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청주시장(사진)은 지난해 4월 SK하이닉스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10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청주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내용이었다. SK하이닉스는 1988년 청주일반산업단지 제4단지에 건설한 반도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 회사가 새 공장 건설 대상지로 희망한 곳은 기존 공장과 가까운 청주테크노폴리스 부지였다. 중부고속도로 나들목(IC)과 0.5㎞ 떨어져 있는 데다 경부고속도로 IC와도 자동차로 5분 거리여서 교통이 편리했다. 대청댐 수자원과 서청주 및 봉명 변전소에서 공급하는 풍부한 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SK하이닉스 공장이 들어선 청주일반산업단지 전경. 청주시제공
SK하이닉스 공장이 들어선 청주일반산업단지 전경. 청주시제공
하지만 청주테크노폴리스 부지를 SK하이닉스에 제공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이미 12개의 중소기업과 분양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이곳에 새 공장을 지으려면 이들 업체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했지만 중도금까지 납부해 법적으로는 계약 해지가 불가능했다. 청주시는 SK하이닉스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12개 업체에 이전을 제의했으나 업체들은 거부했다. 자칫 10조원이 넘는 투자 계획이 물거품이 돼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청주시 공무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인 및 협력업체 등을 총동원해 업체 대표들을 수십 차례 찾아가 설득했다. 다른 부지로의 이전을 위해 도로 등 각종 인프라 제공과 빠른 인허가 처리도 약속했다. 이 시장과 공무원들이 8개월간 발로 뛴 끝에 지난해 12월 12개 업체로부터 이전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청주시의 노력에 SK하이닉스도 적극 화답했다. 청주시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월 청주테크노폴리스 부지에 2025년까지 15조5000억원을 들여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청주시가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핵심 정책으로 내건 시기는 이 시장이 취임한 2014년 7월이다. 청주시와 청원군이 합쳐져 ‘통합 청주시’가 탄생했을 때다. 행정고시 21회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30년간 경제 관료로 일한 이 시장은 취임 직후 청주시의 행정조직도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투자 유치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부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청주에 조성된 오창과학산업단지와 오송생명과학단지는 청주시가 아니라 충청북도가 유치했다”며 “투자 유치를 위한 청주시 공무원들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통합 청주시가 인구 84만명의 거대 기초자치단체로 출범했지만 투자 유치 등 행정 역량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게 이 시장의 지적이다. 그가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투자유치과’를 신설하고 일 잘하는 공무원들을 배치한 것이다. 이전까지 충청북도에 맡겨놓았던 투자 유치 업무에 청주시 공무원들이 앞장서 뛰기 시작한 계기다.

청주시가 지난 2년간 유치한 투자금액은 19조4759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15조5000억원) 외에 녹십자와 셀트리온 등 바이오·의약기업으로부터 1조7432억원을 유치했다. LG생활건강 등 화장품 업체도 586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시장은 “청주시에는 2, 3차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오창과 오송단지, 청주테크노폴리스 등 동서남북 사방에 바이오·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선다”며 “중부권을 넘어 국내 최대 기업도시로 떠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주=강경민/임호범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