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로 더 빛난 태극마크
프로축구 K리그에서 99골 68도움이란 기록을 남기면서 레전드로 꼽히는 신태용 감독이지만 현역시절 올림픽과의 인연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에서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대표팀도 3무로 탈락했다.
신 감독은 K리그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대표팀에도 발탁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신 감독은 황선홍, 홍명보, 최용수, 서정원 등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동시대 축구스타들과 비교해 '비운의 스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축구대표팀을 지휘하는 신 감독은 한국 축구사에 명지도자로 기록되게 됐다. 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온두라스에 0-1로 무릎을 꿇고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신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홍명보 감독에 이어 2회 연속올림픽 8강을 이끈 지도자가 됐다.
특히 '골짜기 세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앞선 세대에 비해 약체로 꼽혔던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올림픽 8강까지 올려놓은 것은 신 감독의 리더십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신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은 지난해 2월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직후였다.
올림픽 팀을 맡은 뒤 18개월간 신 감독은 '형님 리더십'으로 팀을 변화시켰다. 신 감독은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훈련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과 문제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해결책을 같이 고민했다.
신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피지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약체 피지를 맞아 대량득점에 대한 부담 탓에 심리적으로 흔들렸고,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인 끝에 전반을 1-0으로 마쳤다.
문창진(포항)은 페널티킥을 실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신 감독은 휴식시간 라커룸에서 화를 내는 대신 제대로 공격이 이뤄지지 않는 원인을 선수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실수를 질책하지 않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심리적으로 흔들렸던 선수들은 신 감독의 격려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후반 시작 휘슬 이후는 효과를 발휘했다. 후반 들어 선수들은 전반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날 경기는 기록적인 8-0 대승으로 끝났다.
신 감독이 선수들과의 소통만으로 이 같은 성과를 이룩한 것은 아니다. 신 감독은 현재 한국 축구계에서 손꼽히는 전략가다.
신 감독은 올림픽 예선 과정에선 4-2-3-1과 4-4-2, 4-3-3 등 공격적인 포백(4-back)을 기반으로 한 포메이션을 선호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수비적인 스리백(3-back)을 가동하면서 세계최다 기록인 8회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을 이뤄냈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도전은 막을 내렸지만 신 감독의 리더십은 많은 것을 이뤄냈다. 신 감독의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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