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휴대폰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을 공개하는 보조금 분리공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9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휴대폰 판매 대리점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정치권에서 휴대폰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을 공개하는 보조금 분리공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9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휴대폰 판매 대리점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야당 의원들이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가 구매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따로 공개하라는 내용의 분리공시제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2014년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 제정 당시 불거진 분리공시제 논란이 2년 만에 재점화된 것이다.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는 영업비밀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분리공시로 시장 투명화해야”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 10명은 지난 18일 통신사가 휴대폰 보조금 지급 내용을 공시할 때 통신사가 직접 부담하는 금액과 제조사가 통신사에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을 분리해 공시하는 내용을 담은 단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원회 의장 등 13명도 지난달 말 비슷한 내용의 단통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휴대폰 구매자가 받는 보조금은 통신사가 직접 주는 지원금과 제조사가 유통망을 통해 간접 지급하는 장려금 등 두 가지 재원으로 구성된다. 분리공시제는 통신사가 휴대폰 구매자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공시할 때 통신사 보조금과 제조사 장려금을 구분하도록 한다. 통신사 지원금은 2014년 10월부터 시행된 단통법에 의해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은 기업의 영업비밀로 간주돼 따로 공개되고 있지 않다. 변 의원은 “현행 단통법은 통신사와 제조사 간 보조금 출처가 불분명해 투명한 유통질서 확립이라는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조사 몫 휴대폰 보조금 공개하라"…'분리공시' 밀어붙이는 거야(巨野)
◆“해외서도 똑같이 요구할텐데 … ”

2014년 단통법 시행을 앞두고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분리 요금제’ 정착을 위해 분리공시제 도입을 추진했다. 구매자가 보조금을 받아 휴대폰을 싸게 구입할지, 아니면 보조금만큼 혜택을 반영한 할인 요금제를 고를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통신사 몫의 지원금 규모가 따로 구분돼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통신사들도 “분리공시제로 휴대폰 실제 판매가격이 노출되면 제조사가 출고가를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찬성했다.

하지만 통신당국의 이런 분리공시제 강행 시도는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과잉 규제’라는 판정을 받았다. 규제개혁위는 “휴대폰 제조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분리공시 조항을 단통법 시행령(고시)에서 제외했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분리공시제는 4·13 총선에서 야당이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재점화됐다. 정부 관계자는 “미래부와 방통위, 통신사 등 대부분의 통신시장 플레이어(주체)들이 분리공시제에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다수당이 밀어붙인다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등 제조사는 분리공시제 도입이 다시 추진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분리공시로 영업비밀인 국내 판매 장려금 규모가 유출되면 해외 통신사도 똑같은 대우를 요구할 수 있어서다. 휴대폰 제조사 관계자는 “그러지 않아도 단통법으로 국내 휴대폰 판매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분리공시제마저 도입된다면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런 업계 의견을 수렴해 변 의원 등이 발의한 분리공시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미래부 등에 전달했다.

분리공시는 구매하는 소비자 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통법으로 보조금 규모가 공개돼 상한선이 정해졌듯 장려금이 공개되면 파격적인 가격 할인이 불가능해 예전보다 비싸게 휴대폰을 사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분리공시제

통신사가 휴대폰 구매자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공시할 때 보조금에 포함된 휴대폰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과 통신사 지원금을 구분해서 공시하는 제도. 예컨대 갤럭시노트7 구매자에게 40만원의 보조금을 줬다면 ‘제조사 20만원, 통신사 20만원’이라고 명시하는 것이다.

오형주/이정호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