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21일 ‘유엔 세계평화의 날’에 로마클럽과 부다페스트클럽 등 글로벌 싱크탱크의 석학들이 경희대에 총집결한다. 경희대가 올해 35주년을 맞은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교내에서 개최하는 국제학술회의(PBF: Peace BAR Festival)가 무대다. ‘지구 문명의 미래: 실존혁명을 향하여’를 주제로 열리는 이 회의에서 경희대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대장정에서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지구의 미래’ 고민하는 경희대

유엔 세계평화의 날은 1981년 경희대 설립자이자 세계대학총장회의(IAUP) 의장을 지낸 고(故) 조영식 박사의 제안으로 유엔이 제정한 기념일이다. 이후 경희대는 1983년부터 매년 9월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하는 PBF를 주관했다. 세계적 싱크탱크와 한국 학계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다음달 21일부터 3일간 이어지는 올해 PBF에는 1972년 경제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래 연구기관 로마클럽과 세계적 지성의 집합체로 불리는 부다페스트클럽,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 등의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한다. 국내 행사에서 이들 인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경희대는 이번 PBF가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기회와 위기는 무엇인지 세계의 지성들과 함께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인류 문명의 미래, 좀 더 가까이로는 대학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이번 PBF의 목표다. 이를 위해 세계적 석학은 물론 종교인, 예술가, 시민운동가, 기업인, 정치인 등이 모여 활발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경희대가 세계 석학들의 ‘플랫폼’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경희대의 관심이 한국을 넘어 ‘지구’, 현재 이상의 ‘미래’를 향하고 있어서다. 경희대는 ‘학문과 평화의 지구적 존엄’을 미래 비전으로 삼고 있다. 과학기술 혁신으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지만 새로운 시대의 명암을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인간이 기계나 기술과 함께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인간을 닮은 기계에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게 이번 포럼 주최 측의 문제 의식이다. 경희대는 21세기 대학이 직면한 가장 큰 질문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압축된다고 설명한다.

경희대가 지난 4월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개최한 ‘세계지성에게 묻는다: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 강연에 초청받은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도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올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능을 넘는 지성, 실용을 넘는 윤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신의 자리에 오른 인간의 무책임한 선택이 인간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학생·교수들과의 대담 시리즈를 엮어 올해 펴낸 저서 내 안의 미래에서 “탁월성이라고 하면 대체로 경쟁력을 떠올리는데 그 탁월성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삶의 가치와 목표, 공적 기여를 위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조 총장은 이 대담집에서 “미래 대학은 경제 가치 외에 주력해야 할 분야가 많다. 우리는 빈곤과 질병, 소외와 인권, 자유와 존엄, 환경과 기후변화, 갈등과 폭력 등 다양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또 이 모든 가치의 근본인 정신적 풍요와 문화적 성숙을 이루는 데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은 미래 위한 ‘대학 혁신 대장정’ 나서

조 총장의 철학을 기치로 경희대는 고등교육 철학과 비전, 교육 방식에 일대 혁신을 불어넣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함께하는 대학혁신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 학습, 연구와 실천, 행정과 재정, 인프라 등에 이르기까지 대대적 전환을 추진 중이다. 2011년 교양교육 전문기관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해 한국 교양교육에 새로운 지표를 제시한 데 이은 두 번째 도전이다.

우선 바이오헬스, 미래과학, 인류문명, 문화예술, 사회체육 등 5개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융·복합 신학문을 창출하기 위한 ‘5대 연계협력 클러스터’를 2012년부터 추진 중이다. 5대 클러스터는 국내외 기업, 지방자치단체, 대학, 연구소 등과의 관·산·학·연 협력을 통해 경희대를 세계적 학술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작업이다.

국제캠퍼스 부지에 10만평 규모의 첨단 연구개발(R&D) 단지를 조성하고 서울캠퍼스 인근 홍릉 지역에 바이오헬스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단지가 들어서면 연계협력 클러스터의 성과가 파급력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문 단위가 새로 조직돼 학생들의 학습권과 신지식·신기술을 창출하는 연구 역량도 국제적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 대학원 수준의 학문 및 연구 기회를 학부생에게도 개방하는 프로그램 ‘문명전환 아카데미’도 기획하고 있다. 문명전환 아카데미는 문명사를 비롯해 미래학, 미학, 윤리학, 인지과학, 도시학 등의 교과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설계 능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현대 문명의 본질을 관통하는 흐름과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게 목표다. 경희대가 이전부터 세계적 석학을 초빙해 진행해온 GC(Global Collaborative)를 통해 관련 역량을 축적하고 있고 5대 연계협력 클러스터의 구조도 갖춰져 성과가 기대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학의 지구적 공헌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 ‘세계 대학 평가 지표(Global Eminence Index)’도 개발 중이다. 대학 서열화를 고착화하는 기존 대학 평가에서 벗어나 대학의 핵심 가치를 경쟁에서 협력으로, 국가에서 지구로, 지속 불가능성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