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요동치는 국제정세…'내 편' 없던 러시아, 각국서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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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에서 협력 제의 쏟아지는 '귀한 몸'으로
경제제재 주도한 영국, 대화 제안…EU 탈퇴 대비한 관계 개선 포석
이란·터키는 공군기지까지 내줘
남중국해·사드 등 악재 겹친 중국 "G20서 제1 손님으로 대우할 것"
외신 "러시아 존재감 다시 커져"
경제제재 주도한 영국, 대화 제안…EU 탈퇴 대비한 관계 개선 포석
이란·터키는 공군기지까지 내줘
남중국해·사드 등 악재 겹친 중국 "G20서 제1 손님으로 대우할 것"
외신 "러시아 존재감 다시 커져"
‘고립무원(孤立無援).’
지난해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외톨이였다. 문자 그대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2013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병합하면서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가 시작됐다.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독재자로 비판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자 국제사회의 눈총이 쏟아졌다. 급기야 터키 공군에 전폭기를 격추당하는 모욕까지 당했다.
상황은 올해 들어 급반전했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이 한껏 드러났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 터키의 쿠데타 시도, 이슬람 국가(IS) 테러, 한국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등 글로벌 외교 축이 요동칠 때마다 관련국은 러시아 눈치를 봤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는 “상처를 입어 세계를 움직일 만큼의 힘은 없지만, 우습게 보면 큰코다칠 만큼 여전히 강력한 불곰의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터키 쿠데타 계기로 앙숙이 친구로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데일리뉴스는 지난 18일 “터키가 인지를릭 공군기지를 러시아 군대에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인지를릭 기지는 터키와 서방 간 군사 협력의 상징이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가 주둔하며 미국은 핵무기까지 배치했다. 터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곳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뜨고 내릴 가능성이 생겼으니 서방국들로서는 난감한 노릇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24일 이후 터키와 앙숙이 됐다. 터키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러시아 전폭기 SU-24를 격추하면서다. 터키는 EU 가입 등을 위해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고 역사적으로도 유라시아 대륙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알력이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두 나라 관계는 지난달 15일 터키에서 쿠데타 시도가 발생하면서 급속히 녹아내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정권 강화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적 펫훌라흐 귈렌을 미국이 감싸고 돈다고 판단하면서 러시아 쪽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9일 ‘친구’ 러시아와의 우정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가만히 앉아있던 러시아에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셈이다.
러시아 편에 선 反美국가 이란
러시아는 시리아에 군대를 보냈다가 궁지에 몰렸다. 시리아는 사정이 복잡한 나라다. 대통령 등 지도층은 이슬람 시아파로 분류되지만 국민 대다수는 수니파다. 상당수 국민은 종파도 다르고 독재정치까지 펴는 알아사드 정권에 반기를 들었고 내전이 발생했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IS까지 창궐했다.
IS 진압을 이유로 파병한 러시아는 친(親)러시아 성향의 알아사드 대통령을 도왔다. IS를 물리치겠다면서 반군의 핵심 근거지를 타격했다. 러시아는 닷새 전 반군 점령지 알레포에 이뤄진 공습에도 참여했다. 세 살짜리 남자아이가 구급차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 공개된 지역이다.
미국 등 서방세력은 시리아 내 IS 격퇴에는 러시아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독재자 알아사드의 축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IS와 반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가운데도 반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갑갑해진 러시아를 이란이 돕겠다고 나섰다. 이달 들어 이란은 러시아에 하마단 공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란은 추가로 기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외국에 군사시설을 내준 것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과 같은 종파로 사이가 가깝다. 대표적 반미국가로 핵무기 개발 때문에 2006년부터 경제제재를 받았다. 러시아 편에 서서 외교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위기의 러시아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에 (이란과 함께) 터키까지 가세해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3각 협력 가능성이 생겼다”고 전했다.
英·中도 러시아에 ‘러브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0일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제안했다. 메이 총리는 “특정 이슈에 의견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현안들에 관해 솔직하게 의사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병합한 이후 EU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주도하던 영국의 태도가 부드럽게 변한 이유는 브렉시트가 결정적이다. EU에서 빠져나오기로 하면서 개별 국가로 러시아와 각을 세우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 등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반목이 심해지고 주한미군이 사드 배치 결정까지 내리면서 러시아와 더욱 가까워졌다. 홍콩의 유력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이 다음달 4일부터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을 ‘제1손님’으로 대우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2014년 호주가 개최한 G20 정상회의에서 크림반도 문제로 서방의 비난이 집중되자 폐막 성명이 나오기도 전에 행사장을 떠났다.
러시아는 이달 초 흑해함대용 최신예 호위함 세 척을 인도에 판매키로 하는 등 인도와도 협력관계를 다지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러시아와 특별한 관계에 돌입했다”며 “러시아 기술로 인도에 지어진 원자력발전소는 우호관계 강화의 증표”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다음달 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다.
외신들은 “미국의 러시아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국제정세에 파급력이 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러시아의 위상이 다시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지난해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외톨이였다. 문자 그대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2013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병합하면서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가 시작됐다.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독재자로 비판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자 국제사회의 눈총이 쏟아졌다. 급기야 터키 공군에 전폭기를 격추당하는 모욕까지 당했다.
상황은 올해 들어 급반전했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이 한껏 드러났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 터키의 쿠데타 시도, 이슬람 국가(IS) 테러, 한국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등 글로벌 외교 축이 요동칠 때마다 관련국은 러시아 눈치를 봤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는 “상처를 입어 세계를 움직일 만큼의 힘은 없지만, 우습게 보면 큰코다칠 만큼 여전히 강력한 불곰의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터키 쿠데타 계기로 앙숙이 친구로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데일리뉴스는 지난 18일 “터키가 인지를릭 공군기지를 러시아 군대에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인지를릭 기지는 터키와 서방 간 군사 협력의 상징이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가 주둔하며 미국은 핵무기까지 배치했다. 터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곳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뜨고 내릴 가능성이 생겼으니 서방국들로서는 난감한 노릇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24일 이후 터키와 앙숙이 됐다. 터키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러시아 전폭기 SU-24를 격추하면서다. 터키는 EU 가입 등을 위해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고 역사적으로도 유라시아 대륙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알력이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두 나라 관계는 지난달 15일 터키에서 쿠데타 시도가 발생하면서 급속히 녹아내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정권 강화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적 펫훌라흐 귈렌을 미국이 감싸고 돈다고 판단하면서 러시아 쪽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9일 ‘친구’ 러시아와의 우정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가만히 앉아있던 러시아에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셈이다.
러시아 편에 선 反美국가 이란
러시아는 시리아에 군대를 보냈다가 궁지에 몰렸다. 시리아는 사정이 복잡한 나라다. 대통령 등 지도층은 이슬람 시아파로 분류되지만 국민 대다수는 수니파다. 상당수 국민은 종파도 다르고 독재정치까지 펴는 알아사드 정권에 반기를 들었고 내전이 발생했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IS까지 창궐했다.
IS 진압을 이유로 파병한 러시아는 친(親)러시아 성향의 알아사드 대통령을 도왔다. IS를 물리치겠다면서 반군의 핵심 근거지를 타격했다. 러시아는 닷새 전 반군 점령지 알레포에 이뤄진 공습에도 참여했다. 세 살짜리 남자아이가 구급차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 공개된 지역이다.
미국 등 서방세력은 시리아 내 IS 격퇴에는 러시아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독재자 알아사드의 축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IS와 반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가운데도 반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갑갑해진 러시아를 이란이 돕겠다고 나섰다. 이달 들어 이란은 러시아에 하마단 공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란은 추가로 기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외국에 군사시설을 내준 것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과 같은 종파로 사이가 가깝다. 대표적 반미국가로 핵무기 개발 때문에 2006년부터 경제제재를 받았다. 러시아 편에 서서 외교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위기의 러시아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에 (이란과 함께) 터키까지 가세해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3각 협력 가능성이 생겼다”고 전했다.
英·中도 러시아에 ‘러브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0일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제안했다. 메이 총리는 “특정 이슈에 의견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현안들에 관해 솔직하게 의사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병합한 이후 EU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주도하던 영국의 태도가 부드럽게 변한 이유는 브렉시트가 결정적이다. EU에서 빠져나오기로 하면서 개별 국가로 러시아와 각을 세우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 등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반목이 심해지고 주한미군이 사드 배치 결정까지 내리면서 러시아와 더욱 가까워졌다. 홍콩의 유력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이 다음달 4일부터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을 ‘제1손님’으로 대우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2014년 호주가 개최한 G20 정상회의에서 크림반도 문제로 서방의 비난이 집중되자 폐막 성명이 나오기도 전에 행사장을 떠났다.
러시아는 이달 초 흑해함대용 최신예 호위함 세 척을 인도에 판매키로 하는 등 인도와도 협력관계를 다지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러시아와 특별한 관계에 돌입했다”며 “러시아 기술로 인도에 지어진 원자력발전소는 우호관계 강화의 증표”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다음달 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다.
외신들은 “미국의 러시아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국제정세에 파급력이 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러시아의 위상이 다시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