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1) 베이징'] 넘보기 어려운 엉겅퀴 같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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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가 많은 꽃, 엉겅퀴의 고장이었던 모양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 말이다. 중국의 곳곳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머물고 쌓은 흔적이 뚜렷하다. 중국 수도 베이징이 역사에서 드러내는 첫 이름은 아무튼 가시가 많이 달려 쉽게 넘보기 어려운 꽃, 엉겅퀴와 함께 등장한다.
한자 이름은 계()다. 엉겅퀴를 지칭하는 글자다. 역사 무대 초입에서 베이징은 이 글자를 이름으로 삼아 등장했다. 중국 문명의 이른 아침이랄 수 있는 춘추시대 때다. 엉겅퀴라는 식생이 아무래도 이곳을 장식한 대표적 식물이었을지 모른다.
엉겅퀴의 꽃말은 그리 가볍지 않다. 가시가 많이 달려 범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인지, ‘엄격함’ ‘독립’ 등의 딱딱한 어감을 지닌다. 이 밖에도 베이징의 북면을 가로지르는 산맥, 연산(燕山)과 그를 토대로 삼아 존재한 연(燕)나라가 있었던 까닭에 연경(燕京)이라고 한 기록도 눈에 띈다.
아울러 유주(幽州), 원나라 때의 대도(大都), 경성(京城), 경사(京師) 등의 이름이 제법 줄을 잇는다. 그러나 베이징의 인문적 속성을 잘 말해주는 이름으로는 엉겅퀴가 우선 적격이다. 새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권력 중심인 황제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자금성 황도가 베이징 중심
명과 청의 황궁은 자금성(紫禁城)으로 적는다. 별자리의 가장 고귀한 존재인 자미성(紫微星)의 앞 글자와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禁止)하는 의미의 글자가 붙었다. 지상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살아 아무나 함부로 들어설 수 없는 곳이라는 새김이니, 원래 이름 엉겅퀴의 엄격함이 제법 잘 어울린다.
이곳에는 황도(皇道)가 지나간다. 중국 최후의 왕조가 마지막까지 버틴 곳이라 그 황도는 그대로 살아 있다. 황도는 황제의 길이다. 황제만이 머물며 지날 수 있는 길이다. 자금성을 남북으로 지나는 복판의 축선(軸線)이 곧 황도다. 북쪽 멀리의 연산, 더 멀리 곤륜산으로부터 뻗어내린 풍수상의 용맥(龍脈)이기도 하다.
자금성 복판의 축선을 중심으로 설정한 황궁 외곽의 주변선이 다시 범위를 넓혀 왕조 시절의 옛 베이징 성내를 형성했다. 그 구역의 주변은 지금의 ‘2환(環) 도로’를 형성했고, 이제는 3~6환의 외곽 도로가 그어지면서 베이징의 외곽이 크게 넓어졌다.
이 도시는 축선이 가장 핵심적인 장치다. 자금성의 복판을 남북으로 지나는 축선은 약 7.8㎞에 이른다. 그 길이를 실감하기 어려운 사람은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축선을 떠올리면 좋다. 경복궁 북쪽에서 숭례문까지를 떠올려 보라는 얘기다. 정확한 수치는 찾지 못했지만 2.5㎞ 남짓으로 추정한다.
중심에선 통제와 수렴이 원활히 진행
중국 집권 공산당은 이 축선을 얼마 전에 활용했다. 고대 문화유산의 적절한 이용이었을까. 아무튼 2008년에 아주 성대하게 열린 베이징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 등이 들어선 곳은 종래의 황도인 축선을 12㎞ 더 북쪽으로 연장해 만들었다.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중국 전통 문명의 계승자라는 점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는 의도일 수 있고, 떠오르는 중국의 강력한 힘이 예전 왕조시대처럼 천하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일 수 있다. 우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중국의 거센 ‘굴기’와 함께 지켜본 기억이 있다.
자금성 앞에 동서로 흐르는 거리도 있다. 이른바 창안제(長安街)다. 길이 7.3㎞의 동서 축선에 해당하는 장치다. 그 서쪽 끝 구역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가 사는 ‘중난하이’가 있다. 최고 지도부의 각종 행사와 출입, 이동을 위해 엄격하고 면밀하게 통제하는 도로다.
축선의 설정은 배열의 시작이자, 제가 서 있어야 할 ‘중심’을 형성해 통제와 수렴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는 전략의 기본에 해당한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그어진 남북의 축선에 고도의 통제와 엄격함을 숨기고 있는 동서의 축선이 겹치는 장면은 베이징의 거대한 인문 경관(景觀)이다. 우리는 어떨까. 중심을 잘 잡아가고 있을까. 서 있어야 할 곳과 나아가야 할 곳을 제대로 가리는 것일까. 베이징에 들를 때 나는 그 축선을 거니는 경우가 퍽 많다.
유광종 <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 >
한자 이름은 계()다. 엉겅퀴를 지칭하는 글자다. 역사 무대 초입에서 베이징은 이 글자를 이름으로 삼아 등장했다. 중국 문명의 이른 아침이랄 수 있는 춘추시대 때다. 엉겅퀴라는 식생이 아무래도 이곳을 장식한 대표적 식물이었을지 모른다.
엉겅퀴의 꽃말은 그리 가볍지 않다. 가시가 많이 달려 범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인지, ‘엄격함’ ‘독립’ 등의 딱딱한 어감을 지닌다. 이 밖에도 베이징의 북면을 가로지르는 산맥, 연산(燕山)과 그를 토대로 삼아 존재한 연(燕)나라가 있었던 까닭에 연경(燕京)이라고 한 기록도 눈에 띈다.
아울러 유주(幽州), 원나라 때의 대도(大都), 경성(京城), 경사(京師) 등의 이름이 제법 줄을 잇는다. 그러나 베이징의 인문적 속성을 잘 말해주는 이름으로는 엉겅퀴가 우선 적격이다. 새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권력 중심인 황제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자금성 황도가 베이징 중심
명과 청의 황궁은 자금성(紫禁城)으로 적는다. 별자리의 가장 고귀한 존재인 자미성(紫微星)의 앞 글자와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禁止)하는 의미의 글자가 붙었다. 지상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살아 아무나 함부로 들어설 수 없는 곳이라는 새김이니, 원래 이름 엉겅퀴의 엄격함이 제법 잘 어울린다.
이곳에는 황도(皇道)가 지나간다. 중국 최후의 왕조가 마지막까지 버틴 곳이라 그 황도는 그대로 살아 있다. 황도는 황제의 길이다. 황제만이 머물며 지날 수 있는 길이다. 자금성을 남북으로 지나는 복판의 축선(軸線)이 곧 황도다. 북쪽 멀리의 연산, 더 멀리 곤륜산으로부터 뻗어내린 풍수상의 용맥(龍脈)이기도 하다.
자금성 복판의 축선을 중심으로 설정한 황궁 외곽의 주변선이 다시 범위를 넓혀 왕조 시절의 옛 베이징 성내를 형성했다. 그 구역의 주변은 지금의 ‘2환(環) 도로’를 형성했고, 이제는 3~6환의 외곽 도로가 그어지면서 베이징의 외곽이 크게 넓어졌다.
이 도시는 축선이 가장 핵심적인 장치다. 자금성의 복판을 남북으로 지나는 축선은 약 7.8㎞에 이른다. 그 길이를 실감하기 어려운 사람은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축선을 떠올리면 좋다. 경복궁 북쪽에서 숭례문까지를 떠올려 보라는 얘기다. 정확한 수치는 찾지 못했지만 2.5㎞ 남짓으로 추정한다.
중심에선 통제와 수렴이 원활히 진행
중국 집권 공산당은 이 축선을 얼마 전에 활용했다. 고대 문화유산의 적절한 이용이었을까. 아무튼 2008년에 아주 성대하게 열린 베이징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 등이 들어선 곳은 종래의 황도인 축선을 12㎞ 더 북쪽으로 연장해 만들었다.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중국 전통 문명의 계승자라는 점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는 의도일 수 있고, 떠오르는 중국의 강력한 힘이 예전 왕조시대처럼 천하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일 수 있다. 우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중국의 거센 ‘굴기’와 함께 지켜본 기억이 있다.
자금성 앞에 동서로 흐르는 거리도 있다. 이른바 창안제(長安街)다. 길이 7.3㎞의 동서 축선에 해당하는 장치다. 그 서쪽 끝 구역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가 사는 ‘중난하이’가 있다. 최고 지도부의 각종 행사와 출입, 이동을 위해 엄격하고 면밀하게 통제하는 도로다.
축선의 설정은 배열의 시작이자, 제가 서 있어야 할 ‘중심’을 형성해 통제와 수렴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는 전략의 기본에 해당한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그어진 남북의 축선에 고도의 통제와 엄격함을 숨기고 있는 동서의 축선이 겹치는 장면은 베이징의 거대한 인문 경관(景觀)이다. 우리는 어떨까. 중심을 잘 잡아가고 있을까. 서 있어야 할 곳과 나아가야 할 곳을 제대로 가리는 것일까. 베이징에 들를 때 나는 그 축선을 거니는 경우가 퍽 많다.
유광종 <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