속 타투이스트가 생각났어요. 그 날로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며 타투이스트를 찾았죠. 근데 그 시절만 해도 타투이스트 찾기 쉽지 않았어요. 겨우 한 분 알게 됐는데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독학했죠.”

그림과 기계를 좋아했던 그는 기계로 그림을 그리는 타투이스트를 천직으로 여긴다.

“오로지 독학으로만 해왔지만 타투에 대한 깊이나 애착만큼은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29살에 혼자 오피스텔에서 주위 친구들에게 시술하고, 입소문이 나 지금까지 온 경험은 누구 밑에 있다고 배울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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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오피스텔 집에서 시작, 40대 초반 상가 한 구석 작업실을 갖기까지 12년이 걸렸다. 12년 새 커진 작업실만큼이나, 타투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변했다. ‘깡패 같다’, ‘혐오스럽다’ 고 여기던 타투는 이제 패션을 선도한다는 트렌드세터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중매체 속 연예인은 물론 서울 홍대와 강남 거리를 활보하는 남녀의 몸 구석구석에 문신은 '보란듯이' 새겨져있다. 쉽게 지울 수 있는 헤나(식물성 염료) 타투나 문신 스티커를 목, 손등, 팔목, 발등, 발목, 종아리, 배꼽 등에 붙인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부지기수다.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엄청 달라졌죠. 그 땐 인터넷 검색되는 타투이스트 한 두 명 뿐이었어요. 현재 비공식적으로 2만 명입니다. 실력도 일취월장했어요. 국내는 물론 한류 덕분에 중국인도 타투를 받겠다고 찾아와요. 최근 힙합 열풍을 타고 젊은 손님들도 더 많아졌고요.”

손님이 늘면서 일에 대한 열정도 커졌다고 한다.

“손님들이 저를 믿고 몸을 맡겼는데, 어떻게 열심히 안 할 수 있겠어요. 다른 사람 피부에 자기 작품을 새긴다는 건 창작자 입장에서는 특권이에요. 매번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부족함을 느끼고 더 잘하고 싶죠. 손님도, 스스로도 더 만족하고 싶어해요. 창작자라면 당연한 욕심입니다.”

일주일 평균 손님을 받아 작업하는 날은 3~4일 정도. 그 외에 날은 매일 습작에 매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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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에 대한 열정이 큰 만큼 국내 타투 시장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아직 불법이라는 게 많이 속상하죠. 전 세계적으로 타투 자체가 불법인 곳은 일본과 우리나라뿐이에요.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 건강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타투가 의료법에 갇혀있어요. 의사만이 타투를 할 수 있는데, 의사에게 타투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진짜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면 허가제를 통해 관리를 해야죠.”

직업의식이 결여된 타투이스트를 걸러내기 위해서라도 법적 테두리는 필요하다고 했다.

“저는 절대 미성년자들에게는 타투를 해주지 않아요. 자기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투를 하면 분명 후회해요. 성인들도 후회하는데 어린 친구들은 오죽하겠어요. 장삿속에 해주는 타투이스트들은 없어져야 해요.”

위생문제도 지적했다.

“간혹 인터넷에 바늘 재사용으로 인한 감염 사례들이 올라와요. 제대로 된 타투이스트한테 시술을 받은 게 아니에요. 바늘, 잉크 가격 진짜 얼마 안 하거든요. 그걸 재사용하는 사람들은 타투 이스트라 불리면 안 돼요. 결국 이런 문제도 합법화를 통한 관리 감독이 있다면 해결될 문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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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합법화는 17대 국회부터 여러 차례 발의됐다. 지난 5월 19대 국회에서 발의한 ‘문신사법안(면허를 통한 문신 양성화)’이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되면서 문신 합법화는 오리무중이다. 그 와중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는 '신(新) 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에 타투이스트를 17개 신 직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지난 1월 '문신 시술자 위생관리 교육 및 미성년자 시술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서화문신 안전관리 방안'을 제시하면서 합법화를 검토 중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최고의결구기인 대의원회는 지난 24일 문신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신 시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B형 간염 등 혈액매개 감염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하는걸까. 정부와 국회, 의사협회 등 정책 주요 논의자 간 '갈팡질팡'이 공회전하는 사이, 재능있는 국내 타투이스트들은 해외 러브콜을 받아 한국을 떠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공언해 온 '손톱 밑 가시' 규제 철폐 정책이 K패션-뷰티 분야에서 주목받는 문신 등 피부 시술 산업 분야에는 유독 사각지대라는 분석도 나온다.

심 씨는 안타까워했다.

“저희는 (정책에) 따르겠다 이거에요. 이번 국회에서 합법화가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다만 짧은 타투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어요. 국제대회 심사위원까지 하는 수준입니다. 타투가 불법인 나라에서요. 문화를 막을 수는 없어요. 총 칼보다 무서운 게 문화예요. 우리나라도 언젠가 합법화가 되겠죠. 빨리 여느냐, 늦게 여느냐 시기의 문제겠지. 다만 누구보다 뛰어난 아티스트가 지쳐 손을 놔버릴까봐,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보다 뛰어난 천재들이 한국을 떠나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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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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