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신전에 서 있는 람세스 2세의 석상. 그는 이집트를 가장 강력한 왕국으로 만들었다.
룩소르 신전에 서 있는 람세스 2세의 석상. 그는 이집트를 가장 강력한 왕국으로 만들었다.
나일강을 따라 크루즈를 타고 가며 수천년 이집트 유적의 정수를 만난다.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크루즈 여행의 또 다른 매력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일 크루즈를 타면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이집트에서는 아직 왕들이 살아서 피라미드 속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 내밀한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천년의 세월을 넘어 진짜 이집트를 만나는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나일과 파라오의 유적 더듬는 나일 크루즈

[여행의 향기]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곳…이집트 고대도시 룩소르
‘나일 강물을 먹은 사람은 반드시 나일 강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 있듯 나일강은 이집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낳은 나일강은 지금도 국토의 95%가 사막인 이집트를 먹여 살리는 젖줄이자 생명선이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출발한 나일강은 6690㎞를 흘러 알렉산드리아에서 여정을 마친다. ‘나일(Nile)’이란 이름은 그리스어 ‘닐루스(Nilus)’에서 유래했다. ‘탁하게 흐른다’는 뜻이다.

신이 내린 이 장대한 물길은 범람을 거듭해 사막을 옥토로 바꾸고 온 이집트인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곡물을 키워냈다. 그리고 이 풍요로움이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됐다. 나일강에 대한 이집트인의 경배는 고대 파피루스에서도 확인된다. ‘그대는 왕이며, 그대는 모든 율법, 언제나 목마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함 없는 그대 은총에 찬란한 눈길을 보낸다.’

에드푸 신전에 그려진 그림. 방금 그린 것처럼 생생하다.
에드푸 신전에 그려진 그림. 방금 그린 것처럼 생생하다.
나일 크루즈는 나일강과 파라오의 유적을 배로 더듬어가는 여정이다. 이집트 유적의 대부분은 나일강가에 있다. 크루즈에서 먹고 자며 짧게는 나흘, 길면 1주일 동안 강 유역을 따라가며 찬란한 이집트 유산을 여행한다. 여러 코스가 있는데 대개 룩소르에서 출발해 에드푸를 거쳐 아스완까지 운항하거나 혹은 반대 노선으로 운항한다. 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신전, 호루스 신전, 카움움부 신전, 왕들의 계곡, 아부심벨 등이 이 코스에 포함된다. 나일 크루즈는 이집트 유적을 돌아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크루즈는 종류가 다양하다. 쏟아질 듯 찬란한 밤하늘의 별 아래를 여행하는 전통배 펠루카부터 특급호텔 부럽지 않은 화려한 6성급 크루즈까지 예산에 맞춰 고를 수 있다. 크루즈에서 머무는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차와 요리를 즐기며 수피댄스와 밸리댄스 등을 감상하다 보면 이집트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항해하는 동안 때에 따라 변하는 강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흔히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집트 최대의 야외 박물관

이집트 문명이 남긴 문화유산 중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이지만 문화적으로 번성했던 시기는 신왕국 시대였다. 룩소르는 ‘테베’라고 불렸던 상이집트 신왕국의 수도였던 곳. 지금은 소도시가 됐지만 한때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을 정도로 번성한 도시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람세스 2세도 당시의 파라오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룩소르를 ‘백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라고 칭송했고,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이집트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가면서도 룩소르의 매력에 한동안 퇴진을 멈췄다고 한다.

룩소르에는 멤논의 거상, 하트셉수트 제전, 왕들의 계곡, 카르나크 신전 등이 유명하다. 이 중 가장 돋보이는 곳은 세계 최대의 신전으로 손꼽히는 카르나크 신전이다. 이집트 역대 왕들이 2000여년에 걸쳐 조금씩 증축해 온 것으로 룩소르에서도 가장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에서 최고의 신으로 받들어지는 아멘라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다. 높이 10층 규모의 탑문부터 방문객을 압도한다.

[여행의 향기]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곳…이집트 고대도시 룩소르
탑문을 통해 신전에 들어서면 회랑 양편에 숫양 머리의 스핑크스 10여기가 도열해 있다. 그리고 그 끝에 람세스 2세의 석상. 석상 뒤로 수많은 돌기둥이 서 있는데, 둘레 15m, 높이 23m에 달한다. 그 수만 무려 134개다. 카르나크 신전은 건립에만 천년이 걸렸다. 동서 540m, 남북 600m의 규모. 지구상의 신전 건축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신전의 주인은 아문(Amun)신. 신왕국시대가 숭앙한 최고신으로 테베의 조물주다. 카르나크 신전은 영화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의 배경이 됐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신전으로 이어진다. 룩소르 신전은 카르나크 대신전의 부속신전으로, 카르나크에서 룩소르까지는 참배길이라는 2.5㎞ 길로 이어져 있다. 신왕국시대 초기 아멘호테프 3세 때, 테베의 통치자였던 아몬신과 그 아내 무트, 아들 코스를 위해 건축했다.

룩소르 신전은 저녁 무렵이 아름답다.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나일강을 굽어보며 서 있는 룩소르 신전은 절로 경외심을 들게 한다. 신전 가운데에는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좌상과 입상이 서 있다. 30세에 파라오에 즉위한 그는 67년간 이집트를 지배하며 이집트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으로 만들었다. 람세스 석상에서 나오다 보면 신전 정면 왼쪽에 오벨리스크 하나가 서 있는데, 이것과 똑같은 오벨리스크가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다. 나폴레옹이 전리품으로 챙겨간 것이다.

왕들의 계곡 속에 거대한 전설이 피어나다

룩소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왕들의 계곡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온몸을 노출시킨 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산을 걸어 올라가는 길은 고역이다. 하지만 그 고생은 왕들의 계곡에 도착하는 순간 보상받는다.
멤논의 거상. 높이가 무려 17m에 이른다.
멤논의 거상. 높이가 무려 17m에 이른다.
이곳에 투트모세 1세부터 람세스 11세에 이르는 제18, 19, 20 왕조의 왕들이 묻혀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무덤만 60여기에 이른다. 왕들의 무덤은 꼭꼭 감춰놓았지만 숱한 도굴에 시달려야 했다.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고 발굴된 무덤이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굴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원형 그대로 발견된 데는 그가 어린 나이에 죽어 초라한 곳에 묻힌 불우한 왕이어서 도굴꾼들이 그의 존재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발굴된 그의 무덤 안에는 금박 장식으로 칠한 나무관, 순금으로 만든 동물 머리 등 수많은 보물이 있었다. 지금 이 유물들은 카이로의 국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왕들의 계곡이 알려지기 전, 계곡 아래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 주민들은 전부 도굴꾼이었다고 하니 왕들의 계곡에서 나온 유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룩소르를 나와 나일강 서편으로 건너가면 들판에 거대한 석상 두 개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멤논의 거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아멘호테프 3세가 세운 신전의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신전은 사라지고 석상만 남았다. 높이가 20m에 달하는 이 석상은 새벽이면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사실은 석상의 갈라진 틈에서 나오는 진동 소리라고 한다.
나일강을 여유롭게 오가는 돛단배 펠루카.
나일강을 여유롭게 오가는 돛단배 펠루카.
하트셉수트 장례사원도 들러봐야 한다.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인 하트셉수트의 신전이다. 200여개의 돌기둥과 다양한 부조로 장식된 벽면 등 거대한 바위산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석조건물은 이집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가운데 하나다.

룩소르 시내도 거닐어보자. 아직도 마차가 오가고, 시장 풍경이 정겹다. 고대 왕국의 위용이나 웅장한 신전과는 별개로 산 자들의 세상은 오래된 것에 익숙해진 듯 평화로운 일상으로 다가선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울려 사는 풍경

아스완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느긋하기만 하다. 아스완에 가기 전 에드푸에 닿는다.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큰 신전인 에드푸 신전은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신전으로 고고학이나 미술에 관심이 높은 이들에게는 놓치면 안 되는 곳이다. 특히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신과 이시스 여신, 그리고 파라오 등이 수천년 전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해 놀랍다. 카움움부 신전에서는 악어 머리를 한 세베크신과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신 등을 만날 수 있다.
룩소르 시장에서 전통옷을 입은 이집트 여인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룩소르 시장에서 전통옷을 입은 이집트 여인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룩소르에서 에드푸에 이르는 구간은 이집트 시골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한없이 평화롭다. 강변에 딸린 조그마한 밭에서는 갖가지 과일을 키우고 아낙들은 빨래로 바쁘다. 조그만 조각배들은 그물을 던지며 물고기를 낚는다.

아스완은 영국의 세계적인 추리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나일강 살인사건’의 무대기도 하다. 나일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아스완의 올드 캐터랙트 호텔은 창업한 지 100년이 넘는 오래된 호텔로도 유명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가 ‘나일강 살인사건’을 집필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호텔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고풍스러운 호텔에서 하룻밤 묵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듯.

아스완은 드라마틱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1971년 시작된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유적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가 나서서 전 세계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아부심벨, 갈라브샤, 필레 신전 등이 지금의 위치로 옮길 수 있었다. 오시리스 신화로 유명한 필레 신전은 10년에 걸친 복원 사업 끝에 1980년 원래 자리에서 500m 떨어진 아길리카섬으로 옮겨졌다.

아스완 시내로 들어서면 역과 바사르가 들어서 있다. 바사르에서는 이집트 전통빵인 ‘에이쉬’를 즉석에서 구워 판다. 향신료를 파는 가게도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카이로나 룩소르의 시장처럼 번잡하지 않아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다.

룩소르(이집트)=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메모
관광객을 태우고 룩소르의 저녁 거리를 달리는 마차.
관광객을 태우고 룩소르의 저녁 거리를 달리는 마차.
인천에서 이집트 카이로까지 대한항공 등이 운항한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국내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룩소르에서 나일강 크루즈를 이용해 아스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카이로에서는 메트로, 택시가 대중적이나 룩소르에서는 택시 외에도 마차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 마차를 타기 전에는 반드시 인원수, 팁을 포함해 얼마인지를 미리 흥정해야 한다. 이집트를 여행할 때는 반팔 옷과 함께 얇은 긴팔 옷을 가져가면 편리하다. 챙 넓은 모자와 얼굴을 두를 수 있는 스카프 등도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