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기준 적립금 126조원
주식·채권 등 금융투자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 미칠 듯
고용노동부는 31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근로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이 개정되면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 아래 계약형 또는 기금형 퇴직연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예상 시행 시점은 내년 상반기다. 쟁점 법안이 아닌 만큼 연내에 국회 통과가 가능하다는 게 고용부 측 설명이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만 운영됐다. 사용자가 퇴직연금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사측의 연금 실무자들은 정기예금과 같은 원금보장형 상품에 대부분의 연금 재원을 투자했다. 손실이 나면 문책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회사에 운용 책임이 있는 확정급여형(DB형) 상품 중 원금보장형의 비중이 96.1%에 달하는 배경이다. 이 같은 투자 패턴은 퇴직연금의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직장인들이 가입한 퇴직연금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연평균 2.5%의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9.5%의 수익을 낸 호주 퇴직연금의 4분의 1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연금 가입률에도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연금 운용과 관련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금융회사와 접촉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17.3%로 300인 이상 대기업(84.4%)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새로 도입되는 기금형은 사용자와 금융회사 사이에 수탁법인이 들어간다. 직원들의 연금 운용 방향을 결정하고 금융회사를 선정하는 게 수탁법인의 역할이다. 노사 대표와 외부 연금운용 전문가 등이 수탁법인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이 한층 손쉬워지고 원금 비보장형 상품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5년 내 최대 40조 이동
시장에선 기금형 퇴직연금이 금융투자 상품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탁법인이 고객사를 끌어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할 것이란 설명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활성화된 호주는 퇴직연금 투자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90% 이상이 원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5년 내로 30조~40조원의 새로운 자금이 은행 등을 빠져나와 금융투자상품 시장으로 밀려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126조원에 달한다. 연금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 사전에 사업자가 설계한 상품을 자동으로 고르는 ‘디폴트 옵션’을 활용하는 투자자가 많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송형석/백승현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