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 가톨릭 성인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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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가 선종 19년 만에 가톨릭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교황청은 4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과 시성미사를 거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성미사에서 "테레사 수녀는 길가에 내버려져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몸을 굽히고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존엄성을 보았다"며 테레사 수녀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병자, 버림받은 자의 생명을 지킨 자애로운 성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교황은 "테레사 수녀는 목소리를 내 전 세계의 권력자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빈곤이라는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또 "테레사 수녀의 미소를 우리의 가슴에 담고 우리가 여정 중에 만난 사람들, 특히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를 전하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날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선포한 직후 "우리는 테레사 수녀를 '성 테레사'라고 부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너무 가깝고, 너무나 다정하고, 너무 유익해서 우리는 계속 그를 '마더'(수녀님 혹은 어머니)로 부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에는 전 세계에서 약 12만 명의 신도가 모여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다.
이들은 교황이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테레사 수녀가 거의 평생을 바쳐 봉사한 인도가 수슈마 스와라지 외교장관 등 정부 각료 12명을 대표 사절단으로 파견했고, 13개국 정상과 바티칸 주재 외교 공관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 정부와 천주교단은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는 가난한 이를 위해 살아온 테레사 수녀의 삶을 기리듯 노숙자 1천500명이 초청됐고, 시성식이 끝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을 교황청 내부로 불러 피자를 대접했다.
테레사 수녀는 가톨릭 교단을 넘어 20세기를 통틀어서도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현재는 마케도니아의 수도이지만 당시엔 오스만 튀르크에 속했던 스코페에서 1910년 알바니아계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1928년 아일랜드에서 수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인도로 넘어가 약 20년 동안 인도 학생들에게 지리 과목을 가르치다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세워 극빈자, 고아, 죽음을 앞둔 사람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이러한 공로로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1997년 9월 5일 인도 동부 콜카타에서 선종했다.
가톨릭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와 길게는 수 세기에 이르는 지난한 세월이 필요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누린 대중적인 인기와 전·현직 교황의 각별한 배려 덕분에 이례적으로 빨리 성인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테레사 수녀와 깊은 우정을 나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테레사 수녀가 선종한 지 불과 2년 만에 시복 절차를 개시, 2003년 테레사 수녀를 복자로 추대했다.
복자품에 오르기 위한 필수 요건인 기적으로는 1998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해 위 종양을 치유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 여성 모니카 베르사의 사례가 가톨릭 교단에 의해 인정받았다.
교황청은 이어 작년 12월 다발성 뇌종양을 앓던 브라질 남성 마르실리우 안드리뉴가 2008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뒤 완치된 것을 테레사 수녀의 두 번째 기적으로 인정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 3월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를 공식 결정했다.
테레사 수녀의 삶 자체가 가톨릭이 지향하는 자비의 사표가 될 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즉위 때부터 '가난한 교회'로 돌아갈 것을 강조해온 터라 '자비의 희년'에 맞춰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을 열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테레사 수녀가 성인으로 선포되자 인도 캘커타에서는 그가 1950년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에 모여 있던 수 백 명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또, 테레사 수녀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다.
테레사 수녀가 태어난 곳인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 약 50명이 테레사 수녀 기념관에 모여 기쁨을 나눴다.
한편, 테레사 수녀가 빈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단순 구호에만 치중하고, 독재자들이 건넨 자선기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등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또, 그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한 '종교적 제국주의자'였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교황청은 4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과 시성미사를 거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성미사에서 "테레사 수녀는 길가에 내버려져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몸을 굽히고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존엄성을 보았다"며 테레사 수녀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병자, 버림받은 자의 생명을 지킨 자애로운 성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교황은 "테레사 수녀는 목소리를 내 전 세계의 권력자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빈곤이라는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또 "테레사 수녀의 미소를 우리의 가슴에 담고 우리가 여정 중에 만난 사람들, 특히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를 전하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날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선포한 직후 "우리는 테레사 수녀를 '성 테레사'라고 부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너무 가깝고, 너무나 다정하고, 너무 유익해서 우리는 계속 그를 '마더'(수녀님 혹은 어머니)로 부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에는 전 세계에서 약 12만 명의 신도가 모여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다.
이들은 교황이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테레사 수녀가 거의 평생을 바쳐 봉사한 인도가 수슈마 스와라지 외교장관 등 정부 각료 12명을 대표 사절단으로 파견했고, 13개국 정상과 바티칸 주재 외교 공관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 정부와 천주교단은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는 가난한 이를 위해 살아온 테레사 수녀의 삶을 기리듯 노숙자 1천500명이 초청됐고, 시성식이 끝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을 교황청 내부로 불러 피자를 대접했다.
테레사 수녀는 가톨릭 교단을 넘어 20세기를 통틀어서도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현재는 마케도니아의 수도이지만 당시엔 오스만 튀르크에 속했던 스코페에서 1910년 알바니아계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1928년 아일랜드에서 수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인도로 넘어가 약 20년 동안 인도 학생들에게 지리 과목을 가르치다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세워 극빈자, 고아, 죽음을 앞둔 사람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이러한 공로로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1997년 9월 5일 인도 동부 콜카타에서 선종했다.
가톨릭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와 길게는 수 세기에 이르는 지난한 세월이 필요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누린 대중적인 인기와 전·현직 교황의 각별한 배려 덕분에 이례적으로 빨리 성인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테레사 수녀와 깊은 우정을 나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테레사 수녀가 선종한 지 불과 2년 만에 시복 절차를 개시, 2003년 테레사 수녀를 복자로 추대했다.
복자품에 오르기 위한 필수 요건인 기적으로는 1998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해 위 종양을 치유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 여성 모니카 베르사의 사례가 가톨릭 교단에 의해 인정받았다.
교황청은 이어 작년 12월 다발성 뇌종양을 앓던 브라질 남성 마르실리우 안드리뉴가 2008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뒤 완치된 것을 테레사 수녀의 두 번째 기적으로 인정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 3월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를 공식 결정했다.
테레사 수녀의 삶 자체가 가톨릭이 지향하는 자비의 사표가 될 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즉위 때부터 '가난한 교회'로 돌아갈 것을 강조해온 터라 '자비의 희년'에 맞춰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을 열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테레사 수녀가 성인으로 선포되자 인도 캘커타에서는 그가 1950년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에 모여 있던 수 백 명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또, 테레사 수녀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다.
테레사 수녀가 태어난 곳인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 약 50명이 테레사 수녀 기념관에 모여 기쁨을 나눴다.
한편, 테레사 수녀가 빈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단순 구호에만 치중하고, 독재자들이 건넨 자선기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등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또, 그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한 '종교적 제국주의자'였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