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의 교훈
미국 대통령 선거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는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슬로건부터가 그렇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후보의 전당대회 구호는 ‘Stronger together(함께하면 더 강하다)’이다. 영국의 EU 잔류파들은 ‘Stronger in’을 내세웠다. ‘EU 안에 있어야 더 강하다’는 호소였다.

미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American first(미국이 우선)’도 마찬가지다. 브렉시트 투표를 앞두고 EU 잔류를 역설했던 조 콕스 하원의원에게 총격을 가한 괴한은 ‘Britain first(영국이 우선)’를 외쳤다.

혐오의 뿌리는 경제적 불만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혐오주의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멕시코 접경에 거대한 장벽을 쌓고 무슬림 입국을 막겠다는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브렉시트 찬성안 통과의 핵심 동력도 반(反)이민·난민정서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같은 분노를 먹고산다”고 진단했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의 제노포비아(이민자 혐오)는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혐오의 근원은 역시 경제 문제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 이후 장기 불황과 양극화로 중산층과 서민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심해졌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이나 트럼프는 경제적 불균형에 따른 대중의 분노를 이민자에 대한 혐오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우선시하는 보호무역도 강화할 태세다. 트럼프는 미국이 맺은 모든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에 고무된 프랑스의 국민전선(FN), 독일을 위한 대안(AfG) 등 극우정당들도 난민 위기와 경제 성장 둔화를 비판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연쇄 테러를 가하는 이슬람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IS)는 극우정당이 세력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분노 다스려야

이런 광경은 낯설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상황에 대한 분노와 불안, 기존 질서에 대한 반기, 민족주의 부상, 국제주의 후퇴 등은 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193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1929년 대공황 여파로 휘청거리다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며 보호무역으로 돌아섰다. 당시 브렉시트 못지않은 충격을 던진 국제질서로부터의 첫 번째 이탈이었다.

미국은 1930년 관세장벽을 쌓았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으로 극우 파시즘도 준동했다. 군소 정당이던 독일 나치당은 1930년 선거에서 ‘국가 사회주의’를 표방해 제2당으로 올라서는 돌풍을 일으켰다. 1933년 독일 총통 자리에 오른 아돌프 히틀러는 훗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유덴라인(유대인 청소)’이라는 사상 최악의 혐오 범죄를 자행했다.

브렉시트 결정과 미 대선은 세계 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EU는 영국의 탈퇴 결정으로 이미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은 어느 때보다 무역 등 국제질서 판도를 뒤바꿀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의 분노와 혐오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정치권이 쥐고 있다. 선거에서 분노와 혐오를 이용하려는 정치는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이정선 국제부 차장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