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결산 (1)] '총·균·쇠'? 올림픽 메달 키워드는 '총·칼·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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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륙에서 열린 첫 올림픽인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22일(한국시간) 막을 내렸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따내 종합순위 8위를 차지했다. 목표였던 ‘10-10(금메달 10개·종합순위 10위 진입)’ 달성엔 금메달이 딱 하나 모자랐다. ‘10-10’ 실패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12년 만이다.
총 메달 개수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의 19개 이후 가장 적은 21개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선수단 규모 역시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최소 규모다. 한국은 이번 대회 24개 종목에 204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소수정예였다.
이번 올림픽에선 기념비적인 메달이 유독 많이 나왔다. 특히 사격, 펜싱, 양궁, 이른바 총·칼·활 종목에선 사상 최초 기록이 쏟아졌다. 한국 올림픽 역사에 한 장을 장식한 리우올림픽 성과를 되짚어 봤다.
○‘이긴 종오’ 진종오와 김종현의 총 ‘기록 종합 선물세트’. 진종오(KT)의 남자 50m 권총 금메달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진종오는 이 금메달로 세계 사격 역사상 첫 올림픽 3연패에 성공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3연패 달성이기도 하다.
끝이 아니다. 진종오의 올림픽 통산 6번째 메달(금메달 4개, 은메달 2개)이다. 이는 양궁의 김수녕과 함께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 또한 김수녕, 전이경(쇼트트랙)이 보유한 최다 금메달 기록(4개)과도 타이다. 하지만 곧 진종오가 단독 선두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진종오는 시상식 직후 “후배들에게 미안하지만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는 고마운 소감을 밝혔다. 김종현(창원시청)도 기록을 거들었다. 김종현은 남자 50m 소총 복사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50m 소총 3자세에서도 은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소총 2회 연속 메달은 한국 사격 사상 처음이었다. 김종현의 세계 랭킹은 소총 복사 42위, 3자세 25위에 불과하다.
○서자에서 효자가 된 칼 한국 펜싱 첫 올림픽 메달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나왔다. 남자 플뢰레 개인전의 김영호가 주인공이다. 올림픽 펜싱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인 우승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한국은 사브르에서도 정상을 맛봤다. 미답으로 남았던 에페는 리우에서 정복됐다. 약관의 검객 박상영이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에페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난과 부상을 이겨낸 승리였다. 벼랑 끝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5000만 국민이 만 스무 살의 박상영(화성시청)에게 배웠다. 유쾌한 검객 김정환(국민체육진흥공단)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에 이은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이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세리머니였다. 득점을 할 때마다 과장된 몸짓과 함께 괴성을 질렀다. 특히 동메달 결정전이 압권이었다. 상대의 득점에도 엄지를 치켜세우는가 하면 옆 피스톨까지 뛰어갔다 오기도 했다. “한 경기에서 금메달을 10개 정도 딴 사람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정환은 이런 자신의 세리머니에 대해 “연습할 땐 후배들도 민망해 한다”면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환은 정작 동메달을 확정한 직후엔 별다른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신사처럼 점잖게 돌변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는 활 ‘한국 최강이 세계 최강’. 남자들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대회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놓쳤던 남자 단체전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 상대는 미국이었다. 4년 전 준결승에서 졌던 빚을 제대로 갚아줬다. 이변을 허락하지 않는 여자 단체전은 올림픽 8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엔 28년째 한국 여자들이 서 있었다. 여자 개인전에선 마음이 복잡해지는 승부가 나왔다. 세계 랭킹 1위 최미선(광주여대)이 탈락한 가운데 장혜진(LH)과 기보배(광주시청)가 4강에서 맞붙은 것이다. 누가 이기든 기뻤지만, 반대로 누가 져도 슬픈 대진이었다. 장혜진이 기보배를 누르고 결승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간발의 차이로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설움을 날렸다. 기보배 역시 동메달을 따내며 ‘신궁’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효자 중의 효자인 양궁은 언제나 이렇게 강했다. 하지만 전종목 석권에 있어선 맞추지 못한 퍼즐이 하나 있었다. 남자 개인전이다. 런던올림픽 금메달이 사상 최초였을 정도로 약세를 보인 종목이다. 역시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세계 랭킹 1위 김우진(청주시청)이 32강에서 낙마했고 이승윤(코오롱)도 8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남은 구본찬(현대제철)은 두 번의 슛오프 고비를 넘은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상 처음으로 전종목 석권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리우 삼보드로모 양궁장에서 네 번째 애국가가 흘렀다. 구본찬은 말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실망시키지 않은 ‘최후의 보루’
이번 대회에서 출전권 제한이 풀린 태권도는 역대 최다인 5체급에 선수를 내보냈다. 목표는 금메달 2개. 현실적인 기대치였다. 한국이 더 이상 세계 최강이 아니라는 것은 4년 전 뼈저리게 느꼈다.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한국에 태권도 금메달 후보가 없다고 평가했다. AP통신은 ‘한국이 노 메달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여자 49kg급 김소희(한국가스공사)가 천신만고 끝에 금메달을 신고했다. 8강부터 매 경기 1점차 초접전이었다. 준결승은 연장전에서야 승부가 갈렸다. 결승에서도 비디오 판독을 거치고 나서야 금메달이 확정됐다. 여자 67kg급 오혜리(춘천시청)는 ‘서른 즈음에’ 금맛을 봤다. 28세 4개월인 그녀는 올림픽 태권도 역대 최고령 여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남자 58kg급 김태훈(동아대), 68kg급 이대훈, 80kg 이상급 차동민(이상 한국가스공사)은 줄줄이 일격을 당했다. 8강에서 패한 이대훈을 제외하고 김태훈과 차동민(16강 부전승)은 모두 첫 경기에서 패했다. 충격의 탈락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을 꺾은 선수들은 모두 결승에 올랐다. 그 가운데 2명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강한 상대를 먼저 만난 것뿐이었다. 패자부활전 출전권을 얻은 ‘3형제’는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체급 순서대로 동메달을 따냈다. 차동민이 자신의 은퇴 무대에서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지며 한국 태권도는 출전 선수 전원이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과정에서 이대훈의 스포츠맨십이 조명되기도 했다. 이대훈은 8강 상대였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에게 패한 직후 상대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존중해 주는 모습으로 박수 받았다. 얼마든 더 져도 괜찮을 기품 있는 패배였다.
○116년, 박인비를 기다린 햇수 ‘그래도 박인비’, ‘그런데 과연 될까’. 박인비(KB금융그룹)의 올림픽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출전이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빛났지만 부상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박인비의 재활 기간 내내 올림픽 출전권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박인비는 7월 중순 올림픽 출전을 천명했다. 부상이 상당히 호전됐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올림픽 직전에 열린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공동 76위로 컷 탈락했다. 후배에게 출전권을 양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박인비의 대답은 “문제점을 찾았다”였다.
그렇게 올림픽이 시작됐다. 그리고 박인비가 달라졌다. 아니, 돌아왔다. 원래의 모습대로. 연습라운드 홀인원으로 감을 잡은 박인비는 2라운드부터 단독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3라운드에서 리디아 고(뉴질랜드)의 추격이 거셌지만 4라운드 시작과 함께 3연속 버디로 기세를 꺾었다. 최종홀 금메달 퍼트에선 좀처럼 하지 않던 세리머니까지 하며 ‘커리어 골든 그랜드 슬램’을 자축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던 ‘여제’는 자신의 화려한 이력에 기어이 한 줄을 더 추가했다.
○‘금메달을 따야만 효자인가요’
전통적인 효자 종목 유도는 이번 대회에서 대역죄인으로 몰리고 말았다. 금메달을 못 딴 죄였다. 뿌리 깊은 파벌과 전략의 실패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간의 성과를 다룰 땐 교묘히 덮어왔던 문제들이었다. ‘역시 용인대’는 ‘용인대가 다 해먹는 바람에’로 바뀌었다. 유도계 전체가 흠씬 두들겨 맞는 동안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메달 소식을 전한 선수들이 있었다. 여자 48kg급 정보경(안산시청)의 은메달은 한국 선수단의 리우올림픽 첫 메달이었다. 여자 유도가 20년 만에 밟은 올림픽 결승 무대이기도 했다. 정보경은 아쉬운 패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지금까지 운동한 것을 다 보여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남자 66kg급 안바울(남양주시청)과 90kg급 곽동한(하이원)도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에 실패한 게 아니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광복절의 탄식 남자 그레코로만형 75kg급에 출전한 김현우(삼성생명)는 16강 첫 경기부터 ‘난적’ 로만 블라소프(러시아)를 만났다. 그리고 판정 논란을 겪으며 인생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패배를 겪었다.
블라소프의 결승 진출로 패자부활전 기회를 얻은 김현우는 모든 한을 매트에 쏟았다. 동메달 결정전을 승리로 끝낸 이후 태극기 위에 엎드려 울었다.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란 말에 위로를 받았다는 김현우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4년 전과는 달라진 메달 색에 대해 “마음의 문제다. 내가 자부심을 가지면 될 일이다”라고 말했다.
○바벨의 무게, 인생의 무게 역시 엄마는 강했다. 윤진희(경북개발공사)는 역도 여자 53kg급에서 동메달을 들어올렸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다 8년 만에 돌아온 올림픽이었다.
그녀의 복귀는 같은 역도선수인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 원정식(고양시청)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회 도중 부상을 당해 재활을 도왔다. 현역 선수 같은 생활을 보내던 중 원정식이 제안했다. “여보, 다시 함께 해 보자.”
○가장 짜릿한 복수 정경은(KGC인삼공사)과 신승찬(삼성전기)의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은 벼랑 끝 일전이었다. 두 선수마저 메달에 실패할 경우 한국 배드민턴 사상 첫 올림픽 ‘노 메달’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는 세계 랭킹 2위 탕위안팅-위양(중국)조.
정경은에겐 이겨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위양에게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정경은은 4년 전 런던에서 중국의 ‘져주기 파문’에 휩쓸려 실격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당시 왕샤올리와 짝을 이룬 위양이 다음 라운드에서 자국 선수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정경은-김하나(삼성전기)조에게 고의 패배를 당한 것이다. 정경은의 첫 올림픽은 그렇게 억울하게 마감됐다. 국가대표 자격정지마저 당했다.
복수는 통쾌하게 성공했다. 위기의 배드민턴도 구했다. 미래를 사는 기자들을 비웃기도 했다. ‘단체 구기 종목, 44년 만에 노 메달 확정’, ‘구기 종목의 몰락’이라는 기사가 이미 쏟아져 나온 뒤였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따내 종합순위 8위를 차지했다. 목표였던 ‘10-10(금메달 10개·종합순위 10위 진입)’ 달성엔 금메달이 딱 하나 모자랐다. ‘10-10’ 실패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12년 만이다.
총 메달 개수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의 19개 이후 가장 적은 21개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선수단 규모 역시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최소 규모다. 한국은 이번 대회 24개 종목에 204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소수정예였다.
이번 올림픽에선 기념비적인 메달이 유독 많이 나왔다. 특히 사격, 펜싱, 양궁, 이른바 총·칼·활 종목에선 사상 최초 기록이 쏟아졌다. 한국 올림픽 역사에 한 장을 장식한 리우올림픽 성과를 되짚어 봤다.
○‘이긴 종오’ 진종오와 김종현의 총 ‘기록 종합 선물세트’. 진종오(KT)의 남자 50m 권총 금메달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진종오는 이 금메달로 세계 사격 역사상 첫 올림픽 3연패에 성공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3연패 달성이기도 하다.
끝이 아니다. 진종오의 올림픽 통산 6번째 메달(금메달 4개, 은메달 2개)이다. 이는 양궁의 김수녕과 함께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 또한 김수녕, 전이경(쇼트트랙)이 보유한 최다 금메달 기록(4개)과도 타이다. 하지만 곧 진종오가 단독 선두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진종오는 시상식 직후 “후배들에게 미안하지만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는 고마운 소감을 밝혔다. 김종현(창원시청)도 기록을 거들었다. 김종현은 남자 50m 소총 복사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50m 소총 3자세에서도 은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소총 2회 연속 메달은 한국 사격 사상 처음이었다. 김종현의 세계 랭킹은 소총 복사 42위, 3자세 25위에 불과하다.
○서자에서 효자가 된 칼 한국 펜싱 첫 올림픽 메달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나왔다. 남자 플뢰레 개인전의 김영호가 주인공이다. 올림픽 펜싱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인 우승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한국은 사브르에서도 정상을 맛봤다. 미답으로 남았던 에페는 리우에서 정복됐다. 약관의 검객 박상영이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에페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난과 부상을 이겨낸 승리였다. 벼랑 끝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5000만 국민이 만 스무 살의 박상영(화성시청)에게 배웠다. 유쾌한 검객 김정환(국민체육진흥공단)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에 이은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이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세리머니였다. 득점을 할 때마다 과장된 몸짓과 함께 괴성을 질렀다. 특히 동메달 결정전이 압권이었다. 상대의 득점에도 엄지를 치켜세우는가 하면 옆 피스톨까지 뛰어갔다 오기도 했다. “한 경기에서 금메달을 10개 정도 딴 사람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정환은 이런 자신의 세리머니에 대해 “연습할 땐 후배들도 민망해 한다”면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환은 정작 동메달을 확정한 직후엔 별다른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신사처럼 점잖게 돌변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는 활 ‘한국 최강이 세계 최강’. 남자들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대회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놓쳤던 남자 단체전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 상대는 미국이었다. 4년 전 준결승에서 졌던 빚을 제대로 갚아줬다. 이변을 허락하지 않는 여자 단체전은 올림픽 8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엔 28년째 한국 여자들이 서 있었다. 여자 개인전에선 마음이 복잡해지는 승부가 나왔다. 세계 랭킹 1위 최미선(광주여대)이 탈락한 가운데 장혜진(LH)과 기보배(광주시청)가 4강에서 맞붙은 것이다. 누가 이기든 기뻤지만, 반대로 누가 져도 슬픈 대진이었다. 장혜진이 기보배를 누르고 결승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간발의 차이로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설움을 날렸다. 기보배 역시 동메달을 따내며 ‘신궁’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효자 중의 효자인 양궁은 언제나 이렇게 강했다. 하지만 전종목 석권에 있어선 맞추지 못한 퍼즐이 하나 있었다. 남자 개인전이다. 런던올림픽 금메달이 사상 최초였을 정도로 약세를 보인 종목이다. 역시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세계 랭킹 1위 김우진(청주시청)이 32강에서 낙마했고 이승윤(코오롱)도 8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남은 구본찬(현대제철)은 두 번의 슛오프 고비를 넘은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상 처음으로 전종목 석권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리우 삼보드로모 양궁장에서 네 번째 애국가가 흘렀다. 구본찬은 말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실망시키지 않은 ‘최후의 보루’
이번 대회에서 출전권 제한이 풀린 태권도는 역대 최다인 5체급에 선수를 내보냈다. 목표는 금메달 2개. 현실적인 기대치였다. 한국이 더 이상 세계 최강이 아니라는 것은 4년 전 뼈저리게 느꼈다.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한국에 태권도 금메달 후보가 없다고 평가했다. AP통신은 ‘한국이 노 메달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여자 49kg급 김소희(한국가스공사)가 천신만고 끝에 금메달을 신고했다. 8강부터 매 경기 1점차 초접전이었다. 준결승은 연장전에서야 승부가 갈렸다. 결승에서도 비디오 판독을 거치고 나서야 금메달이 확정됐다. 여자 67kg급 오혜리(춘천시청)는 ‘서른 즈음에’ 금맛을 봤다. 28세 4개월인 그녀는 올림픽 태권도 역대 최고령 여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남자 58kg급 김태훈(동아대), 68kg급 이대훈, 80kg 이상급 차동민(이상 한국가스공사)은 줄줄이 일격을 당했다. 8강에서 패한 이대훈을 제외하고 김태훈과 차동민(16강 부전승)은 모두 첫 경기에서 패했다. 충격의 탈락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을 꺾은 선수들은 모두 결승에 올랐다. 그 가운데 2명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강한 상대를 먼저 만난 것뿐이었다. 패자부활전 출전권을 얻은 ‘3형제’는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체급 순서대로 동메달을 따냈다. 차동민이 자신의 은퇴 무대에서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지며 한국 태권도는 출전 선수 전원이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과정에서 이대훈의 스포츠맨십이 조명되기도 했다. 이대훈은 8강 상대였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에게 패한 직후 상대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존중해 주는 모습으로 박수 받았다. 얼마든 더 져도 괜찮을 기품 있는 패배였다.
○116년, 박인비를 기다린 햇수 ‘그래도 박인비’, ‘그런데 과연 될까’. 박인비(KB금융그룹)의 올림픽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출전이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빛났지만 부상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박인비의 재활 기간 내내 올림픽 출전권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박인비는 7월 중순 올림픽 출전을 천명했다. 부상이 상당히 호전됐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올림픽 직전에 열린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공동 76위로 컷 탈락했다. 후배에게 출전권을 양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박인비의 대답은 “문제점을 찾았다”였다.
그렇게 올림픽이 시작됐다. 그리고 박인비가 달라졌다. 아니, 돌아왔다. 원래의 모습대로. 연습라운드 홀인원으로 감을 잡은 박인비는 2라운드부터 단독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3라운드에서 리디아 고(뉴질랜드)의 추격이 거셌지만 4라운드 시작과 함께 3연속 버디로 기세를 꺾었다. 최종홀 금메달 퍼트에선 좀처럼 하지 않던 세리머니까지 하며 ‘커리어 골든 그랜드 슬램’을 자축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던 ‘여제’는 자신의 화려한 이력에 기어이 한 줄을 더 추가했다.
○‘금메달을 따야만 효자인가요’
전통적인 효자 종목 유도는 이번 대회에서 대역죄인으로 몰리고 말았다. 금메달을 못 딴 죄였다. 뿌리 깊은 파벌과 전략의 실패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간의 성과를 다룰 땐 교묘히 덮어왔던 문제들이었다. ‘역시 용인대’는 ‘용인대가 다 해먹는 바람에’로 바뀌었다. 유도계 전체가 흠씬 두들겨 맞는 동안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메달 소식을 전한 선수들이 있었다. 여자 48kg급 정보경(안산시청)의 은메달은 한국 선수단의 리우올림픽 첫 메달이었다. 여자 유도가 20년 만에 밟은 올림픽 결승 무대이기도 했다. 정보경은 아쉬운 패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지금까지 운동한 것을 다 보여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남자 66kg급 안바울(남양주시청)과 90kg급 곽동한(하이원)도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에 실패한 게 아니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광복절의 탄식 남자 그레코로만형 75kg급에 출전한 김현우(삼성생명)는 16강 첫 경기부터 ‘난적’ 로만 블라소프(러시아)를 만났다. 그리고 판정 논란을 겪으며 인생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패배를 겪었다.
블라소프의 결승 진출로 패자부활전 기회를 얻은 김현우는 모든 한을 매트에 쏟았다. 동메달 결정전을 승리로 끝낸 이후 태극기 위에 엎드려 울었다.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란 말에 위로를 받았다는 김현우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4년 전과는 달라진 메달 색에 대해 “마음의 문제다. 내가 자부심을 가지면 될 일이다”라고 말했다.
○바벨의 무게, 인생의 무게 역시 엄마는 강했다. 윤진희(경북개발공사)는 역도 여자 53kg급에서 동메달을 들어올렸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다 8년 만에 돌아온 올림픽이었다.
그녀의 복귀는 같은 역도선수인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 원정식(고양시청)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회 도중 부상을 당해 재활을 도왔다. 현역 선수 같은 생활을 보내던 중 원정식이 제안했다. “여보, 다시 함께 해 보자.”
○가장 짜릿한 복수 정경은(KGC인삼공사)과 신승찬(삼성전기)의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은 벼랑 끝 일전이었다. 두 선수마저 메달에 실패할 경우 한국 배드민턴 사상 첫 올림픽 ‘노 메달’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는 세계 랭킹 2위 탕위안팅-위양(중국)조.
정경은에겐 이겨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위양에게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정경은은 4년 전 런던에서 중국의 ‘져주기 파문’에 휩쓸려 실격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당시 왕샤올리와 짝을 이룬 위양이 다음 라운드에서 자국 선수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정경은-김하나(삼성전기)조에게 고의 패배를 당한 것이다. 정경은의 첫 올림픽은 그렇게 억울하게 마감됐다. 국가대표 자격정지마저 당했다.
복수는 통쾌하게 성공했다. 위기의 배드민턴도 구했다. 미래를 사는 기자들을 비웃기도 했다. ‘단체 구기 종목, 44년 만에 노 메달 확정’, ‘구기 종목의 몰락’이라는 기사가 이미 쏟아져 나온 뒤였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