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2)] 알다가도 모를 중국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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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중국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문(文)이다. 제럴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현대 유럽에서는 변형된 수십 가지 알파벳이 사용되고 있는데 중국의 경우에는 문자가 처음 생긴 이후로 오직 하나의 문자체계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도 56개 민족이 있다. 같은 한족이라 해도 쓰는 중국어는 다를 수 있지만, 한자는 오직 하나다. 오랜 역사와 수많은 중국인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결국 ‘한자’라고 볼 수 있다.
한자는 표의문자로서 일일이 알기도 힘들뿐더러, 중국인들의 함축적인 표현 방식은 이방인들을 더욱 헷갈리게 한다. 이는 중국인들이 상대방의 체면과 상황을 고려하고, 늘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은 고도의 고맥락 사회
짜이쉬에웨이 난징대 교수는 “중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모두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일단 정의하면 오히려 불명확해진다. 이상한 것은 정의하지 않아도, 중국인은 똑같이 이해한다”고 말한다. 只可意會, 不可言傳(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전달할 수 없다)이라는 말도 자주 한다. 이방인들에게는 어려운데, 중국인들끼리는 ‘이상하게도’ 서로 제대로 이해하며, 이방인이 물어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답해주는 꼴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중국에서는 종종 겪게 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세계의 문화를 맥락을 기준으로 해서 고맥락 사회와 저맥락 사회로 구분했다. 전후좌우의 맥락을 살펴야 정확한 소통이 되는 사회는 이른바 고맥락 사회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우 명절 때 아무 음식 준비하지 말고 그냥 와라 또는 안 와도 된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며느리는 없다. 특히 ‘시월드’에서는 반드시 맥락을 따져가며 이해해야 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 갈 때, 다리가 아파 “얼마나 남았느냐요?”라고 물으면, 자상한 어머니는 늘 “이제 다 왔다”고 말씀하셨다. 다 왔다는 시골길은 몇 번의 “이제 다 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정말 다 왔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속이려는 의도는 절대 없으셨다. 단지 표현습관이 그랬을 뿐이었다. 서양인들도 심지어 일본인들도 우리나라의 이런 고맥락 사회의 특징 때문에 알쏭달쏭해 한다. 그런데 중국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고맥락 문화다.
한자의 모호한 표현법과 문법은 같은 한자권 문화인 우리마저 헷갈리게 한다. 사실 중국인들에게도 모호하기는 매한가지다. 不可不可는 과연 ‘불가’인가? ‘가’인가? 문법만으로는 정답이 없다. ‘불가! 불가!’로 읽으면 절대 불가할 수도 있고, ‘불가불, 가’로 읽으면 “어쩔 수 없지만 되는 경우”일 수도 있다.
아편전쟁 때 청나라의 해군이 영국 함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베이징의 황제에게 이를 보고하는 보고서에 원래 “우리 해군이 백전백패()” 하고 있다고 보고하려고 했는데, 이를 보고 황제가 격노할 것을 두려워해서 나중에 슬쩍 ‘백패백전’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백전백패’나 ‘백패백전’은 똑같이 ‘100전 무승 100패’의 의미다. 하지만 중국어로 서술해 보면 의미가 같지 않다. 전자는 “100번을 싸워 100번을 패배한 무력하기 그지없는 군대”지만, 후자는 “100번을 져도 100번을 싸우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스러운 군대”로 읽힐 수 있다.
의미 없는 말도 정치적 해석
중국어의 ‘함축의 습관’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 없이 한 말도 중국인들은 “무슨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열심히 하면 너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사장시켜 주겠다”는 의미로 비약될 수도 있다. 중국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구미 인사가 이런 경험을 소개했다. “솔직한 말을 할 때의 비용이 너무 높다. 매번 말을 할 때마다 ‘다른 뜻이 없다’고 반드시 얘기해야 했다. 왜냐하면 중국인 직원들은 매우 민감해서, 당신이 그에게 어느 면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는 회사가 자신을 내보내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그들 부서의 일이 포화 상태인가라고 물으면, 그는 회사가 인원을 줄이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들 추측하기를 좋아하고,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 본래 단지 일 문제였는데, 꼭 정치적인 측면에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솔직한 말을 하지 않는다.”
‘친하지 않으면 깊은 말을 하지 않는다(交言不深)’는 말이 있다. 우리가 중국인들과 대화할 때 우리 문법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면, 최소한 “말은 알겠지만 그 의미는 모를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중국인들과 어울려야 한다. 겸손해야 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중국을 이해할 수 있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한자는 표의문자로서 일일이 알기도 힘들뿐더러, 중국인들의 함축적인 표현 방식은 이방인들을 더욱 헷갈리게 한다. 이는 중국인들이 상대방의 체면과 상황을 고려하고, 늘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은 고도의 고맥락 사회
짜이쉬에웨이 난징대 교수는 “중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모두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일단 정의하면 오히려 불명확해진다. 이상한 것은 정의하지 않아도, 중국인은 똑같이 이해한다”고 말한다. 只可意會, 不可言傳(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전달할 수 없다)이라는 말도 자주 한다. 이방인들에게는 어려운데, 중국인들끼리는 ‘이상하게도’ 서로 제대로 이해하며, 이방인이 물어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답해주는 꼴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중국에서는 종종 겪게 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세계의 문화를 맥락을 기준으로 해서 고맥락 사회와 저맥락 사회로 구분했다. 전후좌우의 맥락을 살펴야 정확한 소통이 되는 사회는 이른바 고맥락 사회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우 명절 때 아무 음식 준비하지 말고 그냥 와라 또는 안 와도 된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며느리는 없다. 특히 ‘시월드’에서는 반드시 맥락을 따져가며 이해해야 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 갈 때, 다리가 아파 “얼마나 남았느냐요?”라고 물으면, 자상한 어머니는 늘 “이제 다 왔다”고 말씀하셨다. 다 왔다는 시골길은 몇 번의 “이제 다 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정말 다 왔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속이려는 의도는 절대 없으셨다. 단지 표현습관이 그랬을 뿐이었다. 서양인들도 심지어 일본인들도 우리나라의 이런 고맥락 사회의 특징 때문에 알쏭달쏭해 한다. 그런데 중국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고맥락 문화다.
한자의 모호한 표현법과 문법은 같은 한자권 문화인 우리마저 헷갈리게 한다. 사실 중국인들에게도 모호하기는 매한가지다. 不可不可는 과연 ‘불가’인가? ‘가’인가? 문법만으로는 정답이 없다. ‘불가! 불가!’로 읽으면 절대 불가할 수도 있고, ‘불가불, 가’로 읽으면 “어쩔 수 없지만 되는 경우”일 수도 있다.
아편전쟁 때 청나라의 해군이 영국 함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베이징의 황제에게 이를 보고하는 보고서에 원래 “우리 해군이 백전백패()” 하고 있다고 보고하려고 했는데, 이를 보고 황제가 격노할 것을 두려워해서 나중에 슬쩍 ‘백패백전’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백전백패’나 ‘백패백전’은 똑같이 ‘100전 무승 100패’의 의미다. 하지만 중국어로 서술해 보면 의미가 같지 않다. 전자는 “100번을 싸워 100번을 패배한 무력하기 그지없는 군대”지만, 후자는 “100번을 져도 100번을 싸우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스러운 군대”로 읽힐 수 있다.
의미 없는 말도 정치적 해석
중국어의 ‘함축의 습관’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 없이 한 말도 중국인들은 “무슨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열심히 하면 너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사장시켜 주겠다”는 의미로 비약될 수도 있다. 중국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구미 인사가 이런 경험을 소개했다. “솔직한 말을 할 때의 비용이 너무 높다. 매번 말을 할 때마다 ‘다른 뜻이 없다’고 반드시 얘기해야 했다. 왜냐하면 중국인 직원들은 매우 민감해서, 당신이 그에게 어느 면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는 회사가 자신을 내보내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그들 부서의 일이 포화 상태인가라고 물으면, 그는 회사가 인원을 줄이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들 추측하기를 좋아하고,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 본래 단지 일 문제였는데, 꼭 정치적인 측면에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솔직한 말을 하지 않는다.”
‘친하지 않으면 깊은 말을 하지 않는다(交言不深)’는 말이 있다. 우리가 중국인들과 대화할 때 우리 문법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면, 최소한 “말은 알겠지만 그 의미는 모를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중국인들과 어울려야 한다. 겸손해야 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중국을 이해할 수 있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