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공석 대표 "'적게 먹고 가늘게…' 절약정신 지킨 게 성공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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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절수형 양변기 부품 시장 1위 와토스코리아 송공석 대표
무작정 상경해 '가시밭길' 걸어
절수형 제품 개발 집중해 성장
무차입경영으로 외환위기 극복
무작정 상경해 '가시밭길' 걸어
절수형 제품 개발 집중해 성장
무차입경영으로 외환위기 극복
코스닥상장업체인 와토스코리아의 송공석 대표(사진)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1952년 전남 고흥의 빈농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6세에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이후 회사 창업 전까지 이발소 보조, 중국집 배달과 그릇 닦기 등을 하며 ‘가시밭길’을 걸었다. 와토스코리아는 국내 절수형 양변기 부품 시장에서 점유율 80%로 연매출 200억원을 올리는 업체다. 송 대표는 “와토스코리아는 절수형 양변기 부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업”이라며 “배수관을 결합해 물 사용량과 소음을 줄인 새로운 절수형 제품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가 양변기 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인 소개로 양변기 부속품 제조공장에 취업하면서다. 송 대표는 “처음 들어간 공장에서 양변기 부품 사출부터 기계 조작, 영업까지 두루 배우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며 “돈이나 학력은 남보다 부족했지만 몸으로 배운 경험의 밑천은 누구보다 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양변기 부속품 공장이 4년 만에 부도로 문을 닫으면서 송 대표는 다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1년여를 장난감이나 석유풍로 등을 팔며 행상으로 근근이 버텼다. 마지막에 찾아간 곳이 과거 양변기 회사 때 알던 거래처였다. 송 대표는 “어렵게 찾아간 거래처 사장이 날 기억하고 반겨줬다”며 “믿을 만한 사람이 물품을 공급해줬으면 한다는 말에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22세가 되던 해 서울 구로공단 부근 3.3㎡ 남짓한 지하방에서 남영공업사를 세웠다. 이후 신우를 거쳐 지금의 와토스코리아까지 43년간 양변기 부속품 제조에 매달려왔다.
와토스코리아는 물 절약형 부속품 개발에 있어 국내에서 독보적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의 화장실을 보면 용변에 따라 물의 양을 다르게 하는 ‘대·소 버튼’이 있다. 와토스코리아의 제품이다. 1992년 개발한 대·소변 구분형 절수형 부품은 이 회사 최고의 히트작이다. 관련 특허만 120여개에 달한다. 송 대표는 “‘적게 먹고 가늘게 눠라’ 하던 어머니 말씀이 그대로 회사 운영의 뼈대가 됐다”며 “물을 아끼기 위해 양변기나 수세식 변기 물탱크에 벽돌을 넣은 데 착안해 절수형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삶의 철학은 제품뿐 아니라 ‘무차입 경영’ 방침에도 영향을 줬다. 2015년 말 현재 총자산 697억원 중 순자산은 671억원으로 부채 비율이 3.88%에 불과하다. 빚이 없는 건실한 재무구조로 외환위기(IMF)와 금융위기 때도 흔들림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송 대표는 2009년 대학도 졸업했다. 그는 “회사 설립 30주년 기념식 때 참석자 1000여명의 면면을 보니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며 “회사도 점점 틀이 잡히면서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학업에 다시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6월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해 2개월 뒤 고입 검정을 통과했다. 이듬해에는 대입 검정고시 벽을 넘었다. 2005년에 고려대 특기자 제도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는 2009년 만 57세에 ‘4년 무결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송 대표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뒤늦은 학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손주뻘 아이들과 동기인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천=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
송 대표가 양변기 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인 소개로 양변기 부속품 제조공장에 취업하면서다. 송 대표는 “처음 들어간 공장에서 양변기 부품 사출부터 기계 조작, 영업까지 두루 배우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며 “돈이나 학력은 남보다 부족했지만 몸으로 배운 경험의 밑천은 누구보다 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양변기 부속품 공장이 4년 만에 부도로 문을 닫으면서 송 대표는 다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1년여를 장난감이나 석유풍로 등을 팔며 행상으로 근근이 버텼다. 마지막에 찾아간 곳이 과거 양변기 회사 때 알던 거래처였다. 송 대표는 “어렵게 찾아간 거래처 사장이 날 기억하고 반겨줬다”며 “믿을 만한 사람이 물품을 공급해줬으면 한다는 말에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22세가 되던 해 서울 구로공단 부근 3.3㎡ 남짓한 지하방에서 남영공업사를 세웠다. 이후 신우를 거쳐 지금의 와토스코리아까지 43년간 양변기 부속품 제조에 매달려왔다.
와토스코리아는 물 절약형 부속품 개발에 있어 국내에서 독보적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의 화장실을 보면 용변에 따라 물의 양을 다르게 하는 ‘대·소 버튼’이 있다. 와토스코리아의 제품이다. 1992년 개발한 대·소변 구분형 절수형 부품은 이 회사 최고의 히트작이다. 관련 특허만 120여개에 달한다. 송 대표는 “‘적게 먹고 가늘게 눠라’ 하던 어머니 말씀이 그대로 회사 운영의 뼈대가 됐다”며 “물을 아끼기 위해 양변기나 수세식 변기 물탱크에 벽돌을 넣은 데 착안해 절수형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삶의 철학은 제품뿐 아니라 ‘무차입 경영’ 방침에도 영향을 줬다. 2015년 말 현재 총자산 697억원 중 순자산은 671억원으로 부채 비율이 3.88%에 불과하다. 빚이 없는 건실한 재무구조로 외환위기(IMF)와 금융위기 때도 흔들림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송 대표는 2009년 대학도 졸업했다. 그는 “회사 설립 30주년 기념식 때 참석자 1000여명의 면면을 보니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며 “회사도 점점 틀이 잡히면서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학업에 다시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6월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해 2개월 뒤 고입 검정을 통과했다. 이듬해에는 대입 검정고시 벽을 넘었다. 2005년에 고려대 특기자 제도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는 2009년 만 57세에 ‘4년 무결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송 대표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뒤늦은 학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손주뻘 아이들과 동기인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천=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