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인근 지바시에 살고 있는 오노 겐지 씨(가명)는 내년이면 마흔이지만 직장이 없다. 일본 취업 빙하기(1993~2005년)인 2001년 대학을 졸업한 뒤 어렵사리 비정규직으로 들어간 첫 직장을 2년 만에 그만둔 지 13년째다. 직장을 관둔 몇 년간은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지금은 일흔에 가까운 부모님의 연금을 얻어쓰고 있다.

그에겐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젊은이)이란 말에다 최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란 수식어까지 붙었다. 한창 일할 나이(25~44세)인 일본 남성의 실업 문제가 일본 경제의 새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일본 청장년 근로자 48년 만에 최저
◆경제 거품 터진 이후 급감

2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 노동시장에서 지난 6월 기준 25~44세 남성 근로자 수는 1470만명으로 48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1990년엔 1700만명을 웃돌았다.

같은 연령대의 여성 근로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일본에서 25세는 대졸 신입사원이 포함되는 나이다. 65세 정년을 감안하면 25~44세는 직장 활동의 전반기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일본 실업률은 6월 3.1%로 21년 만에 최저였다. 태국(1.01%) 싱가포르(2.1%)에 이어 세 번째로 낮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남성 근로자 수 감소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근로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그 나이대 실업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행은 3월 발표한 ‘일본의 장기 실업자 현황’ 보고서에서 1년 이상 장기 실업 상태인 25~44세 남성 수가 2014년 31만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진 1990년대 초반 6만명에서 다섯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일본은행은 “연령·성별로 보면 일본은 장기 실업자가 25~44세 남성에 크게 치우쳐 있다”며 “2008년 금융위기 촉발 시점인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장기 실업자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미국은 나이, 성별에 따른 차이점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일자리 줄어든 탓

한창 일할 나이의 남성 실업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일본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꼽힌다. 2014년 기준 제조업 근로자는 1170만명으로 10년 전(2025만명)보다 855만명 감소했다. 반면 이 기간 의료·복지 분야 근로자는 270만명 증가했다. 일본을 대표하던 전자, 조선 등 제조업이 2000년 이후 쇠락한 가운데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제조업에 몸담았던 실업자가 다시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찾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2014년 장기 실업자의 25%가 제조업 출신이다. 제조업은 남성 근로자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보다 남성 장기 실업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야마구치 아카네 다이와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교육, 연수 등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적어 일단 기회를 놓치면 재취업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는 ‘1억 총활약 사회(2050년 이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는 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남성 근로자 감소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부담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메이지야스다 생활복지연구소가 6월 발표한 성인 인식조사 결과에서 ‘결혼하고 싶다’고 답변한 20대 일본 남성은 38.7%에 그쳤다. 2013년 67.1%를 훨씬 밑돌았다.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수입이 없어’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